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삶에 어두운 시간이 있다 하지만 날 그대로 두기에는
누구나 삶에서 어두운 시간이 올 때가 있다. 하지만 그대로 두기에는, 그 누구도 날 구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깨고 나올 수밖에.
- 루시
오늘 아침도 여느 때와 같이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염없이 1시까지만 누워 있어야지, 2시까지만 누워 있어야지. 결국 스스로 약속했던 시간이 됐고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씻고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오늘은 코드를 쓰는 게 아닌, 아주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국에 들어온 지 한 달이 좀 넘었다. 애나와 함께 4개월 동안 여행을 한 후 뭔가 크게 성장하였느냐, 크게 달라진 점이 있느냐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없다. 기존과 똑같이 일은 좋아하지만 하기 싫고, 치열하게 살고 싶지 않지만 성공했으면 좋겠는 나의 모습을 그대로 가져왔다.
백수 언니 여정을 끝내고 엄마와 베트남을 2주 동안 여행하며 생각정리를 하고 뭔가 달라질 것 같았던 나는 변하지 않았다. 4개월의 여행 그리고 현재까지 선택하는 삶이 아닌 흘러가는 삶을 살았다. 이걸 인정하기 싫었나 보다. 내 시간을 소중히 쓰지 않은 점,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이게 아니었는데, 그걸 인정하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다. 오늘 멍하니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며 문득 든 생각은 나의 이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고, 짚어가지 않고는 다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완벽하지 않더라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나를 위하여.
2017년 12월 마지막 주,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치앙마이로 떠나 첫 여행을 하며 일을 하는 삶을 시작했다. 애나와 아주 오랜만에 만나서 좋았고, 새로운 환경들에 뭔가 달라질 것 같은 나의 삶에 취해있었다. 외부 환경들이 어느 정도 자리 잡고 나서 어떠한 목표로 백수언니를 시작했는지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을 보고 애나가 오랫동안 이야기를 끌어내며 나를 깨워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핵심 질문인 "백수 언니의 목표가 뭐냐"에 대답을 못하는 나, 그 모습에 애나도 충격을 받았고, 나 또한 충격을 받았다. 받아들이기도 벅찬 외부 환경들에 휩쓸려 중심을 잃었다고 했지만 그 깊은 곳에 있던 답은 그게 아니었다.
도전하는 삶을 좋아하고 도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슴이 뛴다고 했던 나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도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선 걱정부터 됐다. 도전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도전이라는 단어 속에 엄청 힘든 길, 아주 치열하게 살아야 하고 버텨내야 하는 그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겁이 많아졌다. 그래서 함께 일을 하고 있는 애나에게 의지하고, 다음을 가져오기보다는 애나가 가져온 일과 목표들을 좋아하며 잘 해내려고 했다. 그렇다면 도전하는 리스크가 어느 정도 사라지니까 먼저 도전하기보다는 그 뒤를 따라가기 선택했다. 우리가 하는 도전 속에 나만의 안정적인 바운더리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살아갔다. 이렇게 도전을 하면 나에게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지만, 적어도 두려움은 좀 사라지니까 그런 선택을 했다. 애나가 그런 모습을 보며 스스로 참지 못하는 순간들이 올 때마다 나의 모습을 이야기해주었고 조언을 해주었고 계속 인지를 시켜주었다.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았다. 아직 내 모습을 제대로 인정하고 선택을 할 용기가 없었으니까. 그 무엇도 나의 중심이 되지 못하니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순식간에 흔들렸고 휘청였다. 이걸 알면 중심을 가져오고 단단히 중심을 세울 법한데 계속 휘청이는 것을 선택했다.
이전의 나는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아마 애나를 처음 만났던 시기였고 개발을 이제 막 공부해서 잠시 미쳤던 때가 있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고, 하고자 하는 목표가 명확해서 아침 점심 저녁마다 목표를 되새기며 공부를 했다. 운동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그 목표 아래에 살아갔다. 누가 뭐라 하든 내면의 단단함으로 "흥 네가 뭐라든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쟁취할 거야. 두고 봐" 이랬던 사람이었다. 두려움이 없었고 모든 두려움들을 이길 수 있는 하나의 무기가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 이렇게 아무것도 되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조급증과 하루하루 저 멀리 있는 목표를 갈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을 올 때마다 꿈을 상상하고 동기부여 영상을 보며 나는 할 수 있다며 버텨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가 결국 원하고 갈망하던 "개발자"가 됐다. 하지만 그다음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탓일까, 그 꿈을 지속하기 위해 꼭 넘어야 하는 산들의 무게가 생각보다 너무 커서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현실에 벽에 부딪혀 어느 순간부터 겁이 많아졌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거두고 빛을 낼 수 있게 하는 환경들을 스스로 만들어주지 않았다.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모습으로 다음 도시에 넘어갔고 다음 도시인 페낭은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나를 극단치까지 몰고 가는 상황들, 애나도 나도 전혀 모르는 도시인 데다가 문화도 많이 달랐다. 그리고 일을 하기 힘든 상황들이 생각지도 못하게 닥쳐왔다. 준비를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들이 계속 왔었고 분명 외부 환경들을 잘 해결할 수 있었지만 두려움 앞에 나는 나를 그냥 흘려보냈다.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 무엇도 딱 정하지 않은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있는 건 아주 쉽지만 매우 고통스럽다. 스스로를 과거에 살게 하고 자책이 계속되고, 흘러가는 관성에 이미 익숙해져 멈추려고 시도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들이 지나고 자연스럽게 돈이 떨어져 4개월 동안의 백수언니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고 실제 나의 모습을 부정한 채 돌아왔다. 그리고 이번 백수언니 여정은 힘들고 값지게도 스스로에게 한 가지 답을 주었다.
