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노마드 in 제주, 여정 3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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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노마드리스트 밋업*이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이 날은 인생에서 내겐 잊기 힘든 순간이었다. 영어라는 장벽에 내 한계를 더더욱 현실적으로 느꼈고 그리고 한편으로 언어를 떠난 장벽이 허물어졌다. 가기전까지도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이 됐다. 나는 좌절하기 싫었고,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도 싫었다.
하지만 나의 이 생각을 나솔언니*가 아주 심플하게도 답을 내렸다.
‘네가 말하려고 하지마, 들어도 좋고 분위기만 보고 와도 좋지 않겠어?'
맞다. 안 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지만 하면 실패를 하든 뭐든 달라지는 게 있을거다.
* 노마드리스트 밋업 : 나는 제주도에 온 디지털노마드들의 모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J-space에서 함께 체류지원을 받은 외국인들의 모임이었다.
* 나솔언니 : 서울에서 에버노트 모임이 인연이 되어 인생사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인연, 현재 제주도에서 일을 하고 있다.
2...
아침에 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밋업을 함께 가자고 말이다. 이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시름 놓는거 반, 언니한테 고마운거 반. 한편으로 궁금하기도 했다. 언니는 왜 가려고 한 걸까?
'너랑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쩌면 이들이 생각하는 삶의 방향이 나와 비슷한 부분이 있는 거 같아.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싶어.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오히려 심플하게 애나의 통역자로 가보자고 가볍게 생각해봤어'
나에게는 고마운 이야기이며 내가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게끔 하는 언니의 선택이었다.
3...
모임 장소인 맥주집에 도착했다. 어색한 ‘Hi’라는 인사와 함께 시작을 했지만 내 입은 곧 닫혔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는 나에게 뭔가를 말했지만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난 얘기했다. ‘I don’t know.'
나솔언니는 러시아 여성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녀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러시아어 같기도, 영어 같기도 한 말을 들으며 나솔언니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개발자이며, 남편도 개발자라고 했다. 함께 이 여행을 시작했으며 j-space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원래 영어를 하지 못했지만 아이를 갖게 되면서 프리랜서 일을 했고 탑탤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언니는 분주하게도 이야기를 하며 내 이야기도 하고 그녀의 이야기도 했다.
아마도 이런 자리에서 통역을 한다는 게 어이가 없을 거 같기도 하고 답답할 거 같기도 하고 내 심정이 그들의 심정이지 않을까 싶다. 말이 안 통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느냔 말이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내 마음은 더더욱 무거워졌다.
이 자리에 오게 된 이유가 생각났다. 팀원들도 꼭 다녀와서 공유해달라고 했었지.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우울했다.
4...
더욱 우울한 일은 곧 터졌다. 다른 테이블에서 한 분이 혼자 있으니 나솔언니는 네가 가서 이야기를 꺼내보라 했다. 하지만 난 거절했지. 그러자 언니는 '그럼 내가 가볼게’라고 했다.
아… 망망대해에 남겨진 느낌이 이런 느낌일까. 나는 뻘쭘하게 피자와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이 채 5분도 흐르지 않았을 듯 싶다. 용기 내어 그녀에게 이야기를 걸었지만 그녀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구글 번역기였다. 궁금한 것을 적고 보여주니 그녀가 답을 해줬다. 옆자리에 앉은 남편까지 가세해서 나에게 이야기를 해줬지만 역시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결국 그녀가 다시 구글 번역기를 써서 나에게 내밀었지만 한계였다. 5분이 진짜 무슨 500년 같은 시간의 흐름이었다.
이 자리를 박차 뛰쳐나가고 싶었다.
5...
얼마나 지났을까?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생각했다.
‘그래, 2시간을 버텨보자. 그리고 뻔뻔해지자. 나솔언니를 내 통역사라 생각하자.'
난 언니가 이야기 나누고 있는 장소에 가서 당돌하게 나도 듣고 싶다며 알려달라 했다. 언니는 선뜻 잘 왔다고 했다.
