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비롯하여 스위스를 생활권에 두고 사는 우리지만, 원래 세상 어디든 그곳이 '생활 터전'이 되면 아름다움이나 여유 따위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파리나 밀라노 같이 이름만 들어도 낭만적인 유럽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 한 손엔 커피를 들고 코트자락을 휘날리며 멋지게 시내 한복판을 가로질러 출근할 것 같지만, 현실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람들 틈에 끼어 앞만 보고 가기에도 바쁘고, 어느새 내 일상은 집-회사-집-회사로 가득 차있다.
스위스도 그랬다. 세계에서 제일 예쁘다는 장관을 가졌다지만 일상의 벽 앞에선 예쁜 모습이 모두 종적을 감추었다. 그리고 비로소 여행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남편과 주말을 이용해 짧은 여행 위주로 즐기다가 우리는 지난여름에 가족과 함께 제법 긴 스위스 일주를 했다. 독일과 가장 가까운 바젤에서부터 루체른, 취리히, 베른, 인터라켄, 융프라우, 체르마트 그리고 마테호른까지 스위스 관광의 중추를 모두 거치는 여행이었다.
스위스는 도로가 잘 닦여있어 자동차 여행을 하기에도 편안하다. 그렇지만 차 없이 여행하는 편이 더 좋으며, 특히 스위스 열차를 마음껏 경험해보시길 추천한다. 느린 열차에서부터 고속열차, 그리고 특급열차까지 스위스 기차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눈과 입 그리고 편안함까지 모두 사로잡은 기차는 "Glacier Panorama Express 빙하 파노라마 특급열차"였다.
스위스의 파노라마 특급열차는 Premium Panoramazüge(프리미엄 파노라마기차)라고 불리며 총 5개의 노선을 운행 중이다. 노선에 따라 스위스 트래블패스로 커버되거나, 추가 예약이 필수다. 우리가 탔던 글래시어 파노라마 익스프레스, 즉 빙하특급열차는 필수 예약 노선이었다.
아래 맵에서 에메랄드 색으로 표시된 구간이 빙하특급의 노선이다. 체르마트와 생 모리츠를 연결하며, 노선 전체 탑승 시 6시간 이상 소요된다. 특급열차도 기차이기에 중간에 원하는 역에서 하차할 수 있다.
다만, 파노라마 특급열차는 말 그대로 '경치를 즐기기 위한' 목적이기에 단순 이동수단으로 탑승하는 승객은 거의 없으며 기차 내부 모습도 일반 기차와 조금 다르다.
기차 내부 벽면은 군더더기 없이 전면 창으로 되어있고, 머리 위 짐칸도 없으니 그야말로 뷰를 감상하기에 최적이다. 창이 워낙 커서 좌석 위치와 상관없이 양쪽의 뷰를 모두 즐길 수 있다.
사전 지정좌석제이기에 승무원들은 승객의 위치와 이름을 미리 알고 있다. 좌석 테이블이 식당처럼 되어있어 열차 운행 후 약 30분 후부터 메뉴 주문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미리 식사 예약을 했기에 음료만 따로 주문했다. 식사의 가격은 메뉴당 한화 5만 원 선이며, 코스로 주문 시 10만 원 이상이다.
체르마트에서 약 3시간을 달려 우리는 해발 1400미터에 위치한 소도시 Andermatt(안데르마트)에 도착했다. 레폰틴 알프스(북서부 알프스 산맥)에 둘러싼 안데르마트는 산이 줄 수 있는 포근함과 아기자기함을 모두 가지고 있는 장소였다. 인구 약 1500명, 도시보단 마을에 가까운 이곳을 천천히 걸으니 그 어떤 근심도 이곳 알프스 산맥 어딘가에 놓고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위스 여행 중 가끔 너무 푸르고 너무 깨끗해서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풍광을 마주할 때면 일상이 철저히 분리되어 마치 다른 세상에 옮겨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심지어 내가 사는 집이 있는 같은 땅인데도 말이다. 그 정도로 스위스의 기차 관광은 두 번, 아니 여러 번을 간다 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한다.
제목 및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