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는 결혼 후에도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 퇴사한 직장인은 퇴사 후 잘 살고 있을까 : 새로운 시작

by 스톤처럼

항상 궁금했습니다. 어릴 적 살던 집에는 세계문학전집과 같이 동화책들이 책장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읽어야 한다' '동화를 많이 읽어야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옆집 애도 읽는다고 하더라'라는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체로 동화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을 맞이한다는 식으로 책 내용이 전개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중에서 신데렐라 동화책이 기억납니다. 동화책을 즐겨 읽던 무렵, 저는 어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공부에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장 향하던 곳은 운동장 / 친구 집 / 오락실로 나뉘었습니다.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고, 책상에 앉아서 공부한다는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찾을 때까지 집 밖에서 노느라 정신없던 꼬맹이였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는 초등학생과 대비되는, 밤 12시까지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신데렐라 동화책을 부여잡고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한참 동화책 독서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결말은 다소 서운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신데렐라는 잘 살고 있나?' '슈퍼마켓에서 00 과자 먹어봤나?' '나처럼 주말에는 < 주말의 명화 >를 보고 있을까?' '지난주 서프라이즈 이야기 재밌었는데, 그건 봤나?'



지금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을 초등학생은 신데렐라 후속 이야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후속작은 나오지 않고, 얼굴에서 털이 자라는 동시에 점점 잊어버렸습니다. 마치 시간을 달리는 것처럼.





며칠 전, 동네 허름한 술집에서 지인과 단둘이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우리 둘이 만나면 술자리 패턴은 거의 항상 비슷합니다. 발걸음 닿는 술집으로 들어가, 적당한 메뉴를 주문하여, 서비스로 나오는 안주로 식욕을 돋우고, 연거푸 맥주를 들이켜는 술자리 패턴.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관계는 끊김 없는 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한 템포 쉬어가는 여유'로서 대화와 대화 사이에 찾아오는 침묵을 환영합니다.



거품이 너무 일어나지 않도록 맥주 3잔을 기울이는 무렵, 죄 없는 뻥튀기만 탐내는 친구 녀석이 무심코 묻습니다. '오늘 술맛이 어때?' 재고 따지고 망설일 필요 없이 대답하였습니다. '어, 오늘 술이 맛있네. 달다 달아.'



작년 이맘때보다 확실히 술이 달았습니다. 몸과 마음 구석구석에 낀 속세의 떼를 씻어내기 위해 마시던 '쓴맛'이 강한 술과는 달랐습니다. 그만큼 요즘 저는 인상 깊은 하루를 사는 날이 많아졌으니까. 거의 매일 뻔한 날은 없으니까.





지난 마지막 글에서 '퇴사' 소식을 간접적으로 알리며 고민하였습니다. 신데렐라 동화책처럼, 나의 이야기는 퇴사한 시점에서 끝나는 걸까? 퇴사하면 내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퇴사 이후 이야기 ('어떻게 살고 있나')이 궁금하지 않을까? 그래, 왕자와 결혼에 성공한 신데렐라처럼, 퇴사와 결혼한 내 이야기를 적어보자.



오늘부터는 퇴사와 결혼한 사람으로서 홀로서기 이야기를 담아보고자 합니다. 단, 여기서 말하는 퇴사는 이직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딘가 소속된 사람이 아닌, 자립심을 키우며 홀로서기하는 '나'로서 내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매 순간 끝맺음을 하려고 합니다. 10대에는 우수한 성적을 받아 유명한 학교로 진학하는 것, 20대에는 스펙을 쌓아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 30대에는 안정된 직장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 물론 이 모든 게 중요하지만, '학교 숙제'처럼 어쩔 수 없이 한다면.... 음,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과연 인생은 끝을 맺을 수 있는 것일까?' 제 생각에는, 남들이 한다고 해서 아무런 생각 없이 끝맺음에 익숙해지면 결국 평범함만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공식적으로 퇴사처리 완료되어도, 저의 인생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규칙 없는 일상에서 하나씩 규칙을 세워야 하는 순간들이 기다렸고, 저만의 루틴과 규율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PPT 템플릿처럼 자유는 일종의 규격을 부여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차츰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퇴사 후 홀로서기 첫 이야기로 퇴사 직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적어보겠습니다. 마지막 직장 퇴사 후 반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니,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야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퇴사를 앞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이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님 < 프레임 >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인데요, 부제는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입니다. < 프레임 > 책에서 미래 프레임에 대한 오류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현재 시점에서 우리가 미래를 바라볼 때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일, 그리고 일주일 뒤 등 미래에 있을 모든 일이 긍정적으로 잘 풀릴 것처럼 낙관하기에, 이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 주제입니다.