그는 캐나다인이고 안드로이드 개발자였다.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이 모임에 합류하여 3주째 디지털노마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의 약간 느린 말투와 인상이 나를 좀 안정적이게 해줬다. 가고 싶은 나라가 있냐고 물어봤는데 사실 내가 가고 싶었던 나라는 호주였지만 그가 캐나다인이니 캐나다라고 한 번 던져볼까?
‘캐나다~'
던지니 웃더라. 이때 마음이 한결 좀 가벼워졌다. 그는 나솔언니가 나에게 통역 해줄때까지 기다려줬고 이야기가 끊기지 않도록 계속 말을 건네주었다. 좋은 인상과 느린 말투, 리액션들이 나를 조금은 편안하게 만들었다.
6...
언니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맨 처음 나에게 말을 걸었던 알루이스가 나에게 말을 걸더라. 휴대폰에 메모된 어떤 목록을 보여줬는데 한국말을 영어 스펠링으로 적어뒀더라. ‘잘 지내? 나 목말라, 난 남자답다’ 등을 들려주며 자기가 제대로 발음을 하고 있는지 나에게 체크해달라 했다. 다행히 그건 또 알아들었다. 그녀의 여자친구도 한국 사람이고 런던에 있다고 했다.
그는 중간중간 내가 알아듣지 못하자 나에게 구글 번역기를 켜라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내 휴대폰에서 인스타그램 좋아요가 떴는데 ‘오~ 인스타그램 좋아요 떴네’하며 이번에 업데이트된 아이콘 어떠냐며 앞에 사람한테도 물어보고 나에게도 물어봤다. 내가 또 말을 어버버 거리니 손으로 표현하며 ‘굿? 베드?’라며 쉽게 던져줬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자신도 모바일 디자이너인데 내 디자인을 보여달란다. 그래서 이밍을 보여줬더니 카카오랑 색이 똑같은데? 라며 장난치길래 나는 ‘톤이 달라’(웃음)라고 말했다.
그는 이밍 요소 하나하나 물어보며 이 버튼은 어떤 거냐며 물어보고 항목을 체크해나갔다. 나솔언니의 설명을 들으며 체크했고, 끝에서 점수가 나오니 ‘Yeah~!’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내게 작업물들을 보여달라며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 휴대폰 그룹에는 그동안 만들었던 것을 몇 개 정도 정리해둔 상태였다. 그것을 보여주며 꽤 오랜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 얘기를 하니 들리지 않던 단어도 들리기 시작하고 나도 말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7...
그는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다른 작업한 거 있어?'
'왜 포트폴리오가 없는 거야?'
'네가 드로잉 한 거야?'
'드리블 가입되어 있어?'
'이밍은 왜 이밍이야?'
'경력은 얼마나 됐어?'
'너 시급이 어떻게 돼?'
그러다 언니와 대화를 나누더라. 그리고 언니는 약간 흥분된 얼굴로 얘기했다.
'너 지금 굉장히 좋은 이야기 들었어.'
‘...?'
‘알루이스가 너 영어 꼭 배우래. 그래서 네 디자인을 세계에 보여주래. 그리고 영어 마스터하면 아까 준 명함의 이메일로 연락하래.'
나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처음 이 밋업에서의 좌절과 두려움도 생각나고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준 그가 고맙기도 했다. 그리고 나를 인정해줘서 너무 기뻤다. 이 기분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내 디자인이 엄청 뛰어나고 아니고를 떠나 오늘 이런 일이 있을 줄 미처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상황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는 말했다. 아주 끊임없이.
'너 영어 배워.’ (나솔언니에게 배운 한국말로) 그리고 그는 그가 알고 있던 주세요를 응용까지 했다.
'너 영어 배워주세요!'
이후에 다른 자리에서 알루이스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는 여지없이 나에게 영어 공부하고 있냐고 물었다.
The end.
처음에 다짐한 것처럼 2시간을 버텼다. 누군가에게는 별일이 아닌 순간이었을지언정 나에게는 인생에서 두번째로 겪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뒤풀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나솔언니는 이런 날 뒤풀이를 해야 한다며 우리는 제주소년블루스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흥분했다. 오늘의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 몰랐다고. 처음에만 해도 도망치고 싶었고 좌절했고 미치겠는 그 순간이 지나고 나니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온 거다.
