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생활은 외롭다.
한국에서 아무리 친구가 많고 사람을 거느리던 소위 '파워E' 성향이었어도 해외에 살면 순식간에 혼자만의 세계에 고립되기 쉽다. 설령 고독한 생활 자체를 좋아해서 오히려 좋다고 생각할지라도, 낯선 나라는 당신을 결코 방 안에 틀어박혀 사색에 잠기는 '럭셔리한 고독'을 즐기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 나라는 당신에 대해 끊임없이 증명하고, 또 증명하라는 요구를 할 것이다. 범죄 가능성은 없는지, 언어는 할 줄 아는지, 공부는 얼마나 했는지, 생활 수준에 맞는 경제활동을 하는지, 통장엔 얼마가 있는지 등등. 그걸 증명한 사람한테 주는 게 바로 비자(체류증)이다.
한국이었다면 하나도 필요 없을 절차들이기에 때론 버겁고 힘들게 느껴질 수 있다. 어쩌겠는가. 외국인으로 남의 나라에 사는 대가다. 그래서 좀 더 쉬운 길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지인과 결혼해서 결혼비자를 받거나, 이미 비자가 있는 배우자에 종속돼서 비자를 얻는 방법이다. 이 방법들은 상대적으로 쉽고 빠르지만, 비독립적이라는 맹점이 있다.
독립적이지 않다는 건 '타인이나 어떤 관계에 종속' 되어있다는 뜻이다. 즉, 관계를 주도하는 사람의 신변에 위협이 생기면 내 신변도 같이 위협받는다. 배우자 비자에 종속되어 있다면 이혼 시 내 비자도 사라지고, 회사에 종속되어 있다면 퇴사와 함께 비자가 사라진다. 만약 배우자 비자에 묶여있고 언어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혼이라도 했다간, 잘못하면 낙동강 오리알에 해외에서 말 그대로 오갈 데 없이 버려지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가? 실제로 꽤 자주 보이고 들린다. 모든 사람이 언어와 경제력을 갖추고 해외에 오는 게 아니고, 오래 산다고 그런 능력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
독일이라면 이 독립성을 강조 또 강조하고 싶다. 언어를 하고, 직업을 갖고, 경제활동을 하고, 운전을 하고, 내 생각을 똑바로 말하고, 부당한 건 항의하고, 잘못된 건 싸울 수 있는 힘. 독일인들을 보면 남녀불문 참 강인하고 독립적인 사람들이 많은데 옳고 그름을 떠나서 독일이라는 사회가 그런 독립성을 요구하는 곳이다. 특히 장기거주를 해보면 '스스로 개척하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독일에 살 계획이 있다면 종속될 관계가 있든 없든 혼자 합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근거를 반드시 마련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적어도 해외에서의 삶을 꿈꾼다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오는 것일 텐데, 평생 어딘가에 묶인다면 결국 '그 관계'가 무너지면 나도 함께 무너진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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