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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금도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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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neon Oct 04. 2015

화해를 위한 독서

[황정은, 파씨의 입문]

나의 2015년은 황정은이 가져다 주었다.



지난 해의 끄트머리 언젠가에, 나는 <파씨의 입문>으로 황정은 세계에 입문을 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느낀 감정은 작품들이 음울하고, 먹먹하다는 것. 작품 하나 하나가 무척 좋았지만 그 감정을 새해까지 갖고 가긴 싫었다. 그래서 해가 바뀌기 전에 읽어 치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난 시간이 새해 첫 날 저녁. 나는 해가 바뀌는 그 순간에, 황정은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새 해, 헌 해 하는 건 물론 인간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 대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 의미 없을 테지만, 찝찝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나의 2015년은 황정은이 가져다주었고, 그의 문학은, 책 안 읽는 내가, 올 한 해 가장 눈여겨 본 작품들이었다.



올 한 해 황정은이 나에게 이슈였던 것이, 단지 2015년의 시작을 그와 함께했기 때문은 아니다. 황정은의 작품을 읽으며 이 사회의 이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파씨의 입문>을 읽으며 느낀 음울함과 답답함, 불편함은 작품 속에 산업화의 이면, 단절, 소수자 문제, 부당 계약, 가난 등- 그간 외면해 온 주제들이 작품 중심에 놓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후에 읽은 황정은의 작품들에서도 그러한 주제와 불편한 느낌은 계속되었다.

지난 해 말, 나는 <파씨의 입문>을 해가 지나기 전에 다 읽어 치우고 밝고 구김 없는 새 해를 맞이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게으름 탓으로 나의 2015년은 황정은이 열어줬고, 운명처럼 한 해동안 황정은의 세계가 나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사회의 불공정함"을  외면하면 안 된다고 계속해서 말하고, 몸짓했다.



나는 이제 양심에도 피하지방이 두터워져, 마음이 무뎌질만큼 무뎌진 사람인데. 그럼에도 황정은 덕분에 이따금씩 불편하고 따가웠다. 올해 초에 <파씨의 입문> 속의 부조리함을 잊지 않고자 리뷰를 한 번 썼었다. 그리고 다시 또 해가 바뀌려는 지금, 나는 다시 브런치에 리뷰를 고쳐 쓴다. 그리고 생각한다. 수십번이고 불편해지고, 분노하겠다고. 나는 황정은의 세계에 입문했으니까.







물이 가득 담긴 둥근 유리병이, 창문 밖 세상을 비춘다. 유리병 속에서 차가 달리고 사람들이 걷는 모습이 보인다. 익숙한 풍경인 동시에 굉장히 이질적이다. 굴곡진 유리병을 통해 풍경은 뒤집어진 채 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유리병 세상 속에서 사람은, 차는 아무렇지도 않게 걷고 달리지만, 나에게는 그게 무척 기묘한 느낌을 준다. 나와는 단절된 느낌.




<파씨의 입문> 속의 세상과 인물들을 보는 나의 느낌은 그와 같았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세상을 살아가고, 저들끼리 대화를 하고 웃고 사랑도 나누지만 나와는 단절된 느낌을 준다. 겉으로 슬쩍 보기에 그들의 삶은 나와 같았지만 곧 이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눈 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가령 사람의 얼굴을 한 옹기가 말을 건넨다거나, 고양이가 몇 번이고 죽고 다시 산다거나. 삼 년 넘게 낙하 중인 이도 있었고, 영하 삼십 도 아래의 혹한에서 길을 떠나는 이도 있었다. 이름도 밈, 디디, 도도, 파씨, 팽 ... 그들과 공감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나에게는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되어 함께하기가 쉽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은 단편집임에도 불구하고 각 작품들이 마치 연작소설처럼 이어지는 느낌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데니 드비토>에서 "세 개의 점이 하나의 직선 위에 있지 않고 면을 이루는 평면은 하나 존재하고  유일하다,라고 중얼거리는 원령이 들어왔다"고 쓰여 있는데, 바로 다음 작품인 <낙하하다>에서도 주인공 '나'가 "세 개의 점이 하나의 직선 위에 있지 않고 면을 이루는 평면은 하나 존재하고 유일하다"라고 끊임없이 얘기한다.

(내용이 유사하진 않지만) <양산 펴기> 바로 다음 단편이 <디디의 우산>이라는 점에서 제목의 유사성을 갖는다. <뼈 도둑>에서 영하 삼십 도의 강추위와 지구 멸망의 분위기는 바로 다음 작품인 <파씨의 입문>으로도 이어진다. 두 작품에서는 음울한 분위기를 공유하되, <뼈도둑>이 멸망을 얘기한다면 <파씨의입문>은 최초를 얘기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기도 한다.

서울에 조성된 청계천 아래에는 진짜 하천이 몰래 흐르고 있다는데, 이 책 속의 작은 단편들도 은밀하게 서로 이어져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속 인물들은 내 눈에만 이상하게 보일뿐, 그들은 서로의 상황을 전혀 의아해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유리병.

