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냄비를 꺼내두고

내일, 나는 떠날 수 있을까

by 하띠

일하느라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남편을 위해 저녁에 배추된장국을 끓였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자투리 애호박과 두부가 있어 함께 넣었다. 어린이집에서도 저염 된장국을 먹는다기에 조금 먹어보겠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질색팔색을 했다. 아이도 사회생활을 하느라 억지로 삼키고 있었구나 싶어, 안쓰러웠다.


된장국이 보글보글 끓어 오른 자리엔 용암 같은 흔적이 남았다. 예전엔 인덕션 전용 클리너로 광이 나도록 닦았는데, 요즘은 그 열정이 사라졌다. 스펀지로 한 번 훔친 인덕션 위에 라면용 냄비 하나와 프라이팬 하나를 올려두었다. 프라이팬 위엔 실리콘 조리용 스푼도 함께 얹어두었다. 엄마가 없는 동안 아이와 생활해야 하는 아빠의 동선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싶어서다. 엄마의 잔소리 없이 둘이서 라면 파티를 하며 깔깔 웃고 있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이의 옷장 서랍엔 인덱스를 붙였다. 팬티, 양말, 내의(상의), 내의(하의), 티셔츠, 바지라고 적어두고 순서대로 옷을 넣었다. 드레스는 행거에 따로 걸어두고 그 옆에 어린이집 가방을 걸어두었다. 내일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이라 준비물이 많다. 준비물을 넣은 가방은 현관 앞에 따로 놓아두고 남편에게 잊지 말라고 일러두었다.


내일 아침 아이의 식사는 모닝빵과 찐계란이다. 밥솥에 계란을 넣고 한 시간을 쪘다. 아직 혼자이던 시절, 무려 30만 원이나 되는 밥솥을 샀다. 가격 때문에 망설이는 내게 마트 직원은 말했다. “나중에 결혼하면 아이 이유식 할 때도 쓸 수 있어요. “

내솥을 교체한 후 이유식을 거쳐, 지금은 계란 전용 밥솥으로 12년째 제 몫을 해내고 있다.


빨래통에 있는 빨래까지 모두 비우고 나서야, 내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 검은색 배낭 하나가 전부다.


내일 눈이 올 것이라고 하던데, 늦지 않게 떠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일주일 전부터 엄마가 집을 비울 것이라고 이야기해 두었지만, 아이는 눈물바람으로 내일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일단 그건 내일의 우리에게 맡겨두기로 하고 잠든 아이 곁에 누웠다.


내일, 나는 과연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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