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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는언니 Jul 28. 2016

19. 세상

그리고 숟가락 속의 기름 두 방울


하루 종일 하노이 시내를 구경하다 숙소로 돌아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셨다. 더위와 갈증으로 칼칼해진 목으로 시원한 맥주가 꿀렁꿀렁 넘어간다. 캬- 좋구나. 이건 공짜가 아니다. 세상엔 공짜처럼 보이는 건 있어도 진짜 공짜는 없다. 모두에게 맥주 한 병씩을 쏜 그 여행자의 '자유' 역시 공짜가 아니다. 아마도 선택하고 포기하는 과정에서 손에 쥐게 된 것일 게다.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는 놓아야 한다. 자유를 원하지만 당장에 선택하지 못하는 나는 누리고는 싶지만 뒷감당은 아직 두려운 것일까. 



<연금술사>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떤 상인이 행복의 비밀을 배워오라며 아들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현자에게 보냈다. 젊은이는 사막을 걸어 현자가 살고 있는 산꼭대기의 아름다운 성에 이르렀다. 현자는 젊은이에게 지금 당장은 행복의 비밀에 대해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 우선 자신의 성을 구경하고 다시 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기름 두 방울이 담긴 찻숟가락을 건네며 덧붙였다. '걸어다니는 동안 이 찻숟갈의 기름을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되오.' 아들은 성을 돌아다니는 동안 찻숟가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가 돌아오자 현자는 물었다.


'그대는 내 집 식당에 있는 정교한 페르시아 양탄자를 보았소? 정원사가 십 년 걸려 가꿔놓은 아름다운 정원은? 서재에 꽂혀 있는 양피지로 된 훌륭한 책들도 좀 살펴보았소? 젊은이는 당황했다. 그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기름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 것이었으니. 현자는 다시 가서 그것들을 보고 오라고 했고 이번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것을 구경하고 돌아오자 현자는 물었다. 


'그런데 내가 그대에게 맡긴 기름 두 방울은 어디로 갔소?' 젊은이는 그제서야 숟가락에 기름이 흘러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현자는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줄 가르침은 이것 뿐이라오.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것.’



노동 강도가 빡센 우리나라는 기름 두 방울이 아니라 기름 두 드럼통이거늘! 무거운 기름 통을 들고 다니느라 아름다움을 향유할 시간이 절대 부족하단 말이다! 기름을 가볍게 만들 수 있는 방법 연구가 모두에게 절실하다! 어쨌거나 다시 밥벌이의 지겨움에 대한 김훈의 글로 돌아가자면,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 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숙소 체크 아웃 시간. 맥주 한 병 얼마에요? 나는 방 키를 반납하며 물었다. 무슨 맥주요? 데스크의 직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냉장고에 있는 맥주 말이에요. 직원은 웃으며 말했다. 여긴 미니바 없어요. 아마 그 맥주, 이전 사람이 두고갔나봐요. 


어쩐지 미니바에 물도 없고 맥주만 달랑 두 병 있더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나머지 한 병 마저 마실걸. 세상에는 공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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