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선 종종 '독일(혹은 유럽)의 친절함'에 대한 논쟁이 붙는다. 유럽의 친절함을 옹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국에선 조금만 부딪혀도 쏘리, 땡큐를 잘 하는데 우리나라는 안한다"는 주장을 한다. 독어로 하면 엔츌디궁(쏘리, 실례합니다)과 당케(감사)를 잘하니 친절하다는 거다. 과연 그럴까?
독일을 오래 겪어온 내 시각에서는 아니라고 본다.
만약 엔츌디궁과 당케를 자주 쓰는게 친절함의 증거라면, 친절은 언어 습관만으로 충분히 측정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언어는 문화의 표면일 뿐, 그 안에 담긴 태도와 맥락은 훨씬 복잡하다. 독일이나 유럽에서 “Entschuldigung(엔츌디궁)”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안함이나 사과가 아닌 사회적 완충 장치에 가깝다. 모르고 사람을 쳤을때, 인파를 지나가야 할 때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일종의 매너라는 거다. 반대로 한국은 사소한 접촉이나 상황에 굳이 말을 붙이지 않는 문화가 오래 자리 잡아 왔는데, 그렇다고 해서 "한국사회가 불친절하다"라고 말하는 건 너무나 큰 비약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굳이 스몰톡을 걸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 친절은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난다. 평소에 엔츌디궁과 당케를 잘하는 독일인에게 일주일동안 한국여행을 시켜주고, 숙소비를 아끼라고 집을 내어주었다. 그런데 밥 한끼 사기는 커녕 고맙다는 인사조차 안하고 독일로 돌아가서 연락을 끊어버렸다. (실제 내가 겪은 사례다) 너무하지 않냐고 적어도 우리 부모님이 신경써준 것에 대한 감사인사는 해야하지 않냐고 물으니, "너네가 좋아서 해준거 아니냐"는 식의 답이 돌아왔다. 이 독일인은 친절한가?
하루에도 수 백번씩 인사를 해야 하는 마트 직원이 나에게 입으로는 당케를 말하지만, 매우 무표정한 얼굴로 내 눈도 보지않고 영수증을 던지고 빨리 비키라는듯 물건을 다 넣지도 않았는데 계산대의 분리대를 확 밀어버렸다. 이 독일인은 친절한가?
유럽의 겉치례식 친절을 옹호하는 사람들 처럼 친절을 '입에 붙은 표현'으로만 정의하면, 너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진짜 친절은 얼마나 자주 쏘리나 땡큐를 말했는지가 아니라, 상대의 상황을 고려했는지, 관계의 무게를 인식했는지, 받은 것을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존중했는지에서 드러난다. 말은 쉽고 자동화되는데 태도와 책임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도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나는 한국보다 독일에서 훨씬, 몇 배는 많이, 그리고 자주 겪었다.
유럽식 친절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회에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니 그렇게 굳어졌을 것이다. 다만 그들의 친절은 진심이 아닌, 낯선 타인과의 최소한의 마찰을 줄이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반면 한국 사회의 친절은 말보다 행동에, 형식보다 관계 안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양한 업종의 서비스를 봐도 여전히 한국이 훨씬 친절하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말하지 않아도 지켜주는 것, 티 내지 않고 감당하는 것, 잘못했을 때 바로 미안하다고 하는 것, 상대의 뒤에서 묵묵히 챙기는 것이 친절의 핵심일 수도 있다.
사회의 언어 습관을 곧바로 도덕적 우열로 환원하는 건 옳지 않다. 엔츌디궁과 당케를 잘 쓰는 사회가 반드시 더 따뜻한 것도 아니고, 그 말을 자주 하지 않는 사회가 무례한 것도 아니다. 내가 보는 '진짜친절'은 위급할 때, 공짜가 아닐 때, 상대의 베풂에 보답해야 할 때,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때, 책임을 져야 할 때, 빠르게 대응해야 할 때 진정으로 드러나는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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