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란 '명사'이자 '동사' , 퇴사한 직장인이 느끼는 명함값이란?
한적하고 깨끗한 동네. 제일 좋아하는 신발을 신고, 여름용 청바지와 시원한 티셔츠를 입고, 한쪽 어깨에는 흰색 에코백을 메고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평일 오후 2시 30분 조금 넘은 시각, 초여름 햇볕을 피해 어디론가 들어가고 싶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카페가 있습니다. 평소부터 눈여겨봤었던 서점 겸 카페입니다. 이 길을 지나며 종종 마주쳤을 법한데, 직접 이용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조용한 서점 겸 카페인 이곳, 일반적인 카페 평수보다 작은 이곳은 '아지트'라고 불리고 싶을 정도로 작습니다. 2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벽면에는 독립 출판한 책들이 가득합니다. 주인의 정성이 보이는 큐레이션은 청량감이 가득합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에 앉아 30분가량 책에 빠집니다. 서가에 배치된 책들을 읽으며 서점 겸 카페인 이곳을 둘러봅니다.
사장님처럼 보이는 2분은 '주문하실 건가요?' 등 '당신의 정체를 밝혀라!'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구매할 책 2~3권을 골랐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주문하고 나가려는 데, 사장님께서 2층에 있는 다락방에 대해서도 알려주십니다. 자비 없이 내려쬐는 초여름 날씨를 조금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얼죽아,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여 다락방으로 향합니다. 2층 다락방에는 책뿐만 아니라, 서점 겸 카페인 이곳 사장님의 취향이 가득 남긴 물건들이 많습니다. 타인의 취향을 엿보는 듯하여 주저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취향에 취해 몸과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책 / 커피 / 여행 엽서 / 악기 / 다락방. 조금씩 서점 겸 카페인 이곳과 사장님 2분에 대해 호기심들이 생깁니다. '가만 보자. 우리는 서로에 대해 소개도 하지 않았는데, 호기심을 느끼다니.. 음, 이 기분은 뭐지?!'
지금은 퇴사한 직장인,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살고 있습니다만,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서류가방이나 지갑에는 '명함'을 들고 다니는 직장인이었습니다. 회사 사람이든 외부 사람이든 누군가 만나면 명함부터 건네는 게 일이었습니다. 명함을 주고받으면 더 이상 '이 사람'에 대해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사적인 이야기에 대해 물어볼 필요도, 들어줄 의무도 없었습니다. 명함이 대신 설명해주니까.
3년 전 어느 날이었습니다. 외부 미팅이 예정되어 있던 날이었습니다. 서울 어딘가에서 각기 다른 소속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안건에 대해 회의를 시작하기 전, 형식적인 인사와 함께 명함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길지 않은 사회생활에서 배운 대로, 회의 내내 명함과 그 사람의 얼굴을 매칭하느라 부단히 노력하였습니다. 2시간 남짓한 미팅이 끝나고, 얼마 남지 않은 연말 속으로 각자의 길로 사라졌습니다.
외부 미팅이 끝난 후 집으로 귀가하였던 그날, '오늘도 외부 미팅 1건을 해냈구나'라고 나름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큰 문제없이,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우호적으로, 회의를 마무리했다. 나는, 내 몫을 해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명함을 주고받았던 그 사람들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00 소속 00 직위 00 이름..... 만약 오늘 길 가다가 그 분들을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라도 드릴 수 있을까요?
'당신은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해 '명함'으로 대체하였던 시기, 명함 1장이면 '나에 대한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한 감정을 즐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과하지 않게 '명함'이 주는 편리함을 누리기도 했습니다만, 흰색 종이 재질로 만들어진 '명함'이 나를 표현한다고 생각했다면 저의 기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신입사원 1년 차,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명함을 들고 다녔던 적도 있습니다. 저는 왜 그랬을까요..?
다시 '서점 겸 카페' 다락방에 앉아있는 지금으로 돌아올까요? 퇴사하고 나서 나 스스로에 대한 명함을 만들었지만, 직장인 시절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명함부터 건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반나절 일정이 잡히면 본 모임이 무르익고 끝나갈 무렵 '명함'을 건네고 있습니다. 명함 뒤에 '나'를 두는 게 아니라, '나'를 먼저 보여주고 명함을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명함보다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야 명함값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서점 겸 카페인 이곳 다락방에 앉아 있습니다. '나'를 보여주고자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서점 겸 카페인 이곳 사장님 2분과 저는 소통하고 있습니다. 부자연스럽게 표현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로 가득 찬 이곳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 또한 '나'를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명함 1장도 필요 없이 말이죠.
어쩌면 서점 겸 카페인 이곳 사장님 두 분은 '평일 이 시간에 왜 여기 있지?'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릅니다. 명함 1장씩 주고받으면 시간이 걸리는 '이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명함으로 그 사람에 대해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로 가득 찬 인생에서 굳이 '나'를 표현하기 위해 '명함' 뒤에 숨고 싶지 않습니다.
뭐랄까, 최근 남는 시간에 영감을 얻고자 다양한 곳을 다니면서 '명함'을 주고받은 적은 많지 않습니다. 나에 대한 상대의 인식을 강요할 수 없지만, 저에게는 '그날 거기서 있었던 일'이 '명함' 1장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보다 솔직히 말하면 '직장인으로서 명함 1장을 주고받았던 순간'보다 선명합니다.
효율성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이러한 의사소통이 효율성과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람' 간 속 깊은 소통을 하고자 한다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20대 초중반, 저 역시 관계에 있어서 조급한 태도로 접근했습니다. 하지만 반추해보면, 급히 조리하여 맛보려는 '인스턴트 관계'는 그리 오래 유지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급하게 만들어진 관계는 금방 식는 것 같습니다.
앞서 살펴본 명함 1장으로 이루어진 관계에 대해, 지금 와서 아쉬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명함은 명함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를 상상하도록 만들어주지만, 새롭게 명함을 파지 않는 이상 명함은 '어느 순간'에 머물러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물며, 회사에서 부서만 바뀌어도 이전 명함을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제가 원하는 건, 그 사람의 특정 시점이 아니라, '동사'처럼 과거-현재-미래 순으로 그 사람에 대한 많은 부분을 보는 것입니다. 그 사람 인생에 따라 흘러가는 동사 그 자체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명사'만 아니라 '동사'까지 있으면 명함값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서점 겸 카페인 이곳을 방문하고 나서야 저 자신에 대해 한층 더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명함' 뒤에 나 자신을 놓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가능하면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 대해 먼저 보여주고, 그다음에 '명함'을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현실적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처지에서, 저는 어른이 될 수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사람으로서 '명함'에 깊은 여운을 더하고 싶습니다)
나는 나. 어느 순간에만 머물러 고인 사람이 아니라 인생 자체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 누가 보더라도 억지스러운 조급함보다, 가까이하고 싶은 자연스러움. 온전한 나로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 퇴사한 직장인, 어른이 되지 못한 저는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명함값, 아니.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나는 당신에 대해 궁금합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