작품 속 인물들이 보기에는, 내가 (독자가) 유리병을 통해 비치는 거꾸로 된 모습일 것이다. 그들의 세상은 서로 이어져 있지만, 나는 홀로 떨어진 곳의 외딴 존재이니까. 이렇게도 사회는 상대적이다.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는커녕 소통을 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유리병이 보여주는 거꾸로 뒤집어진 세상을 사는 우리는 서로 화해할 수 있을까.
그들이 유리병을 넘어서 나에게 온다면, 혹은 내가 그들과 같은 위치인 유리병 앞으로 간다면
우린 함께 똑바르게 서거나 혹은 함께 거꾸로 뒤집어지거나 하겠지.
그렇게 된다면 어느 정도 한 자리에서 손을 맞잡고 대화를 나누고 할 수는 있겠지만

글쎄.. 진정한 화해, 무한한 소통은 세상을 뒤집어 보이게, 이해 불가하게 만드는 유리병을 깨부술 때야 이루어지지 않을까.  


최소한, 저 투명한 물 장벽이라도 없다면.



54.
오랫동안 내가 무엇이었는지를 잊고 있었다.
나는 톱밥가루가 날리는 서랍에 든 앨범 속에서, 사진 한 장에 붙어 있었다. 여름옷을 입은 여자가 흰 돌이 박힌 벽을 등지고 서있었다. 그녀는 한쪽 팔을 들어 프레임 바깥을 가리키고 있었고, 흐릿한 이마엔 머리카락이 조금 빠져 있었다. 생전의 내 모습이라는 걸 한참만에 알았다.
나야,라고 생각한 순간엔 윤곽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것이 비늘처럼 곤두섰다가 가라앉으며 나는 일순 확고해졌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일순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사라지고 있는 듯했다.
사라진다기보다는 너무 광범위하게 번지고 퍼져서, 끝내는 돌이킬 수 없이 묽고 무심한 상태의, 일부가 되는  듯했다. 나는 아직 나의 일부인 나를 추슬러 간신히 서랍에서 흘러나왔다.



74.
아주머니도 쓸쓸했을까.
평소엔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도 별로 없어 쓸쓸하게 살고 있었을까. 세 개의 점이 하나의 직선 위에 있지 않고 면을 이루는 평면은 하나 존재하고 유일하다, 혼자서 그런 것을 외운 적이 있었을까. 세 개의 점이 하나의 직선 위에 있지 않고 면을 이루는 평면은 하나 존재하고 유일하다, 얼굴이 완고해질 때까지 외운 적이 있었을까. 완고한 얼굴이 되어버릴 때까지 외우고 외운 적이 있었을까. 그러므로 지금쯤 어디선가 떨어져 내리고 있지는 않을까. 아주머니만의 지옥에서, 하나도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로, 혼자서 떨어지고 있지는 않을까.
다름 아니라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주머니였을지도 모르겠다.



77.
외롭고 두려운 것도 관성이 되었다.
관성적으로 외롭고 두렵다.
외롭고 두렵고 무엇보다도 지루하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진다.
어디든 충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삼 년째 떨어지고 있으니 있으니 슬슬 어딘가 충돌해도 좋을 것이다. 부서지더라도 충돌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뭘 할까 뭐라고 할까 고마워요 정도면 친절할까. 친절하게 충돌해주어서 고마워요 아무에게도 곳에도 닿지 못하고 떨어져 내린다. 언젠가는 어딘가에 닿을 것이라 희망을 품었다가도 이렇게 떨어져서야 가망이 없다는 낙담뿐이다. 누가 누가 누가 없어요 나와 나와 나와 충돌해줘.



119.
너는 이름이 뭐냐 뭐라는 짐승이냐 이름도 없이 살아가니 좋으냐 이 몸이 이름을 부쳐줄까 몸 몸 몸은 어떠냐 몸 돌이킬 수 없도록 몸이라 이봐라 몸 그러고 보니 너 참  볼품없구나 보잘것없는 몸이로구나 보잘것없기로는 나도 뒤처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보잘것없는 인생이다 보잘것없는 것을 먹고 보잘것없이 살아왔다 돈도 없고 배경도 없고 박차고 나갈 패기도 없이 말이다 내일 죽어도 안타까울 것이 없으나 아들이 하나 있다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다 살아있다면 아비와는 다르게 패기 넘치게 살아있을 것이다 그놈은 더 좋은 것을 먹을 것이다 내가 먹어보지도 못한 것들을 듬뿍 먹을 것이다.



129.
나는 또 한 번의 일생을 두려워하고 있다. 너무 많은 것들이 그들의 손에 달렸으니 목숨조차도 내 것 같지 않은 이런 세상은 두 번도 성가시다. 일생일사로 기품 있게 살아가는 다른 짐승들과는 다르게 눈물 흘린다. 다시 일생이 어떨 것인가 내일이라도 이 장막 안에 나타나 인간은 또 어떨 것인가 생각하며 어디까지나 비천하게 걱정하고 있다.
묘생 십오 년, 이름은 몸.
일생이 곧 끝날 것이다.



192.
아침에 그는 생선뼈만도 못한 무게감으로 외양간에 서서 흘러내리는 물을 바라보았다. 세수를 한다, 출근 준비를  한다,라고 생각하며 물이 고여가는 가망 없는 개수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장의 얼굴을 분명하게 떠올릴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일 년이나 되었는데. 사람은 잊는다. 일 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는 차고 거친 물로 세수를 하고 두꺼운 옷을 찾아 입은 뒤 서리로 덮인 처 속으로 기어들었다. 거기까지만 해도 하루를 전부 보낸 것처럼 피로했다. 열쇠를 꽂고 심호흡을 하고 시동을 걸었다. 반응이 없었다.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로 시도해보았다.
세 번, 네 번째.
상당한 간격을 두고 다섯 번째.
그는 차를 내버려두고 집 안으로 돌아갔고 그 뒤로 사람들 틈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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