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로 살아본 한 달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린 지 한 달이 지났다. 공무원이 브런치 작가를 하려면 겸직 신청을 해야 한다기에 승진을 앞두고 있던 나는 잠시 주저했다. 작가 소개글과 활동 계획안을 몇 번이고 다듬으며 승진 발표가 나기만을 기다렸다. 승진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야 겸직 신청을 할 수 있었다.
겸직 승인을 기다리는 동안 다른 작가들은 글을 어떻게 쓰는지 둘러보며 좋아요를 눌렀다. 그 사이 내 서랍에는 세상의 빛을 기다리는 글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회사에서 겸직이 승인되었다는 이메일을 받고 나서야 당당히 브런치 작가 신청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을 받았다.
한 달 동안 40여 편의 글을 올렸다. 반은 에세이 형식의 글이고, 나머지 반은 아이가 마법 주머니에서 반짝이는 문장들을 꺼낼 때마다 기록하는 마음으로 짧게 쓴 글들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는 잘 썼는데 반응이 별로인 글도 있었고, 가볍게 썼는데 반응이 좋은 글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밀도 있게 쓰려고 노력했던 글들이 많은 공감을 받았다.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은 문장 속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 40대의 일하는 엄마이다. 남편은 그런 나를 항상 지지해 준다. 글을 쓴다고 했을 때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얼기설기 엮은 민낯의 문장들을 들이밀어도 남편은 싫은 내색 한번 없이 꼼꼼히 읽고 피드백을 준다. 글의 구성, 문장 호응, 맞춤법까지 세심하게 짚어 주면서 마지막엔 따듯한 감상평도 잊지 않는다.
한 번은 글을 쓰다가 급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여보 카라멜이 맞아? 캬라멜이 맞아?”
“하띠 작가님,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캐러멜 입니다만...”
“내가 작가로 성공한다면 그건 당신 덕분이야. ”
남편은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찬성하면서도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는 것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글을 발행한 후 라이킷이 얼마나 눌렸는지, 구독자는 얼마나 늘었는지에 연연하다 보면 정작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브런치는 그저 흔한 sns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여보, 조앤 롤링은 브런치를 하지 않아.”
해리포터의 팬인 남편은 조앤 롤링 작가 이야기를 종종 꺼낸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결국 그녀가 스스로의 길을 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글에 대한 주변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덕분임을 남편은 힘주어 말했다.
라이킷 숫자를 확인하고 있던 나는 남편의 말에 왠지 양심이 찔려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책을 펼쳤다. 눈은 시원해지고, 가슴은 따뜻해졌다. 대작가의 문장은 브런치 서랍 속 완성되지 못한 문장들과 씨름하던 나를 광활한 벌판으로 데려가 마음껏 숨 쉬게 해 주었다.
같은 문장이라 할지라도 독자로서 아무런 고민 없이 읽는 것과 글을 쓰는 입장에서 읽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독자는 작가의 의도를 따라가며 읽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그 의도는 물론 글의 형식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작가의 문장을 하나하나 해체하듯 읽게 되는 것이다. 그럴수록 내가 더 작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나도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여보, 나는 앞으로 10년 동안 포기 하지 않고 글을 써볼 생각이야. 그럼 50대 중반이 될 텐데, 그땐 뭐라도 되어 있지 않을까? “
“뭐가 안되면 어때, 지금 당신이 글을 쓰면서 이렇게 행복한데. “
글을 쓰면서 나의 배우자가 얼마나 근사한 사람인지 새삼 깨닫는다.
스스로의 마음에 귀 기울이며, 내가 행복한 글쓰기를 할 것. 브런치 문을 두드릴 때의 초심을 잃지 않고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쓸 것이다.
#작가의 말
앞으로 좋은 문장들을 더 많이 읽고,
느리더라도 꾸준히 글을 쓸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