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에서 공식적인 시험이란 허들을 건넌 불완전한 당신에게 또는 나에게
늦은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오래간만에 푹 잤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뜨니 아침 6시였습니다. 요즘은 그렇습니다.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눈을 뜨는 거 같아요. 오늘 2022년 11월 17일 목요일 아침 뉴스를 켰습니다. 오늘이 수능이더라고요. 수학능력시험. 맞아. 10여 년 전 나도 수능을 봤었지? 탁상용 달력을 봤습니다. 그때는 수제 '별'표까지 쳐가면서 수능날까지 디데이 카운트를 했었죠. 하지만 오늘 아침은 다른 글씨가 적혀 있었어요. 17일이란 검은색 숫자 위에 적힌 생일. 네 때마침 저의 생일이네요. 평범한 날이 되었어요.
사실 오늘은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데요, 마침 수능이네요. 유치하지만 이런 우연이 있어요. 비록 저는 훌륭한 어른은 아니지만 해줄 수 있는 말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요. 주책바가지라서 미안해요. 누군가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저처럼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분들도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늘 글을 쓰기 시작해요. 수능이 끝나면 홀로 그 남은 하루를 보내는 분도 계실 테니까요.
사실 10대에는 기억나는 게 거의 없어요.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고 운동을 잘했던 것도, 잘 생기지도, 인기가 많지도 않았으니까. 정말 평범했어요. 아마도 대부분 친구들이 저를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저조차도 10대 시절이 기억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은 어떨까요? 말썽을 피우지는 않았는데 사실 대담하게 도전해 본 기억도 없어요. 10대 시절은 무채색이었어요. 아무런 특징이 없었다는 말이에요. 지금까지 남은 것은 제가 의무 교육을 모두 마쳤다는 사실과 대학에 들어가서 상당히 오랫동안 공부를 했었다는 사실만 있네요.
제가 여러분 나이일 때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도 몰랐어요.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요, 남이 하니까 그렇다는 거였어요. 다시 말해 스스로 결정해 본 기억이 없어요. 남이 하니까 보습학원에도 가본 적이 있고, 남이 하니까 학교 시험공부를 해봤죠. 남이 하지 않으니까 하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었어요.
그리고 인생에서 한 번의 수능을 봤었죠. 사실 수능으로 저는 많은 사람을 실망시켰어요. 조금은 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던 부모님을 실망시켰고,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무너지던 날 제 자신을 실망시켰어요. 심지어 짝사랑했던 친구에게도 실망을 안겨주었죠. 가뜩이나 소심했는데 죄책감으로 더 움츠러들었어요.
수능은 처음 가보는 이웃 학교에서 치렀고요, 수능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혼자서 걸었어요. 집에 가는 길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드디어 끝났다는 기분보다는 홀로 덩그러니 남아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런 기분에 휩싸였어요. 뭐가 뭔지 전혀 감이 안 잡히더라고요. 수능을 봤다는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는 말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라는 말을 더 이상 듣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간섭에서 벗어나서 좋은 것이 아니라 보호막 같은 울타리를 벗어나서 불안했어요.
수능 다음날부터 수능 성적이 나올 때까지 수능이 끝났다는 해방감에 취해 있었어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했을 때처럼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진학할 수 있을 거야. 이런 희망에서 안도했어요. 하지만 예상하셨을까요? 수능 성적표를 받은 날 어쩌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남이 하니까 하려고 하고 남이 하지 않으니까 나도 하지 않는. 위험할 것이 없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답이 없는 인생을 마주하게 되었죠. 낙오되었다고 생각했고 옆에서 합격 소식에 웃는 친구들이 부러웠어요. 성적이 좋아서 원하는 대학에 한 번에 합격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어요. 나의 대학 진학 기는 정해지지 않았죠.
