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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트바리 Feb 11. 2020

쫄보 부부의 첫 유럽 신혼여행 #1

저세상 텐션 남편의 스페인 & 포르투갈  신혼여행 일기 #1 바르셀로나

연애가 끝이 났다. 끝이난 9년 간의 연애는 어느샌가 결혼으로 이어져 있었고, 우리가 학수고대하던 유럽으로의 신혼여행이 시작됐다. 시간을 다시 되돌려서 예약하던 때로 가보면 우리는 각자의 로망이 있었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부터 파리를 그렇게 이야기했고, 아내도 나의 유럽 망상을 지지해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적으로 고려했을 때 스페인을 선택해야만 했다. 파리는 한창 테러와 싸우고 있었고, 신혼부부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여행의 목적지로는 두려움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스페인만 가기에는 좀 아쉬웠는지 아내가 신의 한 수를 두는 듯 이야기한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본격적인 결혼 준비에 올인하게 되니 여행에 대한 준비는 자연스럽게 소홀해지게 되고 기억에서 잊혀 갈 때쯤 우리의 여행이 시작됐다. 





초긴장 상태로 짐을 찾고나니 바깥 풍경이 보였다.

결혼식 전에 모든 일정들이 몰려들어서 식을 올리기 3개월 전부터는 단 한 주도 쉬지 못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비행기 안에서 밥 먹은 거 외에는 도대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길어지는 비행시간에 약간의 피곤함을 느낄 때쯤,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짐도 예상보다 빨리 나왔고, 휴대폰에 유심도 잘 갈아꼈다. 그리고 누구로부터 짐을 털리지 않을 자물쇠까지 준비가 끝났다. 바로 시내로 가는 Aerobus를 타고 카탈루냐 광장으로 향했다. 


미세먼지가 가득했던 우리나라와는 달리 맑은 하늘의 멋진 풍경이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어쩜 이리도 멋질 수 있다는 말인가. 한층 마음이 놓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 사람들은 바르셀로나에 대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소매치기 이야기뿐. 유튜브를 검색해도 '소매치기 잡은 썰' 뭐 이런 것들 뿐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도착 직후에는 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좋다가도 걷기 시작하니 괜시리 불안했던 마음.

Aerobus는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다만, 바르셀로나 대학교 부근에서 벌어진 시위로 예상시간보다 도착 시간이 늦어졌다. 마음을 편히 먹고 호텔에 가서 체크인을 한 후 플랜 B를 세워보기로 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우리는 람블라스 거리를 걷고 있고, 무사히 숙소에 도착하는 것임을 잊지 않았다.

왜냐면 우리는 지금 막 도착한 여행객이니까.



말끔한 침대 시트 위에는 귀여운 웰컴 캔디가 올려져 있었다. 내가 본 웰컴 기프트 중에 가장 깜찍한 것.

우리의 신혼여행 첫 숙소는 Oriente Artiram.

사실 첫 숙소를 잡는 데까지 출발 직전까지도 어려움이 있었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했는데 결제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탓에 우리는 출발 3~4일 전에 부랴부랴 다른 숙소를 예약했었다. 3~4일 전에 예약하려다 보니 원하는 금액대, 위치를 찾을 수 없었는데 그나마 우리가 원하는 금액 대이면서도 나쁘지 않은 위치였다.

뭐 어떠한가. 그래도 이렇게 잘 도착해서 룸 컨디션을 보고 마음을 한결 놓을 수 있는데. 그걸로 만족했다.


짐을 풀고 바로 나간 곳은 숙소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위치한 '라 보케리아' 시장. 일단은 도착 직후에 뭘 먹은 게 없으니 시장에 가면 음료나 간단한 요기거리는 있겠거니 하고 갔다. 시장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건 만국 공통이다. 


시장의 매력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다. 사람은 많지만, 피곤을 느끼거나 하진 않는다.

그걸 지켜보는 건 여행자만이 느낄 수 있는 크나큰 즐거움이기 때문.



라 보케리아 시장은 신선한 하몽, 향신료 등이 가득했지만 거기에 기분 좋게 만드는 생과일 음료도 있다. 2잔 사면 2유로.

라 보케리아는 바르셀로나 최대 시장답게 사람이 많았지만 우리는 음료수를 마시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다른 건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스페인의 시장답게 정말 품질이 좋아 보이는 하몽을 파는 가게들이 많았다. 하몽이 스페인의 것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드는 순간이다.


