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에서 만난 한식이 반갑지 않았던 이유

포르투의 한국식당

by 가을밤

우리가 머물던 포르투 숙소 근처에 우연히 '서울 xxx'라는 한식당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식을 매우 좋아하는 남편의 제안에 우리는 고민 없이 저녁식사 예약을 했다. 외부에선 작아 보였는데, 실내에 들어서니 불판 테이블이 적어도 20개 이상인 꽤 규모가 있는 식당이었다. 인테리어는 매우 간소했지만 나름 깨끗한 인상을 주었다.


주인이자 한국분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아저씨 한 분이 우리를 맞아주었고, 나는 이름과 예약시간을 말했다.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 "No Korean."


식당 내부. (출처=직접촬영)


알고 보니 두 분은 모두 중국분이었다.

한국식당이니 당연히 한국분이 운영할 거라 생각한 내 선입견이었다. 일식, 베트남식, 태국식은 해당국가 출신이 아닌 아시아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많지만 한식당을, 그것도 주인부터 직원까지 전부 타국인인 케이스는 꽤 드물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게 자국민을 만난 남편이 중국어로 직원분과 대화를 이어갔고, 우리는 부대찌개를 주문했다.


그래, 요리사의 출신보다 음식 맛이 중요한 거니까. 우리나라만 해도 세계 음식 종류마다 현지 못지않은 실력 있는 한국인 요리사들이 많지 않은가. 중요한 건 요리사의 국적이 아니라 음식이다.




그리고 나온 음식을 보자마자 우리는 단박에 알았다. 이곳은 한식당(食堂)이 아니라, 한국을 콘셉트로 하는 '한식당(式堂)'이었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흘러나오는 음악도 한국에서 20년 전에 유행하던 노래였다.


음식의 세계화 과정에 있어서 현지인들의 입맛에 따라 맛의 세기를 조절하는 건 피할 수 없다. 똑같은 떡볶이라도 독일에서 먹으면 덜 맵고, 김치도 달다. 그러나 그 음식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특징과 맛까지 잃어버리는 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곳에서 만난 부대찌개는 '태어나서 부대찌개를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이 사진만 보고 만든 음식 같았다. 맛과 재료 모두 평가를 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애매하고 특징이 없었다.


첫 술을 뜨자마자 남편과 내 입에선 똑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그냥 본인이 잘 아는 중국음식 하지 왜 하필 한식을.."


내가 식당 오픈 후 방문한 첫 한국인이었는지, 식사하는 내내 직원분들 모두 우리 테이블만 뚫어지게 보며 계속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안타깝지만 양념을 추가한 뒤에도 이 부대찌개는 심폐소생 불가였다. 그러고 보니 필리핀 및 포르투갈 분들이 주방을 전체 담당하고 있었다. 그래도 식당 주인이 레시피를 짜준 것일 텐데, 정말 이건 아니다.


부대찌개일까? (출처=직접촬영)


중국인이 한식당을 운영하는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일식'하면 '고급, 건강음식'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다양한 국적의 아시아인들이 운영하는 일식집이 즐비하다. 타국인이 한식을 한다는 의미는 이와 마찬가지로 한식이 K-문화의 이미지에 힘입어 일종의 '먹히는 테마'로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즉 '한국 이미지'가 돈이 된다는 소리다.


그렇지만 한식은 아직 중식, 일식, 인도식, 태국식, 베트남식과 달리 현지화의 역사가 긴 음식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 문화와 음식 맛의 특징을 완벽하게 이해한 한국분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아직은' 더 힘을 얻어 한식 세계화에 기여했으면 한다. 음식은 대표적인 국가 이미지 상품이자 외국인들이 그 나라를 방문하지 않고도 가장 손쉽게 문화를 체험하는 수단이다. 운영자의 국적과 상관없이 '고유한 맛을 베이스로 한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하는 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것이다. 우리나라 콘텐츠의 세계적인 성장에 힘입어 '진짜 한식당'이 많아져 한식 세계화에도 가속이 붙었으면 좋겠다.



제목 및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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