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위의 세 가족
강릉에서 일을 보고 난 뒤 속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설 전이라 고속도로 위에 차가 조금 많아진 것뿐,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남편이 운전대를 잡고, 그 뒤에 앉은 아이는 <엔칸토> ost를 흥얼거렸다. 그런데 북양양 IC를 몇 킬로미터 앞두고 갑자기 차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왜 이래? “
휴대폰 메시지에 답장을 하고 있던 나는 고개를 들어 밖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장면이 믿기지가 않았다. 1차로를 달리던 군차량이 우리 차가 달리고 있는 2차로로 차선 변경을 시도하고 있었다. 문제는 군차량이 우리 차와 옆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황한 남편이 클락션을 여러 차례 울렸으나 군차량은 아랑곳없이 차선을 침범하여 우리 차와 부딪히기 일보직전이었다.
우리는 사고를 피하려 오른쪽 갓길로 비켜나게 되었고, 균일하지 못한 도로 상태로 인해 차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군차량은 점점 더 다가왔고 이대로 가다간 갓길 끝까지 밀려나가 난간 밖 낭떠러지로 떨어질 판이었다. 아이와 군차량 사이엔 얇디얇은 문짝 한 장이 전부였다. 나는 사색이 되었다.
남편은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속도를 서서히 줄여가면서 군차량이 차선 변경을 할 수 있도록 길을 내주었다. 도로 위 상황을 고려했을 때 남편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간신히 위기를 넘기고 나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북양양 IC를 통과한 뒤 국도에 차를 세웠다. 군차량에 탑승한 군 관계자에게 어찌 된 상황인지 설명을 요청했으나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운전병을 교육 시키겠다는 형식적인 답변만이 돌아왔다. 죽음의 공포를 마주했던 우리에게 그들은 교육을 말하고 있었다. 흥분한 나를 대신해 남편이 군 관계자와 대화를 마저 마무리하고 차로 돌아왔다.
“군인 아저씨는 우리를 지켜줘야 하는데 군인 아저씨 차 때문에 우리가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했잖아. 가짜 차로 훈련을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놀란 상황에서도 아이는 이성적으로 따박따박 따진다. 군인과 소방관 그리고 경찰은 아이들에게 영웅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들이니 항상 감사해야 한다고 평소에 아이에게 교육을 해왔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군차량과 오늘 같은 일을 겪으니 순간 아이에게 할 말이 없어졌다.
“근데 아빠가 아까 병이라고 하던데, 그건 무슨 병이야?”
남편이 운전병이라고 말한 것을 아이가 들은 모양이다.
“병은 아프다는 뜻이 아니고, 군대에서 병사(soldier)란 뜻이야. 대장님 밑에 있는 사람을 병이라고 해. 군대에서 운전을 하는 병이 운전병이고. “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설명을 한다고 했으나 되돌아온 아이의 답변이 걸작이다.
"아 그렇구나, 근데 엄마 그 병은 어떻게 고쳐야 하는 거야?"
남편과 나는 크게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아이는 운전이 서툰 병으로 이해한 모양이다. 아이의 한 마디가 고속도로 위 우리 가족이 마주했던 공포를 유쾌하게 날려 보냈다.
그 병은 정말, 어떻게 고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