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해외에 살다 보면 한국의 각종 국경일과 기념일에 무뎌지는데 유독 한글날만큼은 신경이 쓰인다. 한국어는 내가 세상 어디 살더라도 죽을 때까지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가져갈 모국어이기 때문이다.
이전 회사도, 지금 다니는 회사도 심지어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공교롭게 (독일 오피스 기준) 한국인 직원이 없다. 어딜 가나 중국인 직원들은 적어도 둘셋 이상 있어서 그들이 삼삼오오 모여 같이 국경일을 기념하거나 음식을 해 먹는 걸 보며 내심 부럽기도 했다.
지난달, 한글날 578주년을 맞아 나는 우리 팀에 조금 특별한 메일을 돌렸다.
한글날의 의미를 담아 모든 외국인 동료들의 이름을 한글로 적어주었다. 아무리 한국과 한국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외국어로 쓰인 자기 이름을 보면 조금은 감회가 새롭기 때문이다. 해외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국어보다 외국어로 쓰인 자기 이름을 자주 보는데, 반대로 그들에게도 그와 비슷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게다가 번역학부터 기계공학까지 매우 다양한 전공자들로 이루어진 우리 팀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궁금했다.
(실명아닌 예시입니다.)
Alexandra Müller: 알렉산드라 뮐러
메일을 받은 팀원들은 자기 이름이 신기한 모양으로 쓰인 걸 재미있어하며 답장 서명에 독어 대신 한글 이름을 써서 보내주었다. 외국인들이 내 모국어를 써준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새삼 영어 모국어화자들이 부러워졌다.
조금 더 호기심 있는 동료들은 나에게 편지 말미에 쓰는 "Viele Güße (영어 Kind Regards)"와 같은 인사말의 한국어 표현을 물었다. 이건 내가 한국어 강의를 했을 때도 자주 듣던 질문인데, 직역하면 "많은 인사를 담아" 혹은 Mit freundlichen Grüßen은 "친절한 안부를 전하며"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한국에서는 편지에 이러한 표현을 쓰지 않는다. 대신 - 감사합니다, 안부를 전합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 등의 표현으로 마무리하며 이름 옆에 'xx 드림/올림'을 적는다는 점을 동료에게 설명해 주었고, 동료는 이렇게 답장했다.
...(내용)
감사합니다.
알렉산드라 뮐러 드림
한글날을 핑계로 동료들에게 강제 한국어 주입(?)을 했지만 한국인으로서 재미있고 나름 뿌듯한 경험이었다. 아랍어가 모국어인 동료는 내 이름을 아랍어로 써주기도 했다. 비록 모두 독일에서 만난 인연이지만 여러 나라 출신의 사람들과 함께 일한 다는 건 종종 간접적으로 세계를 체험하는 신선한 경험을 선사한다.
제목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