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3일 비 내리는 아침, 성남행 버스에 오른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중학교의 교문에 내걸린 현수막이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속초를 벗어나 미시령 톨게이트를 통과하자, 비는 예고도 없이 눈으로 바뀐다. 곳곳의 나무들이 말없이 세상의 하얀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아이를 두고 3년 만에 집을 떠나는 엄마는 속이 타들어간다. ‘미시령을 넘을 수 있을까.‘ 초조한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버스는 눈길 위에서 거침없이 질주한다. 속이 울렁거린다.
아침에 가지 말라고 울먹이던 아이의 편지가 떠올라 가방에서 조심스레 꺼내본다.
“엄마, 힘이 들거나 내가 보고 싶을 때 꺼내봐. ”
노란 포스트잇이 편지 모양으로 곱게 접혀 있다. 편지 속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다. 글씨로 다 담을 수 없는 아이의 애틋한 마음만이 들어있다.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인제를 벗어나면서 눈발이 서서히 약해진다. 경기도로 진입할 무렵에는 해가 난다. 안도감이 밀려온다.
성남에서 출발한 셔틀버스가 교육원 입구에 다다르자, 대관령 옛길 못지않은 구불구불한 길이 나타난다. 모퉁이를 아슬아슬하게 여러 번 돌고 나서야, 문형산 중턱에 자리 잡은 교육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허기진 마음을 채우듯 산속의 싱싱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신다. 달큰한 산속 내음으로 코와 폐를 채우고 또 채운다. 단지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을 뿐인데, 일상에 지쳐버린 맥박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천천히 걷는다.
내가 집을 떠난 이유는 교육원에서 열리는 회사의 업무전환자 교육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사실, 나만의 숨은 이유가 따로 있다. 그건 바로 아이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가족 중심의 삶을 살기 위한 연습.
세 살 무렵 내가 교육으로 집을 비웠을 때 아이는 처음으로 이불에 실수를 했다. 기저귀를 떼는 동안 단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얼마나 불안했을까. 전화기 속 엄마를 찾으며 울부짖던 아이의 모습과 그 옆에서 무력해진 남편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한다.
그 후로 나는 교육에 참석하지 않았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아이는 어느덧 여섯 살이 되었다.
드디어 나는 집을 떠날 용기를 냈다.
떠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오늘이 그 연습의 첫걸음이다.
3박 4일 동안 엄마는 아이 곁에 없다. 엄마도, 아이도 서로가 없는 곳에서 잘 견뎌내는 연습을 시작한다.
아이 없는 밤은 생각보다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