음료는 갓 갈아놓은 듯한 신선함이 돋보이는 과일 주스들이 있었다. 두 잔에 2유로. 역시 뭘 해도 시장은 좀 저렴하다는 생각과 함께 시장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스페인의 도착 첫 날을 이렇게 맞이했다. 라 보케리아 시장에 오면 쭉 늘어져있는 하몽들과 향신료들이 나의 시선을 빼앗아 갔지만, 갈 곳들이 좀 있었다.



바르셀로나에서 꼭 먹어봐야할 츄러스 가게인 '츄레리아'에는 현지인들로 붐볐다.

이처럼 여행에서의 시간은 1분 1초가 허투루 쓸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지만 좋은 풍경, 접해보지 못했던 모습들이 내 눈앞에 펼쳐지면 그저 나는 한낱 무계획의 인간으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자기야, 여기 서봐.", "자기야!! 지금이야" 이런 말들을 쏟아내면서 셔터를 누르기 바쁘다.


때로는 가슴속으로, 내 눈으로만 담는 모습이 있는가 반면, 그렇지 않고 꼭 셔터를 눌러서 카메라에 담고 싶은 그런 모습들도 있다. 특히, 나는 늘 상상으로만 해오던 유럽 여행을 왔으니까.


딱히 계획을 세워두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런 나와 함께하며 "여행의 묘미를 알았어!"라고 말하는 아내는 고마운 사람이다. 미리 찾아두긴 했지만 역시나 걷고 싶다는 나와 함께 무작정 40~50분을 걸어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어디로 가냐면 그건 잘 몰라요. 그저 애플워치가 알려주는대로 갈 뿐. 그래도 잘 가고 있네요.

바르셀로나의 밤거리는 생각보다 안전했다. 해변가로 갈수록 우리에게 쏟아지는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최대한 즐기며 걸었다. 서로 실없는 농담을 하며 웃고 떠들고. 그 어떤 것도 힘들거나 짜증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50분 가까이 걸렸지만 사람이 한산한 거리가 심심하지 않았다.

두려움도, 힘든 것도 다 걸러지고 설렘과 즐거움만 남았다.



Marina Bay에서 신혼여행의 첫 저녁의 분위기를 만끽했다.

무작정 찾아간 해변가의 레스토랑. 바르셀로네타 근처의 레스토랑이었다. Marina Bay. 여행지의 거리인 람블라스에선 좀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이 아니면 바르셀로나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찾아갔다.


꼭 먹어야 할 음식 중에 하나인 먹물 빠에야와 뽈뽀를 시키고 그간의 다이어트로 인해 마시지 못했던 술을 다시 마시고자 샹그리아를 주문했다. 아마 이 날을 기점으로 우리는 매 끼니 샹그리아 & 맥주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우리 스타일은 바로 그런 것!


마리나 베이에서의 식사는 꽤 좋았다. 분위기도. 선선한 그 느낌도.

바르셀로나에서의 일정이 빠듯하지만 바닷가와 식사를 즐기고 싶다면 추천해본다.

Marina Bay - Carrer de la Marina, 19-21, 08005 Barcelona, 스페인



술을 잘하는 아내와 나는 늘 대비가 된다.

해변 가니까 술을 좀 마셔서 얼굴이 빨개져도 좋았다. 술을 잘하는 아내의 얼굴만 멀쩡했다. 뭔가 억울했다. 그래서 아내가 찍는 셀카에 하반신을 등장시켜 좀 방해를 해봤다. 나는 원래 아내 앞에서 좀 까불까불 거리는 탓에 아내는 그저 웃음으로 내 방해공작을 오히려 역으로 공격했다. 내 모습을 박제시켜버렸다. 어후.


바르셀로나의 해변가는 저녁이 늦었는데도 활기찼다.

비치발리볼을 서로 즐기는 모습들이 내겐 꽤 인상적이었다. 해변가는 그저 앉아서 술이나 마시거나 멍 때리기보다는 저렇게 즐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바르셀로나의 첫날은 산들바람처럼 흘러갔다. 실감 나지 않는 결혼식, 실감 나지 않는 부부라는 관계.

우리의 9년 연애는 종지부를 찍었지만, 아내와 나는 손을 맞붙잡고 웃었다. 실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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