예비 퇴사자 분들도 이와 같은 프레임을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퇴사만 한다면 모든 일이 장밋빛 미래를 그릴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퇴직금 수령까지 완료한 시점부터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로지 내가 몸소 부딪히며 살아야 하는 하루들이 말이죠. 퇴사 이후 지금까지 느낀 감정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습니다.








1. 자유



퇴사처리 완료된 날부터 퇴직금 수령 전까지 느낀 첫 감정은 '자유'였습니다. 자유를 싫어하는 분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직접 '자유'를 체험해보니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습니다. 일단 출근의 필요성이 없기에 '언제' '몇 시에' 하루를 시작하더라도 잔소리를 들을 일이 없습니다.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에 하루를 시작할 수 있고, 잠이 많은 분들은 정오가 된 시간에 하루를 시작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복장'에 대한 규정이 있던 회사에서 재직하셨던 경우라면 '복장'에 대한 자유를 느끼실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자유 복장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에서 재직해서 별다른 감흥이 없었습니다만, 정장을 입는 직장에서 재직하던 지인은 복장에 대한 자유를 신선하게 느꼈다고 합니다.



보수적인 회사를 다니셨다면 퇴사 후 식사에 대한 자유를 만끽하실 수 있습니다. 최근 직장인조차 '혼밥'하는 추세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회사에서 식사와 같은 자리에서도 '업무'들이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퇴사하면 아침 / 점심 / 저녁을 언제 무엇을 먹든 (아니면 먹지 않든) 누구도 터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적인 부분에 대한 불필요한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원치 않는 사람을 거절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다면 소리 내어 거절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나기 싫은 관계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직장인으로서 업무적으로 만난 관계로 거절하고 싶어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지만, 퇴사 이후에는 퇴직자 분들이 현실이고 세상의 규칙입니다. 차주 계획을 세울 때 '만나기 싫은 모임이나 관계'가 있다면 과감히 삭제할 수 있습니다.





2. 불안



모든 일에 장・단점이 있듯이 퇴사하면 좋은 일만 있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감정이 바로 '불안'입니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부각되기 시작합니다. 머리로는 '이번 달 25일에는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다'라고 알고 있었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에 한번 더 불안을 겪게 되는 것 같습니다.



퇴사하는 회사와 관련된 마지막 돈인 퇴직금이 입금되었던 날이 생생합니다. 갑작스레 늘어난 돈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어느 누구를 거쳐서 들어오는 돈은 없다. 내가 일하지 않으면 돈이 없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현실을 자각하게 되니 그대로 자리에만 앉아있을 수 없었고, 밖으로 나와서 1시간 정도 정처 없이 산책했습니다. (아, 물론 이렇게 원할 때 산책할 수 있다는 것도 '자유'와 관련 있을 수 있겠네요)



운이 좋게도 회사에서 저는 박수칠 때 떠난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인 시절, 프로답게 회사생활에 최선을 다하였지만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계획한 일이 틀어지는 작은 불안부터 통제할 수 없는 불안까지. 불안의 중심에는 항상 '회사 일'이 있었습니다.



퇴사 후 느끼는 불안은 다소 유형이 다른 불안인 것 같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당장 오후에도 틀어질 수 있고, 자고 일어나면 난장판이 되어 좌절할 수 있어 느끼는 불안.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아낸 것은 대단한데, 내일은 어떻게 열심히 살 수 있을까-하는 불안. 모든 불안은 '나'를 빼놓고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모든 게 자유여서 따라오는 불안의 방향은 명확합니다. '회사에 남아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후회 섞인 불안은 아닙니다. 과거에만 젖어 살아가는 불안이 아닙니다. 내일을 향한 불안입니다. 마음가짐만 바꾸면 감당할 수 있는 유형의 불안이라고 생각합니다.



+ 지금도 새벽 2, 3시에 일 생각으로 잠에서 깨는 경우도 있지만, '회사에 남아있을 걸'이라는 후회는 없습니다. 언젠가부터 '불안'은 제가 감내해야 하는 것들 중 하나라고 인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3. 책임



앞서 말한 '1번. 자유' '2번. 불안' 감정이 익으면 비로소 현실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유로운 일상에 대한 대가, 내일의 계획 앞에서 느끼는 불안은 '책임'을 이끌어 냅니다.



월요일 아침 회사 대신 가보고 싶은 곳을 가는 자유, 원하는 대로 하루 24시간을 채울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원하는 대로 살아가기 위한 계획이 계획대로 잘 이루어질까-하는 불안. / 자유를 느끼는 것도, 불안을 느끼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내 몫입니다.



자유와 불안이 만든 일상은 기준 없는 평가를 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또는 충동 소비)로 하루를 날리는 경우에도 나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회사에서, 혼자서 책임져야 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틀어져 책임져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여도, 적어도 1명 이상이 책임을 지게 됩니다.