이렇게 살면 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번 여정을 통해 얻고 싶은 답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였는데 정확히 그 반대였다. 이건 여행, 디지털노마드 라이프 스타일을 다 떠나 스스로에 대한 모습에서 나온 답이었다.
일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하루에 4시간도 일을 하지 않는 나
매일 하루 종일 프로젝트를 생각하며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그냥 흘러가는 대로 성공했으면 하는 나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시간을 흘러가게 내버려두어 어쩔 수 없는 상황까지 밀어붙이는 나
이런 모습들을 변화하고 싶지만 행동까지는 하지 않는 나
이런 나의 모습들을 아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이전에도 그랬으나 학교라는 핑계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오롯이 24시간이 전부 내 시간이고 아무것도 방해받을 것 없는 환경 속에서 나의 행동이 펼쳐놓은 도화지처럼 아주 선명히 보였다.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4개월의 결과는 돈을 벌지 못했고 일이 재미없었고 시간을 흘려보냈고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초능력이 없어도 아주 명확하게 나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이대로 가면 돈 때문에 회사에 쫓기듯 들어가 과거에 계속 살아가며 현재를 부정하며 살아가겠지.
이전보다 상황은 더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 미쳐서 하루하루를 즐겁고 성실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닌 쫓기듯 삶을 살고 있었다. 개발 역량은 시간을 투자한 만큼 서서히 올라갔고 역량 밖의 기능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선회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현재 개발하고 있는 끄적글적은 이전 프로젝트 중 유일하게 감사하게도 사용자분들의 반응이 계속 있다. 그렇지만 뭔가 쫓기는 삶에 살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었고, 그 시선에 일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았을 테지만 걱정만 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버텼다. 왜 그랬을까. 끝을 못 봐서? 아쉬워서? 뭔가 돈이 될 것 같아서?
두려움에 삼켜져 버린 이 어두운 시기는 언젠가 끝이 난다. 끄적글적을 좋아하다 못해 미쳐서 눈 감을 때부터 눈 뜰 때까지 누구보다도 끄적글적을 사랑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이 있다는 것. 스스로가 만든 두려움에 갇혀 나오지 못할 뿐, 나는 나의 그런 모습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모습의 나를 정말 사랑한다. 정말 매력적이고 빛이 나고 아우라가 뿜뿜하는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듯 그런 내 모습이 나오기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언젠가 그 모습이 나오겠지. 하지만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글을 쓰며 깨달았다.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야 하는구나. 그 누구도 이 어둠 속에 나를 구해주지 않는구나.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하는구나. 난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기다리고 있었나.
이전 같으면 재빠르게 포기하고 바로 다른 선택을 했을 텐데,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포기가 빨라 여러 방면을 고루고루 잘하게 됐던 나의 선택 중 처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있던 한 가지였다. 말하지 못한, 버티고 있었던 또 한 가지의 이유는 대가 없이 나에게 쏟은 애나의 많은 시간이다. 애나가 팀이라는 명목 하에 나에게 쏟은 시간은 대가가 없었다. 이야기를 하고 나서 뭔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돈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그 무엇의 보상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애나에게 시간이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다. 돈과 시간을 선택하는 순간에 항상 시간을 선택했던 애나였고 이 세상에서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을 계속 해오던 애나였다. 그런 애나가 내가 또 저기 어딘가 모를 곳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면 계속 중심을 잡아주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면 잡아오고, (창피하게도) 일을 안 하고 있으면 개발하라고 어르고 달랬다. 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올 수 있었던 이유의 9할은 애나였다.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르겠다 하는 순간까지도 나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간 내어 이야기를 했다. 지치고 체력 소모가 많이 되는 힘겨운 시간들을, 나에게 쏟은 그 많은 시간들을 내가 포기하면 땅바닥에 내다 버리는 것이니 포기하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갑자기 환골탈태를 하는 내 모습이 나오지 않을 걸 알고 있다. 그걸 기대하고 쓴 글도 아니다. 이렇다 할 결론을 내기 위하여 쓴 글도 아니다. 하지만 이걸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계속 흘러가는 삶에 묻혀 그 관성을 거스르지 못하고 그대로 살 것 같았다. 그리고 나와 같이 현재 어두운 시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또 미래의 나에게 어두운 시기는 언젠가 반드시 끝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시기는 누군가 정해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 정하는 거라고. 그래서 오늘 이 글로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