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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트바리 Jan 11. 2020

행복에 대한 기준

숨 가쁠 정도로 바쁜 주말에 느끼는 행복의 기준

"오빠, 이번 주에 나랑 사진 찍으러 가줄 수 있어?"


아내는 때때로 내게 사진을 찍으러 가자고 묻곤 한다. 매거진을 이끄는 기자이기 때문에 꼭 취재를 가야 할 때가 생긴다. 다른 커플들처럼 '데이트할까?'라는 말을 쉽사리 꺼내지 못한다. 그리고는 내게 애정 표현과 애교로 미안하다는 말을 대신하곤 한다.


아내는 자신이 봐 둔 곳이 있다고 말하며 신나서 내게 여러 장소를 보여준다.

휴대폰에는 하루에 갈만한 곳들과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바쁜 아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신나게 '가자'라고 말하는 것과 운전하는 것 말고는 없지만.



취재를 가면 늘 그렇듯 아내는 취재에 몰두한다. 이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았다.


취재를 가면 남들처럼 데이트하는 건 꿈도 꾸지 못한다. 나는 바쁜 아내를 졸졸 따라다니며 취재하는 모습을 찍거나, 여기저기 세운 후 인생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귀찮을법하지만 그런 나를 웃으며 바라보다 취재를 다시 재개하곤 한다. 그런 걸 하지 않으면 때때로 아내가 촬영할 때 잘 풀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 조언을 해주는 정도. 그것도 잠깐이고 대부분은 아내의 시간이다.


아내는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기사의 컨셉을 기획하고, 장소를 찾아다니며 제품의 특성을 한정된 지면에 보여주는 일을 한다. 심지어 다른 작가들을 인터뷰하고, 특정한 대상을 위한 기사를 쓰기도 한다. 이런 직업적 특성 덕분에 그녀의 주말은 남들에 비해 큰 부담일 테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일 때가 많다.


어떤 이들은 내게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나 스스로도 다른 취미로 인해 서로의 시간에 공백이 생기는 일보다는 낫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지만 그건 취미에 한정된 이야기일 뿐. 취미가 잠깐이라도 일이 될 때는 받아들여지는 것이 달라진다.



경복궁, 후지필름 X-PRO2 + XF 16-55mm F2.8


바쁜 아내는 사진을 부지런히 찍기 위해 장소도 옮겨서 다양한 모습을 담아낸다. 집중의 밀도가 높은 그녀에게 온전한 시간을 주고, 나도 사진을 찍는 사람의 입장에서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부지런히 다닌다.


예전에는 이런 주말에 취재하는 시간을 두고 잦은 다툼이 있었지만 이제는 누구보다 즐겁게 받아들인다.

그녀에게 이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오빠, 미안해 나 촬영 조금만 더 해도 될까?"

"그럼! 뭐 찍어야 되는 거야? 어디로 가?"

"잠깐만! 예쁜 카페 가고 싶은데 잠시 찾아볼게!"


환하게 웃으며 아내는 다음 장소로 갈만한 곳을 찾아본다. 그녀는 빠르게 SNS를 보며 예쁜 카페 리스트를 순식간에 추려냈고, 지금 현 위치와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알아본다. 옆에서 나도 찾아보기는 하지만 숙달된 조교와 같은 속도로 장소를 찾아내는 그녀를 이길 수는 없다.


나도 그에 발맞춰서 빠르게 장소로 이동한다. 너무 늦어버리면 사진을 촬영하기 어려워지니까.



카페 일월일일, 후지필름 X-PRO2 + XF 16-55mm F2.8

그렇게 모든 취재를 마치고 나면 아내는 비로소 온몸에 머금고 있던 부담감을 내보낸다.

카페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웃다 보면 오늘의 바쁜 하루가 어떻고, 어쨌는지에 대해선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지금이 행복하고 좋을 뿐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내가 고민했던 행복의 기준이 명확해진다. 많은 돈, 좋은 차, 꿈같은 것들은 아득해진다.  

두 손을 맞잡고 웃을 수 있는 시간과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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