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방] 세 번의 라마단을 건너다

by 하띠

그날 나는 바주 꾸롱(말레이시아 전통복)을 입고

강의실에 앉아 한입 크기로 잘린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띠리릭 -


문자 메시지 알림이 왔다.


‘아침부터 누구지? ’


“You look so energetic today. “


메시지는 단 한 문장뿐이었다.


발신인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

오늘 에너지 넘쳐 보인다고?

이게 무슨 소리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도대체 누가 이런 메시지를 보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머리는 복잡해지고, 자리는 가시방석이 되었다.

강의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플로리다(말레이시안 룸메이트)에게 문자를 보여주었다.


플로리다는 웃으며 내게 물었다.


“민, 혹시 오늘 강의실에서 뭐 먹었어?”

“응, 샌드위치, 우리가 맨날 먹는 거. “

“어제부터 라마단이 시작됐어.

그래서 짓궂은 친구들이 그렇게 메시지를 보낸 것 같아.”


“라마단? 그게.. 뭔데?”


2004년 내 나이 22살,

말레이시아 쿠칭에서 생활한 지

3개월 남짓 지났을 때의 일이다.


라마단이 시작되면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을 한다.

다들 금식을 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외국인 학생이 눈치 없이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다니.


철저히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혹시라도 현지 이슬람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무례한 외국인으로 치부될까 봐

걱정도 되고, 억울하기도 했다.


일부러 그랬던 게 아니라 몰라서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기회는 끝내 주어지지 않았다.


플로리다는 내게 괜찮다고 위로해 주었지만,

정작 나는 괜찮지 않았다.

왜냐하면 플로리다는 무슬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두 번째 라마단은 조금은 달랐다.


대학원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마야는 독실한 무슬림이었다.

히잡을 항상 두르고 있던 마야는

강의 중 주어진 잠깐의 쉬는 시간에도

기숙사로 돌아와 기도를 올렸다.


아침에 공들여 한 화장을 다 지운 뒤 세수를 하고,

손과 발을 깨끗이 씻은 후 기도복으로 갈아입었다.

무려 하루에 다섯 번.

화장까지 다 지워야 하다니,

새삼 부지런해야 무슬림이 될 수 있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기도하는 마야의 옆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꽤 오래된

나의 성경책이 나뒹굴고 있었다.


성경책과 코란이 한 방에서 공존하다니,

목사님이 들으시면 놀라실 일이겠지만

국제평화를 전공하는 우리에겐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2012년, 마지막 학기를 마친 나는 마야와 함께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족자카르타)를 여행 중이었다.


라마단 기간 중에 여행을 하게 되었기에

마야에게 괜찮은지 물었다.

마야는 유창한 한국어로 나를 안심시켰다.


“언니, 나는 걱정 마, 괜찮아.

그리고 언니는 외국인이라서 걱정 안 해도 돼.

음식 먹어도 돼.”


마야가 괜찮다고 말했던 이유는

여행 중 우연히 마주친 한 남자로 인해 알게 되었다.

우리 둘은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길을 걷는 중이었다.

갑자기 어떤 남자가

히잡을 쓰고 있는 마야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라마단 기간인데 왜 음식을 먹냐는 것이었다.


“내가 왜 음식을 먹어도 되는지는 말 안 해도 아실 텐데요? “


마야는 인니어로 대차게 쏘아붙였고,

남자는 머쓱해하더니 우리 눈앞에서 금세 사라졌다.


무슬림이라도

환자나, 임신부 그리고 일부 여성은

라마단 기간 중에도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마야와 라마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관용과 포용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말레이시아에서의 라마단 에피소드를 알고 있던 마야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해 주었다.


”언니는 그때 몰라서 그랬던 거잖아.

그리고 사실 우리 앞에서 음식 먹어도 전혀 상관없어.

말레이시아 친구들이 너무 했던 거 같아, 괜찮아 언니. “


맞는 건 맞고, 틀린 건 틀리다고 말하는

똑 부러진 마야의 성격을 알기에

그 말은 친구인 나를 위한 위로용 멘트가 아니란 걸 알았다.

마야는,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 주었다.

무슬림 친구의 입으로 괜찮다는 말을 들으니

8년 전 말레이시아에서의 나의 무지를 용서받는 기분이었다. 마음속 오래된 딱지가 떨어지고

새 살이 돋아나는 순간이었다.





세 번째 라마단은 내게 더욱 유쾌하게 다가왔다.


2013년 자카르타에서 함께 근무했던 보바는

본인을 무슬림이라고 소개했다.

보바는 라마단 기간이 시작되었는데도,

직원 휴게실에서 우리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의아했지만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는데,

장난기 많은 현지 직원이 대신 물어봐 주었다.


“라마단인데 밥을 먹어도 되는 거야?”

보바를 놀려대는 듯이 물었다.


“우리가 지금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데,

밥을 먹고 힘을 내서 일을 해야지.

아마 알라(Allah)도 이해해 주실 거야.”


보바의 재치 있는 말에

함께 점심을 먹던 우리 모두는 한바탕 웃었다.


세 번의 라마단을 건너는 동안 나는 울고 웃었다.

내게 문자를 보냈던 이름 모를 코스 메이트(course mate),

기숙사 룸메이트 마야 그리고 동료였던 보바.

라마단을 대하는 자세는 저마다 달랐다.


우리가 삶을 대하는 자세도 마찬가지다.


비록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로

과거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지난 시간의 경험과 시행착오, 끊임없는 사유가

오늘의 나로 만들었다고 믿는다.


현재의 나는 어떤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고 있는가?

삶에서 마주한 이들을 어떠한 태도로 대하고 있는가?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진 개인과 집단에게 얼마나 관대한 지,

차이와 차별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지,

나의 잣대만 고수하며 나와 다름을 평가하려고 들지 않는지,

타인의 서툼이나 실수에 얼마나 포용적인지


엄마라는 이름을 잠시 내려놓고,

조용히 눈을 감고 나를 되돌아본다.


#기억의 방

엄마라는 이름 뒤에 잠시 접어두었던, 하띠의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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