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빵, 아시아에 대적할 수 있을까

by 가을밤

이번 글은 동의하는 분도, 동의하지 않는 독자분도 있을 거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특히 음식에 관한 건 개인차가 심하기 때문에 '글쓴이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정도로 가볍게 읽어주셨으면 한다.




내가 사는 독일은 명실상부 '빵이 주식인 빵나라'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빵을 먹으며, 점심에는 메뉴에 따라 빵을 곁들이는게 매우 흔하다. 식사로 나오는 빵은 대체로 단맛이 없고 투박하고 겉이 단단하며, 신 맛 나는 사워도우를 쓰는 경우도 있고, 젬멜처럼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부드러운 종류도 있다. 이런 빵은 우리나라의 - 쌀밥, 현미밥, 흑미밥 등에 비유할 수 있다.


동네 마트에만 가도 다양한 종류의 브레첼, 호밀빵, 통곡물빵이 가득하고, 빵집에 가면 사람들은 큰 덩어리의 브로트를 잘라 사간다. 이 풍경만 보면 독일은 빵 천국이 맞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익숙했던 ‘예쁘고 부드럽고 달지 않은 빵’을 찾는다면 이때부턴 사정이 달라진다.




나는 한국에서 빵을 굉장히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독일에 처음 왔을때도 빵만먹고 살 수 있다는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살면 살수록,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이고 아시아인이었다. 빵을 주식으로 먹는게 점점 물리고 지겨워져서 밥을 해먹기 시작했고, 지금은 거의 매일 쌀밥, 반찬과 찌개를 한다. 그렇게 산 것만 거의 10년(빵을 주로 먹던 세월 빼고), 늘은 건 요리실력 뿐이다. 하지만 이런 나도 빵이 여전히 너무 그리울 때가 있으니, 바로 '섬세하게 예쁘고 부드럽고 너무 달지 않은 빵' 혹은 '쌀처럼 쫄깃한 식감의 빵'이 먹고싶을 때다. 요즘은 빵이 땡기면 항상 이런 종류의 빵이 먹고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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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해 백화점 내 베이커리


하지만 독일엔 그런 빵이 없다. 특히 케이크를 찾을 땐 그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예쁜 홀케이크가 어딜가나 진열되어 있고, 아무때나 들러서 바로 살 수 있다. 가격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옵션도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독일의 케이크는 투박하다. 형태도 매우 단순하고, 종류도 한정적이다. 맛은 미친듯이 달다. 베이킹할 때 계량을 잘못했나 싶을 정도로 머리가 띵하게 달달한 케익들이 많다. 나는 슈바르츠발트-체리 케이크(Schwarzwälder Kirschtorte), 산딸기 케이크(Himbeerkuchen) 등을 좋아하지만 너무 달아서 어쩌다 한 번 먹는 수준이다.


그래서 생일이나 기념일 혹은 기분전환하고 싶은 날에 예쁜 케이크를 찾으면 선택지가 거의 없다. 홀케이크를 당일에 사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그마저도 베이커리나 파티세리에 따로 주문을 넣고 계약금을 걸어 반드시 찾아간다는 예약을 해야한다. 또한 디자인 수정이나 크기 조절을 요청하면 추가 비용이 붙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으로 간단히 예약하고 편하게 배송받는 시스템도 생겼지만 여전히 흔하지 않다. 이런 틈새를 공략하여 홀케이크를 판매하시는 한국분들이 있는데, 가격이 상당해서 그냥 사먹기에는 부담스럽다. 또 말하지만, 선택권이 있는데 안하는 것과, 없어서 못 하는 건 천지차이다. 그리고 독일은 '선택권이 없는' 곳이다.




이런 차이는 아마도 한중일 등 아시아권에서 빵이 '간식이자 즐거움'의 문화로 자리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배를 채우고 혈당만 올리고 마는 수단이 아니라, 눈으로 즐기고 입으로 즐기는 섬세한 문화가 형성 되었고, 기술도 이제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와서 유럽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퀄리티가 되었다. 아니, 오히려 유럽이 긴장해야 할 것 같다.


좋은 예시가 바로 '바움쿠흔(Baumkuchen)'이다. 나무의 단면을 잘라놓은 듯 하다고 바움(나무)이란 이름이 붙은 독일빵인데, 일본 바움쿠흔이 독일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다. 아니, 일단 독일에서 바움쿠흔 자체를 보기가 어렵다. 고급 파티세리나 일부러 찾아보면 있지만 그마저도 일본 베이커리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마치 우리나라 김치보다 독일김치가 더 맛있어져버린 모습이랄까?


종합해보면, 결국 내가 빵에서 원하는 건 단순한 포만감보다는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기분을 가장 잘 채워주는 건 아시아식 베이커리의 감각적인 디자인과 섬세한 맛이다. 마지못해 독일 돌빵이라도 뜯으며 맛있다고 주문을 외는 경우가 있지만, 내맘속 1등은 언제나 한중일의 섬세하고 달지 않은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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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너무 맛있게 먹었던 빵들. 오른쪽은 과일쌀베이글. 인생빵이었다.

제목, 본문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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