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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꼭 한 번은 타봐야 하는 열차

by 가을밤

독일을 비롯하여 스위스를 생활권에 두고 사는 우리지만, 원래 세상 어디든 그곳이 '생활 터전'이 되면 아름다움이나 여유 따위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파리나 밀라노 같이 이름만 들어도 낭만적인 유럽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 한 손엔 커피를 들고 코트자락을 휘날리며 멋지게 시내 한복판을 가로질러 출근할 것 같지만, 현실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람들 틈에 끼어 앞만 보고 가기에도 바쁘고, 어느새 내 일상은 집-회사-집-회사로 가득 차있다.


스위스도 그랬다. 세계에서 제일 예쁘다는 장관을 가졌다지만 일상의 벽 앞에선 예쁜 모습이 모두 종적을 감추었다. 그리고 비로소 여행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남편과 주말을 이용해 짧은 여행 위주로 즐기다가 우리는 지난여름에 가족과 함께 제법 긴 스위스 일주를 했다. 독일과 가장 가까운 바젤에서부터 루체른, 취리히, 베른, 인터라켄, 융프라우, 체르마트 그리고 마테호른까지 스위스 관광의 중추를 모두 거치는 여행이었다.


스위스는 도로가 잘 닦여있어 자동차 여행을 하기에도 편안하다. 그렇지만 차 없이 여행하는 편이 더 좋으며, 특히 스위스 열차를 마음껏 경험해보시길 추천한다. 느린 열차에서부터 고속열차, 그리고 특급열차까지 스위스 기차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눈과 입 그리고 편안함까지 모두 사로잡은 기차는 "Glacier Panorama Express 빙하 파노라마 특급열차"였다.


20230706_074336736_iOS.jpg 빨간 디자인이 눈에 띄는 빙하특급 (사진=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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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좌석마다 팜플렛과 소독티슈가 구비되어 있다. (사진=직접촬영)


스위스의 파노라마 특급열차는 Premium Panoramazüge(프리미엄 파노라마기차)라고 불리며 총 5개의 노선을 운행 중이다. 노선에 따라 스위스 트래블패스로 커버되거나, 추가 예약이 필수다. 우리가 탔던 글래시어 파노라마 익스프레스, 즉 빙하특급열차는 필수 예약 노선이었다.




아래 맵에서 에메랄드 색으로 표시된 구간이 빙하특급의 노선이다. 체르마트와 생 모리츠를 연결하며, 노선 전체 탑승 시 6시간 이상 소요된다. 특급열차도 기차이기에 중간에 원하는 역에서 하차할 수 있다.


다만, 파노라마 특급열차는 말 그대로 '경치를 즐기기 위한' 목적이기에 단순 이동수단으로 탑승하는 승객은 거의 없으며 기차 내부 모습도 일반 기차와 조금 다르다.


스크린샷 2024-01-17 211105.png 파노라마 익스프레스 루트지도. (출처=myswitzerland.com/bahn)


기차 내부 벽면은 군더더기 없이 전면 창으로 되어있고, 머리 위 짐칸도 없으니 그야말로 뷰를 감상하기에 최적이다. 창이 워낙 커서 좌석 위치와 상관없이 양쪽의 뷰를 모두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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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좌석 예약제로 운영되는 빙하특급열차 (사진=직접촬영)


사전 지정좌석제이기에 승무원들은 승객의 위치와 이름을 미리 알고 있다. 좌석 테이블이 식당처럼 되어있어 열차 운행 후 약 30분 후부터 메뉴 주문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미리 식사 예약을 했기에 음료만 따로 주문했다. 식사의 가격은 메뉴당 한화 5만 원 선이며, 코스로 주문 시 10만 원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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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특급에서 점심식사. 단품메뉴로 예약주문했다. (사진=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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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은 날의 특급열차는 스위스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사진=직접촬영)




체르마트에서 약 3시간을 달려 우리는 해발 1400미터에 위치한 소도시 Andermatt(안데르마트)에 도착했다. 레폰틴 알프스(북서부 알프스 산맥)에 둘러싼 안데르마트는 산이 줄 수 있는 포근함과 아기자기함을 모두 가지고 있는 장소였다. 인구 약 1500명, 도시보단 마을에 가까운 이곳을 천천히 걸으니 그 어떤 근심도 이곳 알프스 산맥 어딘가에 놓고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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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높은 고도를 향해 가는 빙하특급 열차. 산과 기차의 색 조화가 예쁘다. (사진=직접촬영)


20230706_110350035_iOS.jpg 안데르마트 시내 어느 카페에서. (사진=직접촬영)




스위스 여행 중 가끔 너무 푸르고 너무 깨끗해서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풍광을 마주할 때면 일상이 철저히 분리되어 마치 다른 세상에 옮겨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심지어 내가 사는 집이 있는 같은 땅인데도 말이다. 그 정도로 스위스의 기차 관광은 두 번, 아니 여러 번을 간다 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한다.


제목 및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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