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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여행할 때 의외로 복병인 이것

by 가을밤

작년이었던가, 온라인에 <부모님 해외여행 금지 15 계명>이 SNS에서 한창 유행했다.


-아직 멀었냐 금지

-음식이 짜다 금지

-조식 이게 다냐 금지

-돈 아깝다 금지

-이거 한화로 얼마냐 금지

-이 돈이면 집에서 해 먹는 게 낫다 금지

-화장실 왜 돈 내냐 금지

등등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에 가면 흔히 하시는 말들로, 같이 간 자녀를 당황시킬 수 있는 말들이다.




하지만 실제로 부모님을 모시고 유럽만 4번 이상 자유여행을 해본 내 경험에 미뤄보면, 막상 이런 점들은 복병이 아니다. 오히려 위의 말들을 안 하시는 게 더 이상하다. 유럽에 10년 넘게 산 나도 여전히 여기 음식이 짜고, 한식이 너무 그리운데 50년 60년 한국서 사신 부모님이 해외음식에 불평하시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또한 유럽 메뉴들이 한식보다 훨씬 부실하고 건강하지 않으면서 가격만 비싼 건 객관적 사실이다.


왜 자꾸 한화로 물어보냐는 불평도 있는데, 낯선 해외의 화폐단위가 정확히 얼만지 감이 안 오는 건 당연하다. 10유로짜리 작은 종이쪼가리 한 장을 언뜻 보면 오천원이나 만원쯤 하는 느낌이지만, 16000원이라고 하면 물가가 바로 피부에 와닿는다. 따라서 부모님께 가격을 말씀드릴 땐 현지가격+한화 가격을 같이 말씀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한다. 이전에 한국에 놀러 온 독일 지인이 7000원을 7유로 정도로 생각하고 여행을 한 뒤, 돈이 왜 이렇게 많이 남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역시 본인에게 익숙한 화폐기준에 맞춰 생각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누구나 자신이 가장 오래 산 곳의 문화에 비추어 타문화를 바라보고 평가하기 마련이다.




그럼 실제로 부모님과 여행 중 '생각보다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일까? 의외라고 생각하실지 모르나, <식당에서 메뉴 고르기>였다. 유럽 대부분의 식당들은 여전히 두꺼운 책자로 된 메뉴판을 사용하고, 영어표기가 안 된 곳이 많다. 당연히 음식 사진도 없고, 있어도 한 두장이라 거의 도움이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이 생소하고 많은 메뉴들 중 부모님 입맛에 맞는 걸 '직접' 고르시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대분류->소분류로 좁혀가면서 질문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애피타이저 yes or no?

고기/생선/채소?

(고기라면) 양고기/소고기/돼지고기/송아지고기/칠면조고기/오리고기?

(돼지고기) 구운거/볶은거/튀긴거/수프형태/꼬치?

(구운거) 맵게/안맵게? + 샐러드 있는거/없는거?

->고른 걸 종합하면 "애피타이저 없이 돼지고기 구운거 안맵게 샐러드 필요". 여기까지 하면 대부분 요리가 2-3개로 좁혀진다. 요리명을 알면 바로 주문하고, 모르면 서버에게 물어보면 꼭 맞는 메뉴를 추천해 준다.


나는 여행 내내 부모님께 이 방법으로 메뉴를 직접 고르시게 했고, 한식을 제일 좋아하시지만 현지식당에서도 전혀 어려움 없이 식사를 하실 수 있었다. 여기에 꼭 드셔봐야 하는 유명한 미식들은 따로 추천해 드렸고, 입맛에 안 맞을 것 같으면 간단히 맛보실 수 있는 카페나 간이식당을 이용했다.




사실 메뉴판에 있는 대부분의 음식들을 나는 이미 먹어봤기에 가능했던 부분도 있다. 만약 나도 몰랐다면 부모님과 같이 헤매고 실패하며 돈아까울 일이 있었을텐데, 오랜 기간 유럽 물 먹으며 발붙이고 산 게 의외의 지점에서 빛을 발했던 것 같다.


제목 이미지 출처: 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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