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약 8년 전부터 현재까지 가계부를 쓰고 있다.
매월 말 그달의 수입과 지출을 정리하고 이벤트를 메모하며, 다음 달의 현금흐름을 계획한다. 엄밀히 말하면 그보다 이전인 유학할 때부터 썼지만, 다루고 보기 쉽게 쓰기 시작한 건 2016년부터다. 요즘은 가계부 앱이나 은행 어플에서 가계부를 대신해주기도 하는데 옛날사람(?)인 나는 여전히 엑셀표를 만들어 하나하나 수동으로 써넣는 게 편하다. 커스터마이징의 매력이랄까.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가계부는 '소득을 줄여주는' 수단이 아니다.
보통은 이미 소비를 한 뒤, 그 내역을 가계부에 적기 때문에 환불하지 않는 이상 소득이 회복되거나 불어날 일은 없다. 진짜 소득을 줄이려면 돈을 쓰기 전부터 쓸 돈만 빼놓고 묶어둔 돈은 쳐다도 보지 않는 게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다.
내가 가계부를 쓰는 목적은 '돈의 흐름과 가치 변화'를 보기 위함이다.
매달 수입과 지출 항목을 나누어 적은 데이터가 수년간 쌓이다 보면 식탁물가 상승률, 돈이 집중적으로 나가는 시기, 연 저축금액 등 앞으로의 계획을 위한 상당히 의미 있는 데이터들을 얻을 수 있다. 특히 결혼을 하면 두 사람의 경제활동이 한 가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리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혼자살 때보다 더 관리가 안되고, 안 쓰는 것 같은데 돈은 없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은 한국에선 웬만하면 해지하라고 권하는 보험 종류도 안고 가야 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은근한 지출이 상당히 많다. 몇 가지만 나열하면: 집 보험, 손해보험(+열쇠보험), 변호사보험, 치아보험, 운전자보험, 세입자 협회비, 연말정산 협회비 등. 또한 독일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싫어도 무조건 내야 하는 매달 2만 원이 넘는 방송 수신료도 한 몫한다.
따라서 숨만 쉬어도 들어갈 금액이 월세를 제외하고 매년 1000유로 이상 든다. 여기에 난방이라도 조금 많이 뗀 해에는 Nachzahlung(추가 관리비)를 약 1000유로가량 준비해두어야 한다. 또한 연말정산이 한국처럼 간편하고 빠르지 않기 때문에 해가 바뀌고 예상치 못하게 지난해 추가 세금을 내라는 통지를 받을 수도 있다.
나는 이런 환경에서 가계부를 쓰지 않는 건 낯선 곳에서 준비 없이 무작정 앞만 보고 걷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귀찮은 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지만, 그곳을 충분히 탐색하고 준비하여 가는 것과 무작정 가서 들이박는 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확실히 속도와 퀄리티 면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나 독일은 해외이기에 정보파악에 시간이 걸리고 한국과 달리 관청에 민원을 요청하기 하기 어려우며, 모르는 정보나 지출에 대해 적극적으로 묻고 따져야 알려주고 처리가 되는 나라다. 따라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손 놓고 있다간 소위 멍청비용이라 불리는 깜깜이 지출이 생기기 쉽기에 더욱더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