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eneon Mar 04. 2016

깊이로

최승자, 散散하게, 仙에게


.

.

.

일찌기 나는 흘러가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사람들이 길이로 넓이로 흘러가는 동안
나는 깊이로 흘러가는 것뿐이라고.
그러나 깨닫고 보면 참으로 엄청나구나.
내가 파놓은 이 심연
드디어는 내 발목을 나꿔챌
무지몽매한 이 심연.
깊이와 넓이와 길이로 동시에 흐르기 위해선
역시 물처럼(바다!) 흘러가야 하지 않을까.
모든 숨을 다 내맡기고
빨간 염통까지 수면 위에 동동 띄운 채.



이제 진실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십 년 전에도 십오 년 전에도
똑같은 단어와 똑같은 문법으로써
물었었던 그 질문.
그런데 어째서 그 질문의 배후에
이상한 흉칙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되었는지.
나는 언제나 내가 먹는 밥이
진실한 밥, 깨끗한 밥이기를 원했지만,
이게 뭐냐, 가해와 피해와 가학과 자학과 자기 기만으로 얼룩진 밥.
(생각나니, Das Brot der frühen Jahre?)
하지만 이런 게 삶일 줄은 몰랐다고 말하지 말자.
서른 세 살(너는 서른 넷) 나이에 그렇게 말한다는 건, 범죄 행위다.

.

.

.


매거진의 이전글 빨간코의 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