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터지는 도이체반 (Deutsche Bahn)
In Germany we don't say,
"I've missed the train!"
독일에서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 않아요,
"기차를 놓쳤어!"
We say,
"Sehr geehrte Fahrgäste, der Zug nach München fällt heute aus."
우리는 이렇게 말하죠,
"승객 여러분, 오늘 뮌헨행 열차는 취소되었습니다."
독일에 살며 독일의 특징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영국인 유튜버 liamcarps의 영상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그의 영상은 독일철도 도이체반의 특징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도이체반(Deutsche Bahn)은 베를린에 본사를 둔 독일철도 주식회사다. 민영화를 추진했으나 사실상 실패하고 모든 주식을 정부가 소유하고 있으므로 독일의 공영철도라고 볼 수 있다. 독일열차이지만 국내뿐 아니라 독일과 국경을 맞닿은 6개 이상의 국가까지 연결하기 때문에 운영 노선이 상당히 방대하고 길다. DB가 운행하는 열차는 빨간색이 시그니처인 느린 열차 RE와 고속열차 IC, ICE, ICE-Sprinter, EC 등이 있다.
독일은 국제적으로 '정확'하고 '시간을 잘 지킨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독일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기차가 정시에 올 거라 기대하지만, 독일의 도이체반은 실로 연착의 마이스터(Meister: 장인) 그 자체다. 몇 분 Verspätung(연착)만 되면 다행인데, 30분, 90분, 심지어 200분 이상 연착도 다반사이고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안내방송으로 Zugausfall(기차취소)를 알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갈아타는 노선이라도 예약해두었다면 다음 기차까지 함께 놓치는 격이다. 좌석을 예약했다면 열차가 취소되는 순간 좌석도 사라진다.
얼마 전, 4시간 거리의 도시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열차가 제대로 왔다면 도보까지 포함해서 4시간 반이면 도착했을 테지만 실제로 6시간 반이 걸렸다. 일단 중앙역으로 가는 기차가 15분 연착되었고, 중앙역에 갔더니 예약해 둔 ICE가 현장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 경우 같은 노선의 다른 열차를 추가지불이나 사전고지 없이 탑승할 수 있다. 부랴부랴 20분 떨어진 역에 가서 40분을 기다려서 다음 열차를 탔다. 당연히 예약한 좌석도 없어졌기에, 눈치껏 빈자리에 앉아서 가야 했다. 이동만으로 사람 진을 이렇게 빼놓기도 쉽지 않은데 도이체반 대단하다.
2022년 기준 도이체반의 열차가 정시에 온 비율은 65%, 그마저도 여름철에는 60% 이하였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심지어 50% 미만이었다고 한다 (자료=tagesschau). 기차 2대를 예약했다면 1대는 연착된다는 소리다. 열차가 일정시간 이상 늦으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보상에는 약 6-8주가 걸린다.
구글에 '도이체반 연착'이라고 검색하면 아래와 같은 질문이 아예 고정 리스팅 되어있다.
왜 도이체 반은 그토록 연착이 많은가요?
- 장거리 기차의 연착에 대해 열차-기업연합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를 언급했다: 전체 열차망에 대한 건설작업 그리고 중앙 노선과 열차들의 높은 적재율 때문이다. 정시운행을 장기간 개선하기 위해 철도회사는 2024년 7월부터 중요 노선의 근본적인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계획이 어디까지 진행되었으며, 확실히 시행이 될 건지, 시행된다면 도대체 언제 마무리되는지에 대한 얘기가 없다. 최소 1년으로 안 끝난다는 소리다. 독일에 살다 보면 정말로 '공사판'을 수도 없이 본다. 길과 도로 그리고 열차 선로나 역이 공사로 Sperrung(차단) 되어있고 이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객들이 짊어져야 한다.
도이체반은 덧붙여 '직원 부족'을 이유로 꼽는다. 2023년에만 약 9000개의 일자리에 25000명 이상을 채용한다고 하는데 이 또한 제대로 이루어질지 미지수다. 사람을 뽑기만 하면 뭐하나, 교육시키고 현장에 투입되려면 최소 반년은 교육해야 할 텐데 역시 그 기간의 피해도 고스란히 승객들의 몫이다. 도이체반에는 단기간제 비정규직 자리가 상당히 많다. 따라서 직원의 교체주기도 짧은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지도 의문이다.
독일의 옆나라이자 우리의 제2 거주지인 스위스만 가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철도가 정시에 온다. 독일 생각하고 '어차피 늦겠지'라며 여유롭게 가면 스위스에서는 기차 놓친다. 스위스 철도의 정시엄수 비율은 92%이며 3분 이상 늦을 시 연착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기차가 사람보다 먼저 와 있는 경우도 많다. 남편이 스위스 내에서 출장갈 땐 예측한 시간에 집에 도착하는 반면, 독일로 출장이라도 가면 항상 늦는다. 명품시계의 본고장이 시간까지 잘 지켜주니 브랜드와 국가 이미지가 더 상승하는 것 같다. 같은 독일어권인데 참 다른 두 나라의 열차 서비스다.
본문 자료출처: rnd.de, tagesschau.de
제목 및 본문 사진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