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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Oct 31. 2024

귀화시험 1등이지만 소용없어

몇 주 전 응시한 독일 시민권시험(귀화시험)의 성적표가 왔다.


8분 만에 풀어낸 시험. 33문제 중 33개 정답으로 만점을 받았다. 초등학교 국어 전교 1등, 고등학교 한문고전 전교 1등, 대학땐 2년 간 문과대 전체수석에이어 독일 귀화시험 만점까지(안타깝지만 중학생땐 1등을 못함). 어쨌든 1과 100이라는 숫자가 주는 기분은 나이불문 그 어떤 콘텐츠보다 도파민을 자극하는 것 같다.

독일 시민권 시험 증명서 (성적표). (출처=직접촬영)




하지만 이 귀화시험은 사실 나에게 쓸모가 없다. 독일 시민권을 취득할 생각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귀화한다, 시민권을 딴다는 말은 여권 및 국적이 바뀐다는 뜻이다. 즉, 귀화시험 증명서와 함께 다양한 서류를 독일 관청에 제출하여 승인되면 나는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니게 된다. 한국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기에 독일국적을 취득하면 한국국적은 포기해야 한다. 단, 한국도 만 65세부터는 이중국적을 허용하기에 일단 해외국적을 취득해 놓고 은퇴 후 한국국적을 다시 회복시키는 분들도 있다.


독일인(외국인)이 되면 한국국적은 '원칙적으로' 자동 상실된다. 다만, 한국정부와 독일정부 간 자동연계된 동기화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국적상실신고를 해야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다. 이 신고를 하지 않아 독일과 한국 여권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불법이므로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좋다. 한국에서 외국인이 된 한국인은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되며 거주지 등록, 통장개설 등을 하려면 재외동포비자나 외국인체류증 등을 만들어야 한다.




남편과 나 둘 다 독일에선 외국인이기에 우리는 독일국적 취득에 대한 얘기를 자주 나눈다. 둘 다 독일체류가 오래됐고 국적취득에 모든 조건을 갖추었기에 맘만 먹으면 바로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의 대답은 아직까지 NO다.


특히나 한국은 여권파워가 세기 때문에 독일여권 못지않게 해외여행이 편하고, 딱히 '한국인이어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이나 일상에서 겪는 차별은 외모가 외국인이고 모국어가 독일어가 아니기에 생기는 일이지, 여권하나 바뀐다고 차별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우리 독일인"하며 두 팔 벌려 환영해줄리는 만무하다.


사실 남편이야말로 독일국적을 취득하면 확연히 다른 여권파워를 경험할 테지만, 그것 때문에 국적변경을 강요하고 싶진 않다. 국적은 작게 보면 여권 종이쪼가리 하나일지 모르나, 크게 보면 정체성, 뿌리, 문화, 그리고 다른 가족들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다 무시하고 여행이랑 출장 하나 편하게 다니자고 무턱대고 바꾸는 건 나조차 하고 싶지 않을 것 같기에, 어떤 선택을 하든 온전히 남편의 결정에 맡기고 싶다.




최근 이 <독일 귀화시험>은 영주권 취득에도 필수 조건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전에 영주권을 취득했기에 이조차 필요 없는, 말 그대로 '쓸데없는' 시험을 본 것이다.


그래도 '독일이 외국인에게 요구하는 독일인이 되기 위한 최소 지식'이 무엇인지 궁금했던 나의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으니 시험의 목표는 확실히 달성했다. 덕분에 잊고 지냈던 독일의 법과 정치, 그리고 역사를 다시 한번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경험이었다.


제목 및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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