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하띠(Hati)

by 하띠

"여보, 제 필명은 하띠로 하려고요."

필명을 정한 후 남편에게 말했더니 옆에 있던 아이가 묻는다.

"하띠? 엄마 그럼 나는 무슨 띠야?"

아이의 순수하지만 진지한 질문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 공주님은 소띠지!"


하띠(hati)는 인니어로 '마음'이란 뜻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헤어질 때면 언제나 “하띠 하띠, 야(Hati-hati, ya)”라고 인사한다. 마음을 써서 조심하라, 살펴가라는 의미이다. “하띠 하띠”는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틀에 박힌 인사가 아니라 상대방을 걱정하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말이다.


2013년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인턴십을 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6개월간 머물렀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이방인에게 현지인들이 건네는 다정한 인사는 타국살이를 외롭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지만 자카르타에서의 기억이 빛이 바래가도록 글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인생은 하루하루가 전쟁터였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함께 속초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세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연고도 없는 환경에서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어린이집을 급히 알아보고, 가까운 병원과 마트는 어디인지 파악해야 했다. 아이가 아프면 남편도 같이 아프기 일쑤였고, 유일한 보호자가 되어 버린 '엄마'는 아플 수도 없었다.


번아웃이 왔고, 돌파구가 절실히 필요했다.


어느 날 사무실 근처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여행작가 양성 교육 참여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상하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작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아 힘이 불끈 솟았다.


두 달여 동안 여행작가 교육을 듣고 난 뒤 내 이름의 글과 사진이 담긴 작은 문집을 만들었다. 얼마 만에 누려 보는 완주의 기쁨인지. 그 후 글을 제대로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열망이 커지면서 브런치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필명을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낮에는 타인의 삶을 듣고, 밤에는 속초의 파도 소리에 기대 스스로의 마음(hati)을 가만히 듣는다.


글을 쓰며 마음이 머문 자리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아픈 곳을 어루만지고, 잘한 일은 칭찬하며, 고마웠던 순간은 오래 기억한다.


타국에서 이방인의 길을 따뜻하게 밝혀주었던 “하띠 하띠”라는 인사말처럼 필명 하띠는 글의 온도를 통해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작은 다짐이다.


마음을 다해, 하띠 하띠,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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