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팀장님의 메일 한 통

by 하띠

업무를 보던 중, 팀장님에게서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 수 신: 전체 직원

• 제 목: 민원 응대 관련 안내


고령 민원인에 대한 부적절한 응대 방식을 개선해 달라는 민원인의 요청이 있었으니, 다 같이 조금만 더 노력하자는 내용이었다.


메일을 읽자마자,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나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였다.


혹시 내가 고령의 민원인에게 불친절하게 응대한 장본인은 아닐까? 며칠간 사무실에서의 나의 모습을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내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민원인이 장년층과 노년층인지라 특정되는 인물이 없었다.


평소 내가 민원인을 응대하는 모습이 어떠한지 천천히 머릿속으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항상 친절하게 응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성이 높아진 적은 없었는지, 상대방 입장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하고 내 입장만 고집한 적은 없었는지 차분히 되돌아보게 되었다.


두 번째는 일흔을 훌쩍 넘긴 아버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어쩌다 한번 방문하는 관공서의 업무 절차에 익숙지 않을뿐더러, 요즘 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련된 매너도 갖추고 있지 않다. 성격이 급해 맥락 없이 본론부터 불쑥 말씀하시기도 한다. 아버지와 같은 분이 오셨다가 직원의 딱딱하고 사무적인 태도에 혹시 마음의 상처를 입은 건 아닐까? 나의 아버지가 겪었을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친절은 상대적이다.


똑같은 행동을 두고도 누구는 친절하다고 생각하지만 또 다른 누구는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다. 민원인을 응대하면서 수없이 겪는 일이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직장을 다니는 엄마에게 친절함이란 곧 신속함이다. 태도는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하지만 일처리가 느려서 한 시간 남짓한 점심시간을 다 잡아먹는 직원은 워킹맘에게 친절한 직원일 수 없다. 다소 사무적이더라도 민원인의 니즈가 무엇인지 단번에 파악하여 신속하게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이가 친절한 직원일 것이다. 시간이 항상 빠듯한 워킹맘에게는 최단 시간 내 목적 달성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위야 말로 진정한 친절함이 아닐까?


반면, 공공기관 업무 절차나 용어에 익숙지 않은 고령의 민원인에게 친절함이란 눈높이에 맞는 설명이다. 관공서 특유의 위화감으로 위축이 되지 않도록, 누구라도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순화하여 설명하는 것. 이곳이 당신을 도와줄 수 있는 곳이라는 대화의 분위기를 조성하여 안심하도록 하는 것이 곧 친절이다. 물론 태도도 정겹고, 일처리도 신속하다면 그건 최고의 친절일 테지만.




친절은 쌍방향이다.


친절은 일방향이 아닌 ‘주고받는’ 상호작용이다. 기침이 몇 주 동안이나 멈출 생각을 안 했다. 마스크를 쓰고 업무를 하고 있었지만 중간중간 기침으로 인해 대화를 멈춰야 했고, 죄송하다고 말해야만 했다. 어느 날, 내 앞에서 신청서를 쓰던 방문인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작성하시는데 궁금한 사항이 있냐고 여쭈었더니 하시는 말씀,


“감기에 걸리셨어요? “


걱정 어린 표정으로 건넨 그 한마디가 내게 친절로 다가왔다. 공무원에게는 친절의 의무가 있다. 매 순간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친절이 쌍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친절은 더 이상 의무가 아니게 된다. 서로를 웃음 짓게 하는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으로 바뀐다.


Be kind, for everyone is fighting a hard battle.
- Ian MacLaren

모든 사람들은 우리가 모르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어느 책에서 본 듯한 말이 떠올라 출력하여 사무실 책상에 붙여 놓았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출근 전 아이와 전쟁을 한바탕 치르고 난 뒤 사무실에 도착하면 이미 기진맥진하다. 바쁜 마음에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 날은 눈물을 삼키면서 출근을 한다. 컨디션이 안 좋은데 밀린 집안일까지 하다가 허둥지둥 집을 나서고, 집안에 해결되지 못한 일들로 인해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오늘 내가 마주한 사람도 나와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과장님은 하루에 단 한 명이라도 친절함으로 감동시켜 보라고 하셨다. 내가 알지 못하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에게 감동을 주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상처는 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veryone is fighting a hard battle.


#작가의 말


마지막 사진은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마당의

나무에 매달려 있는 난쟁이입니다.


눈을 맞으면서도

끝까지 매달려 있는 모습이

매일 일상의 전쟁을 버텨내는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웃음이 피식 났습니다.


Just hang in there!


각자의 전투를 치르느라

지친 서로에게

우리 조금만 더 친절해지면 어떨까요


설 연휴를 마치고

다시 본업으로, 일상으로 복귀한

당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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