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이 한바탕 우리 집을 할퀴고 지나갔다. 주말 아침 눈을 떴을 때 코와 목이 거의 회복된 것 같아 안도감이 밀려왔다. 아직 열이 있는 남편을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국거리용 소고기 한 팩을 꺼내고 무를 나박하게 썰어 두 개의 솥에 나누어 담았다. 하나는 하얀 소고기뭇국용, 나머지 하나는 빨간 소고기뭇국용이다. 감기엔 얼큰한 경상도식 소고기뭇국이 약이 될 때가 있다.
오랜만에 소고기뭇국을 끓이려고 하니, 신혼시절 빨간 소고기뭇국을 처음으로 마주한 남편의 당황한 표정이 문득 떠올랐다.
“이게 뭐야? 육개장이야?”
“육개장이라니? 이건 소고기 뭇국이잖아.”
나의 상식이 상대방에겐 상식이 아닐 때가 종종 있다. 빨간 소고기뭇국처럼. 서울 토박이인 남편은 태어나서 빨간 소고기뭇국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강원도 토박이지만 고향이 경상남도인 어머니 덕분에 나는 얼큰하고 빨간 소고기뭇국만 먹고 자랐다.
어느덧 결혼 6년 차. 열이 나고 기침을 하는 남편은 아침상에 올린 빨간 소고기뭇국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거봐, 빨간 소고기뭇국이 더 맛있다니까. '
침묵 속 승리를 확신한 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남편은 아이가 점심때 먹고 남긴 하얀 소고기뭇국을 솥째 끌어안고 먹는다. 하얀 소고기뭇국의 승리로 역전하는 순간이었다.
사업을 하시느라 바쁜 어머님을 대신해 할머님 손에 자란 남편은 할머님이 만들어 주셨던 음식에 대해 종종 이야기한다. 손맛이 좋으셨던 할머님은 대가족들의 매 끼니를 책임지셨는데, 특히 하얀 소고기뭇국이 일품이었다고 한다.
할머님 이야기를 하는 남편의 속눈썹 끝에 깊은 그리움이 매달려 있다. 혹여 작은 위로가 될까 깊어, 하얀 소고기뭇국을 끓일 때면 불 앞에 있는 시간이 더욱 길어진다.
할머님의 레시피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남편이 기억 속의 맛을 더듬어 말하면, 나는 손 끝과 혀 끝의 감각에 의존하여 어림짐작으로 흉내를 내볼 뿐이다.
그런 나의 정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 소고기뭇국은 하얀색도 빨간색도 완판이 되었다. 오랜만에 가족을 위해 만든 음식인데 모두 잘 먹어주니 해야 할 일을 잘 마무리한 기분이 든다.
식탁 위 하얀 소고기뭇국과 빨간 소고기뭇국이 공존하는 우리 집은 오늘도 평화롭다. 감기의 기운이 물러가고 다시 활기 넘치는 일상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