하지만 퇴사자는 더 이상 그 회사의 직원이 아닙니다. 혼자서 견뎌야 하는 일이 많으며, 항상 돌발변수가 있으니, 어떤 일을 계획하거나 실행할 때 '책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책 한 권을 사기 위해 오프라인 서점에 방문하려고 계획하면 '오고 가는 이동시간'까지 고려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동시간에 대해 뭐라고 할 사람은 없지만, 그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결과는 책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잘 하든 못 하든 책임은 온전히 나의 몫입니다. 이 부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4. 절제



3번 '책임'과 관련된 부분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나 자신을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직장인이라면 지켜야 하는 회사 내규가 있듯이, 퇴사자라면 지키고자 하는 일종의 규칙을 만들 필요성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바로 '절제'입니다.



매일 열심히 일하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퇴사하였다면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퇴사 후 일주일만 지나면 얼마나 자신이 게으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생각하실 겁니다. '이러려고 퇴사한 게 아닌데.......'



당일치기 여행처럼 의욕에 넘쳐 하루 정도만 열정적으로 살기 위해 퇴사 결정을 내린 게 아니라고 봅니다. 스스로 책임지는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시간은 이리도 많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무너지면 얼마나 허무할까요?



게으른 하루, 남달리 부지런한 하루 모두 보내본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우리가 가진 시간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잘만 활용하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겠지만, 허송세월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내면 공허함까지 느낄 정도로 많은 시간입니다. (퇴직하고 나서) 아무것도 안 하고 흘려보낸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존감까지 낮아지는 경험. 잊지 못할 겁니다.



자유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 / 불안에 파묻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 온전히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기 위해서 나에 대한 '절제'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는 내규를 가지고 있습니다. 퇴직자는 내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내규가 없으면 게으르고 나태해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절제'는 필요합니다.



+ 한 가지 말씀드리면 '절제'를 위해 퇴직자인 저는 차주 계획과 일일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TO DO LIST 계획을 실행하는 데 집중합니다. 기분이 좋든 안 좋든 상관없이 (계획에 따른) '실행'만 합니다. 계획표는 저를 위한 내규이고, 저는 그것을 지키는 '나'라는 회사의 직원입니다. 4번 '절제'에 대해 고민이 많은 퇴직자라면 '계획'을 세워보시길 제안드리고 싶습니다.








따끈따끈한 퇴사자의 현실을 가감 없이 알려드렸습니다. 1. 자유 / 2. 불안 / 3. 책임 / 4. 절제 4가지 요소가 퇴사 이후 현실의 모든 것을 반영한다고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오늘도 퇴사 이후 홀로서기를 위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며, 위 4가지 요소 외에도 새로운 깨달음이 생기면 필터없이 공유드리겠습니다.





사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님 < 프레임 > 저서에는 미래 프레임 외에도, 과거 프레임에 대한 오류를 언급합니다. 과거 프레임에 대한 오류를 요약하면, 현재 내가 확인한 결과로 과거를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퇴사 이후 성공하였다면 '퇴사는 잘한 선택이었다'라고 여겨질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퇴사는 무모하지만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라고 여겨질 것입니다. 우리가 원치 않아도 누군가는 나의 퇴사에 대해 되새기고 회상하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 편향적인 과거에 대한 해석의 약점 또한, 결과로만 바라보는 프레임에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퇴사를 결정하고 / 퇴사 면담하고 / 퇴사 처리까지 완료된 과거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도, 그때 그순간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퇴사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퇴사'라는 과거에 대한 감정은 내려놓고, (이미 퇴사자인) 오늘 하루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건 어떨까요?



굳이 결과 편향적인 해석을 한다고 하면, 돌려 말하면 퇴사 결정에 대한 해석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우리 자신에게 밖에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잘 되면 퇴사는 올바른 결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을 잘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퇴사자의 현실과 감정 곡선 어떠셨나요? 만약 공감되셨다면 마지막으로 이 말을 전달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만 그런 게 아닙니다, 이 글을 적는 저도 그렇고 이 글을 보는 분들도 그렇습니다. 당당한 홀로서기를 응원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데렐라 동화 마지막 엔딩)



"신데렐라는 잘 생긴 왕자와 결혼하였답니다."





(10년 후)



"신데렐라는 왕자와의 결혼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슬하에는 귀여운 자녀를 두었고, 화목한 가정을 꾸렸답니다. 가끔 육아로 힘들기도 하고, 현실적인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고, 저잣거리에서 도는 소문으로 마음이 고생하지만, 신데렐라는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 충만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그녀는 진심으로 행복합니다."




(To be continued..)





브런치 신데렐라 1.JPG
브런치 신데렐라 2.JPG




"같은 공간 그리고 다른 관점. 나의 한계를 지우는 순간, 프레임이 바뀌고 인생이 바뀝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