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에서 온 붉은 대게

by 하띠

어젯밤 아이의 이마가 활화산 같더니 A형 독감에 걸렸다고 한다. 나 역시 근육이 욱신거리면서 열이 나기 시작한다. 약을 입에 빠르게 털어 넣고 노트북을 켠다.


‘아, 왜 하필 오늘이야... 회사에는 또 뭐라고 해야 하나.‘


회사에서 항상 당당하던 내가, 아이가 아플 때면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엄마로 변한다.


“팀장님, 아이가 열이 나서 출근이 힘들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이가...”라는 말을 몇 번이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전송 버튼을 누른다. 오늘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도,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먼저 안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현관문을 열어보니 아이스박스 한 상자가 놓여있었다. 상자를 여는 순간 짭짤하고 달큰한 바다 내음이 코를 찌른다. 익숙한 고향, 묵호의 냄새. 상자 속 빼곡히 누워 있는 단단하고 붉은 대게는 코로나19가 유행하던 4년 전을 떠올리게 했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마트 외에는 외출을 자제했는데도 우리 세 가족은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혹시 아이도 코로나19 증상이 있나요?”


보건소 직원이 역학조사를 위해 묻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흐느끼며 그렇다고 말했다. 첫돌도 지나지 않은 솜털이 보송한 아이가 코로나19에 걸리다니. 아이가 감염병에 걸린 것은 모두 엄마 탓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것만 같았다.


새벽 2시, 불덩이가 된 아이의 체온을 여러 번 재어 보았지만, 체온계 속 숫자는 37도에 머물러 있었다. 해열제를 먹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그저 아이를 품에 안고 울기만 했다. 초보 엄마는 체온계가 고장 났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다.


온 가족이 코로나19에 걸려 외출을 할 수가 없는 상황. 현관 앞에 구호 물품이 도착했다. 바로 부모님이 놓고 가신 붉은 대게 한 상자였다. 꽁꽁 얼어버린 손으로 아버지가 바다에서 건져 올렸을 대게를 보면서 뭉클함과 동시에 이유 모를 안도감이 밀려왔다. 아직도 누군가 나를 먼저 생각해주고 있어서였을까.


묵호에서 온 단단하고 붉은 대게는 투박한 부모님의 사랑과 닮아있다.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부드럽다. 껍데기는 거칠고 붉지만, 그 안은 포슬하고 하얗다.


“많이 묵어라”


전화상으로 무심히 한마디 던지시지만 그 속엔 아픈 자식을 가까이서 돌보지 못하는 부모님의 안타까움이 묻어 있다.


“대게는 먹을 땐 좋은데, 다 먹고 나면 냄새도 나고 껍데기도 치워야 하고 귀찮아.”


어릴 적 투정 부리던 딸은 어느새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대게의 단단한 껍데기를 가르고 그 속의 부드러운 살만 발라 아이의 입 속에 밀어 넣어준다. 아이는 아파서 눈을 흐리멍덩하게 뜬 채 엄지를 치켜세운다.


”역시, 할아버지가 잡은 대게가 최고야. “


때마침 택배를 잘 받았냐는 어머니의 문자가 왔다. 나는 아직도 대게의 껍데기를 귀찮아하는 철부지 딸이지만, 부모님의 사랑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아이를 다시 품에 안는다.


나는 언제쯤이면 부모님처럼, 내 아이에게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품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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