15유로의 행복
고물가 시대. 슈퍼마켓 장만 봐도 손이 덜덜 떨리고, 그나마 잘 안 하는 외식마저 더 줄이는 요즘 가성비와 가심비까지 다 잡는 외식이 여전히 가능한 곳이 있다. 그것도 유럽 땅에서.
보통 유럽에서 미식(美食)하면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떠올리는데, 사실 포르투갈도 순위에서 빠지면 섭섭할 정도의 다채로운 미식문화를 갖고 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위치를 대변하듯 굉장히 풍부한 해산물 요리가 있으며, 돼지고기, 치즈 등 같은 재료라도 타 유럽 국가들과는 차별화된 레시피의 음식들이 많다.
거기다 가격까지 저렴하고(독일대비 약 50-60%)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으니 안 갈 이유가 없다. 미식을 위해서라도 포르투갈 방문을 버킷 리스트에 넣으시는 걸 추천드린다.
나와 남편은 여행객들이 붐비는 식당 방문을 꺼린다. 우리도 잠시 머무는 여행객에 불과하면서 여행지를 피한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전형적인 관광지에선 나라를 불문하고 바가지(가격 비싸고 맛없는) 식당을 피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어디를 가든 적어도 식당만큼은, 유명세를 믿지 않고 구글 지도를 켜고 하나하나씩 검색해 가며 선정하는 편이다. 이렇게 하면 로컬들의 진정한 맛집을 경험할 수 있다.
문어요리를 먹고자 남편과 둘이 머리 맞대고 고른 로컬식당. 이곳 방문은 신의 한 수였다.
포르토 근교도시 마토지뉴스(Matosinhos). 그곳에서도 유난히 불빛이 적은 외진 골목, 자그맣고 동그란 문어그림 간판과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불빛으로 찾아가야 했던 식당. 규모가 매우 작고 인테리어라고 할 것은 벽에 그려진 문어그림 밖에 없어서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에도 '정말 이런 곳에서 식사가 가능한지' 의심마저 들었다.
테이블 10개 중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포르투갈은 저녁식사 시간이 7시 반 이후로 꽤 늦은 편이라, 그에 맞춰 문을 여는 식당이 많다. 보통 6시에 저녁을 먹던 우리는 포르투갈에 있는 내내 약간의 허기짐에 적응 중이다.
주인아저씨와 아내로 보이는 분께서는 우리를 보고 손사래를 치며 예약이 찼다며, 오늘은 식사가 불가하다고 했다. 외지인이라 당연히 지나가다 들른 줄 아셨나 보다. 전날 예약했다고 하니 미안하다고 멋쩍게 웃으시며 자리를 안내해주셨다.
이 집의 매력은 물가 싼 포르투갈에서도 쉽사리 찾아보기 어려운 가성비에 있다. 15유로, 한화로 21000원에 애피타이저, 메인메뉴 그리고 음료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독일엔 이런 구성과 가격이 심지어 10년 전에도 없었다.
음료로 와인을 선택하면 아예 병째로 주시는데 고급 와인은 아니지만 음식과 함께 가볍게 즐기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투박하고 키가 작은 와인잔과, 허허 웃으시며 와인 병을 턱 놓고 가시는 주인아저씨가 정겨웠다.
메인메뉴는 약 7가지 종류가 있으며 해물밥 혹은 구운 문어다리 요리가 인기 있다.
약 20분이 지나 나온 요리는 마치 급식판 같기도 한 무쇠 그릇에 담겨 나왔다. 왼쪽엔 오징어 먹물과 오징어를 넣은 해물 볶음밥, 그리고 오른쪽에는 구운 문어다리 요리가 있었다.
'15유로에 얼마나 높은 퀄리티를 기대하겠어'와 '저렴해도 맛있으니 로컬맛집일 거야'라는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하다가 맛을 보는 순간 첫 번째 생각이 눈 녹듯 사라졌다. 부드럽기 그지없는 문어다리와 살짝 짭조름하면서 오징어가 씹히는 볶음밥은 어릴 적 엄마가 싸준 도시락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평소 정말 심심하게 드시는 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한국분들 입맛에 잘 맞을 듯하다.
디저트로 고른 수플레는 불이 활활 타고 있는 채로 식탁에 올려졌다. 요리과정 중 불을 이용하는 건 흔하지만, 불이 붙어있는 음식을 고객에게 내오는 건 생소한지라 이 또한 보는 재미가 있었다. 가성비, 가심비에 눈마저 즐거우니 이 식당은 버릴 게 하나도 없구나. 실제로 우리가 자리를 잡고 30분 만에 모든 테이블이 만석 되었으며 식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 손님들이 들어왔고 이 중 절반 이상은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대로라면 포르토에 머무는 동안 얇아지는 지갑이 아니라 늘어나는 뱃살을 걱정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미식의 무덤 독일에서 온 이상 앞으로도 머무는 동안 맛집 방문을 포기하긴 어려울 것 같다.
제목,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