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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나 May 21. 2016

인연이란

[디지털노마드 인 제주] 혼자여행 8박 9일의 여정 2일째

아침에 생각보다 눈이 일찍 떠졌다.

내 의지는 아니었고 주변 사람들이 일찍부터 챙기다보니 나까지도 눈이 떠지더라. 샤워를 하고 1층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같은 방에 계시던 분이 내려왔다. 토스트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심에 고기국수를 드시러 간다길래 ‘그럼 같이 갈까요?’했더니 지수님도 기분 좋게 응했다.


아, 그러고보니 아침에 매니저님이랑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된 것인지 왜 게하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여러 가지 설명을 했다. 그러면서 주변의 맛있는 곳은 추천받다가 매니저님이 선뜻 어떤 티켓을 주더라. 아라리오 뮤지엄이었는데 유명한 분이 모텔이나 시네마같은 건물을 탈바꿈해서 안에 작품을 전시한다고 했다. 오오, 아무 계획도 없던 나는 감사하다며 덥석 물었다. 지나고 나서야 하는 이야기지만 이걸 본 다음에 매니저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몇 번 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좋은 장소를 선물받은 느낌이었으니까. 제주에 오면 꼭 추천하고 싶은 곳 중에 한 곳이 될 듯하다. 물론 취향에 맞아야 하겠지만 말이지.

아침마다 잘 챙겨먹었던 토스트

오전 11:30쯤이 되자 지금 출발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말에 정리 후 밖으로 향했다. 제주 중심지에 온 것은 난생처음이어서 그런지 뚤레뚤레 이것저것 살폈다. 목적지는 자매국수였는데 게스트하우스 매니저님도 거기 유명하다고 하더라.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1시간 정도 대기를 했는데 대기하는 동안 지수님과 이런저런 인생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렸다. 참고로 번호가 3번이어서 대체 번호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했는데 60번이 마지막으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밥을 먹으며 중학교 때 미국을 갔다던 지수님에게 ‘어떤 언어가 더 편해요?'라고 물어보니 그래도 자기는 늦게 미국을 간 것이어서 한국어가 편하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이때부터 영어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것을 보면 난 이번 제주여행에서 영어와 뭔가 연관이 되어 있었긴 했나 보다. 밥을 먹은 후 우리는 헤어졌고, 지수님에게 추천받은 자매국수집 앞 공원으로 향했다.

제주에 오면 꼭 고기국수를 먹고 가는 것 같다

우연히 들른 장소였지만 공원안이 길도 잘 내어져 있고 나무들도 울창했다. 여전히 내 기억 속의 가장 인상적인 공원은 멜버른이지만 말이다. 한 시간 정도 거닐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일했는데 숙소가 3시부터 4시까지 브레이크타임이 있더라. 그 시간에는 하루 정리를 해야 한다고. 음, 결국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아침에 왔던 사업자등록증이 정상 등록됐다는 문자가 와서 제주세무서에 가보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정말 버스와 무슨 담을 쌓았는지 이번에도 한정거장을 지나쳐버렸다. 세무서에 들려 드디어 사업자등록을 서면으로 발급받으니 노마드씨가 진정으로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이 느낌을 팀원들과 함께하고 싶어서 사진을 공유한 후 발길을 돌렸다.

계획없이 갔던 공원이었지만 시간을 조용히 보내기에는 적당했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이러고 다닌다
제주세무서 가는길...
2층에 있던 1인 테이블은 일하기에 적당했고 나만의 공간같았다

나솔언니와 만나기로 했기에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집중해서 일을 하고 밤에 언니와의 약속장소에 출발했다. 약속장소가 제주소년블루스라는 곳이었는데 어렵게 찾아 입구에 들어서서는 잠시 망설였다. 그 이유는 문이 맞는지 아닌지, 들어가도 되는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입구가 소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에 들어선 순간 바깥과는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공간을 가득 채운 재즈와 앨범, 층층이 쌓인 책들… '이건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잖아!'


나솔언니와는 참으로 재미있는 인연이였다. 에버노트 행사로 팀으로 일일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인연으로 이렇게 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나의 진행 중인 상황과 하고 있는 일을 공유하고 언니도 제주도에 내려와 하고 있는 일을 공유했는데 재미있게도 우리 둘 다 ‘디지털노마드’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다는 거다. 와… 우리의 인연이 어떻게 이렇게 연결이 되는 거지? 그렇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다 금요일 노마드리스트 밋업 이야기도 나왔는데 

나 : “정말 두렵다 언니, 가고 싶지도 않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싱가폴 연인을 보니 더 못 가겠어…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가서 뭐하겠어"

언니 : "그럼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말고 분위기 보고 오기라도 해. 뭘 하려하지 말고. 안가는것보다 가보고 경험하는 게 낫지 않겠어?"

맞는 말이었다. 가기도 전에 겁먹고 가기 싫었던거다. 사실 지금 선택하라 하면 더 선택을 못할 것 같지만 말이지. 기분은 한결 가벼워지고 내일 있을 밋업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이 영어라는 것이 인생의 짐 같은 존재면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애구나 싶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사장님은 한쪽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들이 한참 진행될 때 어쩌다 제주소년블루스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데 사장님은 언니가 좋아하는 지인 중 한 분이란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상당히 철학적이고 자신만의 어떤 길을 정해놓으신 것 같아 보였다. 내 인생 통틀어 이렇게 가장 길고 가장 재미있게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자녀가 물어본 기하학에 대한 생각, 사장님의 리좀 성향, 구운몽… 등 등.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살면서 이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한참을 얘기를 나누니 문 닫을 시간도 훌쩍 넘겨 그렇게 아쉬움에 헤어졌다.  


이번 제주여행은 참으로 신기한 것 같다. 생각지도 못한 인연, 생각지도 못한 일들, 두려움 속의 도전… 아무것도 계획하고 오지 않았지만 무엇하나 놓칠 수 없는 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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