그가 선뜻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봐줘서 고마웠다.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것을 받아들였고, 그는 내게 영어를 배우라 적극적으로 이야기했으며, 내가 힘들면 번역기를 켤정도로 능동적으로 임해줬다.
언니는 말했다.
'단순히 통역사라는 직업 자체보다 오늘 같은 순간들이 내가 바랬던 방향이 아니었을까 싶어.'
언니와 함께였기에 의미는 더 깊었다.
긴 글을 써 내린 것 같다. 이 글을 다듬기 위해 그 날 쓴 일기를 다시 보며 또 한번 순간순간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생각난다. 나의 자신감 없는 모습, 주눅 들었던 모습, 뛰쳐나가고 싶었던 심정들, 어색한 자리, 그리고 찾아온 기쁨. 지난 시간을 한국에서 지냈기에 나에게 있어서 영어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또한 필요하다 생각했지만 그것을 체감하지 못했고 해야 할 동기조차도 너무 미약하고 현실적이지 않았다. 아마도 나와 같이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있거나 필요하지만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나의 이 심정을 조금이나마 공감하지 않을까 한다.
이번 모음을 갔던 이유는 단순했다. 디지털노마드 밋업이라는 것에 참여해서 분위기도 살펴보고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도 들어보려 했다. 디지털노마드에 대한 정보를 아직 몰랐을 때 나는 해외취업을 가려고 했었다. 해외취업을 하려던 이유는 2가지가 있었는데 내 인생에 항상 짐처럼 따라다니던 영어를 극복하기 위함이었고 내 역량을 좀 더 넓은 곳에서 펼쳐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실행에 있어 구체적 실행이 이어지질 않다 보니 영어도 금세 내 머릿속에서 잊히곤 했다. 이번 밋업은 지금의 노마드씨라는 팀을 만들면서 단순히 내가 안일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표면으로 드러난 사건(?) 아닌 사건이었던 거다.
영어는 나의 약점이다. 그러나 영어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나 우리팀이 앞으로 해나가야 할 것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갖고 있어야 할 역량이기도 하다. 내가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기까지는 상상이 되질 않는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수준까지 된다면 내가 넘고자 하는 산하나는 넘는 셈이다. 다행히 루시와 나솔언니에게 적극적 도움을 받고 있어 오늘 이 글을 쓰기까지도 영어공부는 계속되고 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영어를 공부할 때 재밌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데 요즘은 재미가 있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영어를 못함에 있어 약점을 드러내고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공식적으로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기도 하고, 나와 같이 영어로 인해 역량을 더 확장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였다.
디지털노마드에게 있어 영어는 필수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으로는 90% 이상 영어는 필수다. 또한 더 많은 기회와 경험을 위해서는 영어를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기본역량이다. 혹 영어를 못해 무언가를 포기하고 있다면 다시 한번 붙잡아 보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우리팀은 영어를 극복하면서 국내에서도 디지털노마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데에 많은 도전을 하고 싶다.
Thank to.
영어공부를 시작하면서 주변에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 인사를 남깁니다.
1. 나솔언니. 언니에게 가장 고마운 것은 항상 내가 하는 일에 응원과 함께 에너지를 준다는 거죠. 내게 영어를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 왜 영어를 두려워하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듣고 테라피를 해줬던 좋은 시간도 만들어줬죠. 평행선은 영원이 만나지 않는 선이 아닌 영원히 함께 하는 선이라는 말처럼 항상 새로운 시야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
2. 루시. 요즘 나에게 가장 많은 에너지와 채찍질을 하는 루시에게 고맙습니다. 루시 덕분에 하루에 한 번씩 꼭 스피킹 연습을 하고 있고 저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나의 부족한 면을 봤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앞으로 나가라 응원해주어 고마워요 :)
3. 슬아. 서울 갈 때면 언제나 반갑게 집 문을 열어주는 친구입니다. 제 상황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하는 일에 무조건적으로 작은 일부터도 도와주는 친구이면서 혹독(?)하게도 내게 영어에 대한 조언과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연습을 하면 옆에서 지적질이 들어와서 심쿵하지만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 세심함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