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 살 넘은 청년, 여전히 모르고 그렇다고 완전히 아는 것도 아니고
80억 인류가 사는 지구, 동아시아에 위치한 '대한민국'.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청년입니다. 100세 인생에서 3분의 1로 어딘가 서있는 사람입니다. 놀이터 꼬마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나의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핸드폰이 보급화되지 않은 시절, 놀이터에서 두꺼비집을 지으며 '내 집'이라고 기뻐하던 어린아이는 감성과 이성의 믹스 버전으로 성장하였고, 메타버스처럼 현실과 꿈 중간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생각을 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공식적으로 퇴사 일정이 정해지고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원활한 퇴사 절차에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비우겠다고, 나름 월간 실적 보고서 작성할 때처럼 비장한 자세로 일종의 '정(情)'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선 사직일까지 필요한 것은 책상 한쪽 구석에 남기고, 앞으로 들여다볼 일이 없는 것들은 파쇄기를 통해 정리합니다. 옆 책상에 앉아있는 사람과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은 개인 용품은 별도로 챙겨 둡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일을 많이 하였던 사람 중 한 사람으로서 정리해야 하는 부분이 참 많이 보였습니다. '입사'라는 관계를 시작하며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던 시간들을 떼내는 속사정은 마냥 웃을 수만 없는 것 같습니다. 미루는 것을 잘 못하는 성향 상, 감정은 잠시 미루고 '해야 하는 일'을 그저 할 뿐이라고 위로해 봅니다.
사실 이제 와서 '공식적 퇴사일까지 나와 회사 간 관계를 정리하였던 기억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오늘 꼭 전해드리고 싶은 메시지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2주 전, 2022년 상반기를 마무리하고 하반기를 맞이하려는 과정에서 '집 대청소'를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리'라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래된 것들을 비워야 새로운 것들로 채울 수 있다고 믿음에서 '정리'는 안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옷 정리 / 방 정리 / 책 정리 / 잡동사니 정리 / 식재료 정리 등 최근 2년간 이용한 기억이 없는 것들은 과감히 버렸습니다. 버리고, 정리하고, 닦고, 쉬었다가, 다시 버리고, 정리하고, 닦고, 좀 더 쉬웠다가, 버리고, 정리하고, 닦고. 무간도처럼 3일간 '정리'와 사투를 벌였습니다.
'지금의 나'에게 소속되지 않은 물건들이 많았습니다. 의외로 많은 물건이 '과거의 나'에게 속한 것들임을 알고 나니,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나란 사람, 그동안 얼마나 과거를 놓아주지 못했던 거냐..'
동시에 '퇴사를 위한 정리'하던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몸이든 마음이든 나랑 엮어진 수많은 것들 중에서, 도대체 내 소유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있을까?' 돌이켜보면 퇴사를 위한 정리, 인생 2막을 살기 위한 준비를 하는 순간, 저는 '과거의 나'에게만 속해있던 것들에 화남과 동시에 슬픔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검은 볼펜 매니아로서 볼펜에 새겨진 로고를 보고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사 로고'가 새겨진 볼펜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정규직 계약 관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작은 것부터 조금 큰 것까지 '소유'가 아닌 '렌탈'의 개념에 가까운 것 말입니다. 5년이든 10년이든 잠시 머물렀다가 언젠가 떠나게 되는 존재로서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으로 보였습니다. 이별한 연인처럼 저 또한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애증으로 얽힌 것들이지만, 마음대로 내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데 말이야. 시키지도 않은 야근이며, 출근시간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하고, 그렇게 영혼을 끌어모아 일을 했던 거냐...'
야속함도 잠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시 최선을 다해 일하였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과거의 나는 최선을 다했다, 용서한다), 지금의 나까지 크게 성장하도록 도와준 점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으로 복잡한 감정선의 끝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쓰레기로 향한 '내 것' 아닌 '남의 것'을 바라보며, 앞으로는 '내 것'으로 채우는 인생을 살자고 다짐하였습니다.
'내 것'에 대한 다짐을 마치고, (퇴사 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올해 9월 가을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며 러닝화 한 켤레를 구매하였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기성 제품으로 구매하였던 것과 달리, '내 발'에 맞는 러닝화를 구매하였습니다. 항상 공장에서, 러닝화 제조 회사에서 정해준 규격에 맞추어 '내 발' 사이즈에 맞는 것 같은 (?) 신발을 구하였습니다. 저는 '내 발' 사이즈가 세상에서 정한 규격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였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맞지 않는 건 문제를 유발하는 것 같습니다. 아디다스 / 나이키 등, 남들이 다 알고, 남들이 신는다는 말만 듣고 나에게 맞지도 않는 신발을 강요한 대가는 의외로 컸습니다. '내 발'은 좁은 신발 안에서 아무 말 없이 고생하고 있었고, 결국 오른발은 '나는 더 이상 못 참아'라고 소리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상이 정한 규격에 맞추지 못하는 '내 발'을 탓하는 나, 그리고 게릴라 시위를 벌이는 '내 발'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수년간 지속되었습니다. 획일화와 개성 간 전쟁 끝에 남는 건 '저의 패배'였습니다. 왜냐하면 견디기 목표하는 시간을 지나,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까지 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 발'을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였습니다. 짧지 않은 휴식기를 거쳐 다소 정상적인 모양의 발이 되었고,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였습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러닝화 전문' 매장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미안한 감정으로 '내 발'이 조금이라도 편히 쉴 수 있도록 편한 신발을 신고 매장을 방문하였습니다. 벽에 걸린 마라톤 메달들은 러닝화 전문의이자 매장 사장님을 직감적으로 찾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내 발'에 대한 러닝 테스트 / 발 모양 등 '내 발'에 대한 세부적인 체크를 통해 사소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 왼발과 오른발 사이즈 차이가 조금 있는 편
2. 왼발 대비 오른발 아치가 높은 편
3. 오른발 대비 왼발 너비가 넓은 편
'내 발'이 의외로 작았고 (그렇지만 신발 자체도 그에 맞춰 작은 사이즈로 구매하였기에 '내 발'은 계속해서 고생하였던 사실), 평균보다 조금 더 높은 케어를 요구하고 있었던 것을 몰랐고, 다행히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발'을 알아가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가 들었지만, 왜 '지금까지 '내 발' 전문가는 나 밖에 없다'라고 착각하던 것일까요? 뭐, 여느 때처럼 이 또한 작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나'에 대해 레벨 업하는 경험이겠죠? :) 그동안 '내 발'에 대한 미안한 감정들 찌꺼기까지 긁어서 마지막으로 표현해주고, '내 발'에 가장 잘 맞는 신발을 가지고 매장을 나오면서 뿌듯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남의 것'이 아니라 '내 것'으로 채우겠다는 다짐, 조금이라도 지켰네.. (흐뭇)
'나'에게 하고 싶은 말로 오늘 글을 끝내볼까 합니다. 저처럼 '내 것'을 무시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그동안 미안해, 그리고 앞으로 잘해보자. 남의 것 아닌 '내 것'이라는 마음으로 내가 더 잘할게.
(To be continued..)
★ 아 맞다, 나는 빵과 커피를 좋아한다. 하지만 잊고 지냈지. 무시하려고 했지. 그동안 그것들을 잊고 지냈던 날에 미안하네. 오늘 하루는, 소금빵과 아이스초코 한잔 하자. (일종의 화해의 제스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