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여기가 아닌 어딘가

그들도 마찬가지

by 노는언니


나는 종종 보들레르의 시를 떠올리며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꿈꾸곤 한다.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을 내 영혼은 언제나 환영해 마지 않는다...... 영혼아, 대답해주렴. 리스본에 가서 살면 어떠냐? 그곳은 분명 따뜻할 테니 너도 원기를 되찾을 것이다...... 되도록 삶에서 멀리 떨어져 북극으로 가자......마침내 영혼이 폭발한다. 어디든 좋아! 어디든괜찮아! 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하지만 그는 아래와 같은 시도 남겼다.


우리는 보았다. 별들을, 수많은 파도를. 또 우리는 보았다. 모래를. 충돌과 뜻밖의 재난도 있기는 하였으나 우리는 자주 따분했다. 여기서 살 때와 마찬가지로...


시인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어딘가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여기와 마찬가지가 된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혹시 다른 곳에서 산다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한달 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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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들이 여기가 아닌 '어딘가'여서 매혹적이된다. 그곳엔 여기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비포선라이즈>의 주인공들처럼 우연한 만남이 기차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가벼울 거라고. 삶 또한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여기와는 다를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기왕이면 먼 곳으로 훌훌 떠나 모르는 얼굴과 언어와 풍경 사이에서 익명이고 싶은 마음. 내가 무얼 하든 어떤 모습으로 있든 상관하지 않을 곳에 존재하고 싶은 바램.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저 유명한 작가들도 그랬었다고 위안을 삼기도 한다. 전혜린은 먼 곳에의 그리움을 토로하며 자신 속에는 몇 방울의 집시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고 했다. 하루키는 어떤가. 일본에 있다가는 일상 생활에 얽매여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버릴지 모른다고, 그리하여 날아간 그리스의 섬에서 <상실의 시대>와 <먼 북소리>를 쓰지 않았던가. 또한, 장그르니에는 <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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