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2n년, 독일에서 1n년을 산 내가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 감히 말씀드린다.
여러분께는 '이것'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중요하고, 그것은 여러분의 삶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기서 '이것'은 날씨다.
"아 뭐야, 날씨 중요한거 누가 몰라?" 라고 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만 줄곧 사신 분들은 모르실 수 있다. 아니, 모르신다. 나 역시 그랬다.
여름과 겨울이 길어졌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나라는 사계절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나라다. 너무 덥고 너무 추운 시기가 매년 한 두 달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잘 참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 극한의 계절을 견디게 해주는 햇빛과 각종 시설들이 있기 때문이다. 온도가 영하 10도에 육박하지만 롱패딩을 김밥처럼 둘둘 말아 입고 조금만 걸어가면 쏙 들어가서 몸을 녹일 수 있는 카페가 즐비하고, 해가 잘 뜨기 때문에 햇빛 아래에 서있으면 차가운 공기도 나름 견딜만 하다.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이 있으니 실내에서는 더위를 잊는다.
하지만 독일을 비롯한 중/북유럽에서 이런 환경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이다. 특히 돈주고도 못사는 햇빛이 뜨지 않는 환경은 정신부터 육체까지 말그대로 '사람을 시름시름 앓게 만든다'.
독일의 겨울은 대략 10월 중순~11월 초부터 시작되어 다음 해 3월까지 지속된다. 겨울이 시작된다는 말은 날씨가 단순히 "춥다"는 말이 아니다. 일단 해를 볼 수 없다. 잔뜩 흐려서 소나기 쏟아지기 전의 회색빛 하늘을 아시는가? 그 상태가 2주, 3주 지속된다. 시계를 보지 않으면 시간을 알 수 없고, 몸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을 못해서 하루종일 축 쳐져있다. 만성 두통은 덤이다. 하루 반짝 해가 떴다가, 다시 2~3주가량 또 회색 하늘이 나온다. 그걸 매년 5개월 이상 견뎌야 한다.
그리고 추위가 시작되는데, 한국의 '차가운 추위'가 아니다. 정확한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짙게 깔린 공기 속에서 만들어진 얼음 섞인 공기가 싸하게 옷 틈새와 뼈를 파고드는 추위'다. 아이러니한 건, 분명 온도는 낮지 않은데, 어떤 옷을 입어도 추위가 가시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끔 해라도 떠야 습기가 사라지며 체감온도가 올라가는데 그게 안되니 미칠 노릇이다.
온돌이 없는 독일집에서는(최신식 바닥난방도 한국 온돌과 달라서 공기만 살짝 덥혀주는 방식이다) 라디에이터나 난방기구를 틀어야 한다. 만약 당신이 독일 집에서 따뜻하게 지내고 있다면 그건 돈을 공중에 뿌리고 있다는 증거다. 독일의 난방비와 온수비(냉수비의 약 3배)는 관리비 중에서도 가장 고가이며 추가 관리비(나흐짤룽)를 올려주는 1등 공신이다. 따라서 현지인들을 포함, 한국 교민분들은 대체로 집에서 전기장판과 전기담요 그리고 패딩 등에 의지하며 집에서도 추운 겨울을 보낸다. 공과금을 1년에 한 번 정산하기 때문에 미리 아끼지 않으면 다음 해에 목돈이 나가는 폭탄 고지서를 받는다.
하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난방을 꼭 켜야할 때가 있으니, 집안 습도가 60%이상 올라갈때다. 독일은 날씨, 건물 방향, 건축특성 등이 한국과 달라서 실내습도가 상당히 빠르게 오르고 자칫했다간 곰팡이랑 친구된다. 한번 핀 곰팡이는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방 혹은 집안 전체를 뒤집고 페인트칠까지 다시 해야할 수도 있다(내가 경험자이다). 이게 독일인들이 '목숨걸고 환기'를 하는 이유이기도 한데(집을 비우면 이웃에게 열쇠를 맡겨서라도 환기시킨다), 집에 따라 환기로 습도가 안잡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난방을 최대치로 24시간 이상 틀어 방을 말릴 수밖에 없다. 내몸은 어떻게 추위를 피하더라도 집때문에 난방비를 감수해야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독일의 이런 팍팍하기 그지없는 겨울을 좀 기분좋게 날 방법은 없을까. 안타깝지만 여태까지는 찾지 못했다.
한국처럼 매일같이 부담없이 갈 수 있는 저가커피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있다 해도 차끌고 몇 분을 나가야 하고, 주차비부터 화장실까지 하나하나 다 돈받는 쇼핑몰에 굳이 자주 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집에서 몸을 꽁꽁 싸매고 커피랑 차만 주구장창 타먹으며 버티는 게 독일의 겨울 모습이다.
한국에서 소위 '극E'였던 분들도 독일에 오시면 I로 바뀐다고 하듯, 한국에서 평생 "날씨랑 상관없어"라고 하던 나는, 이제 날씨에 모든 게 좌우되는 사람이 되었다. 독일서 살기 전까진 내가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고용량 비타민D를 3년 이상 먹게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며, 이걸 아무리 먹어도 가라앉는 기분과 에너지를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것에 매년 좌절감과 무력함을 느낀다.
독일이 노잼나라가 된 것도, 씁쓸하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블랙코미디가 거의 유일한 개그 소재인 것도 날씨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