추가 합격을 기다리면서 대학 진학 면담을 했어요. 면담 일주일 전부터 잠을 제대로 자지 못 해서 많이 예민해져 있었죠. 솔직히 저는 무서웠거든요. 남이 하니까 나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러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수능 성적표를 가운데 두고 면담을 받았는데요, 웃고 싶지 않은 상황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좋아하는 것도 모르고, 싫어하는 것도 모르는, 한 마디로 특색이 없는 저에게 추천하는 대학. 그 추천 사유가 어이없었죠. 공기가 맑아서 경치가 좋아서, 시내라면 주변 맛집이 많아 보여서.
안 그래도 불안해서 미치겠는데, 어쩌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선택에서 판단의 근거가 말도 안 되는 이유들 뿐이었어요. 어렴풋이 알았어요. 그 선생님도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을. 다시 말해 어중이떠중이 학생에게는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여기까지 수능에 대한 추억을 더듬고, 뜨거운 커피를 한입 들이켰어요. 뜨거운지도 모르겠네요. 부끄러운데요 저는 그런 상황에서도 또박또박 말하지 못했어요. 그저 살려달라는 눈빛으로 웃기만 했죠.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었지만. 굴욕적인 면담은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저 자신이 한심해 보였고 꼴도 보기 싫었어요. 어찌어찌해서 대학을 갔어요. 감사하게도 선택할 수 있었죠. 물론 목표했던 대학은 아니었지만요. 스무 살을 보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라는 사람이 완벽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족함이 없고, 흔들리지 않으며,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요. 만약 그런 사람이 보이면 멀리서 막연히 동경했고, 시간이 흐르면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대학을 졸업하고 경제활동을 하면서요 어렴풋이 동경하던 그런 존재가 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대입 수험생활은 끝났고 남들처럼 돈을 벌고 있으며 내 인생도 정해진 순서대로 흘러가리라. 내 인생은 이제 확실하리라.
생각의 흐름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크게 웃었어요. 수능을 보고 나서 10년 넘게 흘렀죠. 그런데 오늘도 여전히 저는 흔들리고 있고, 불완전하고, 거의 매일 새로운 문제를 마주하고 있어요. 예측할 수 없었던 문제들이 대부분이죠. 어떤 문제가 나올지 몰라요.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매일 보는 기분이랄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완전한 존재가 된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아니네요. 이 못난 어른인 지금도 흔들리고 있어요.
테이크아웃 커피가 바닥을 보일 때 이렇게 결론을 내렸어요. 나는 흔들렸고, 오늘 아침도 흔들리고, 앞으로 흔들릴 거라고. 인생이 원래 그런 거라고. 암울한 현실에서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런 인생이지만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에요. 40대가 되어도 여전히 불안할 것이고, 50대가 넘어서도 이런 인생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여러분이 느끼는 기분. 어떤 말도 위로가 안 된다는 것도 알아요. 저 역시 수능을 보고 나서 그것이 내 인생 전부라고 생각했었죠. 무수히 많이 들었을 거예요. 지나고 보면 수능은 그냥 수능일뿐이라고. 진짜예요. 수능이 끝나도 결과와 상관없이 여전히 여러분은 흔들리고 불안할 것이에요. 대학에 가도 그렇죠. 성공적으로 취업을 해도 그럴 거예요. 지금 말하는 것들을 모두 겪어본 한 사람으로서 말하는 것이니 부디 그냥 흘려보내지 말아 주세요.
대학에 가서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아도 흔들릴 것이고, 원하던 직장에 성공적으로 취직해서 어깨 펴고 일해도 흔들릴 것입니다. 언젠가 회사 밖으로 나와서 나만의 길을 찾아 떠날 때도 흔들릴 것이에요. 나만의 인생을 살아갈 때는 괜찮을까요? 아니요. 여전히 흔들리고 또 흔들릴 것입니다.
그러니 자. 책. 하. 지. 마. 세. 요.
아직은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가까운 사람들을 보더라도 결혼을 해도 흔들리고, 자녀를 낳고도 흔들리고, 정년퇴직을 앞두고도 흔들려요. 인생의 연륜은 무시할 수 없지만 여전히 답을 모를 것이고, 여전히 문제 앞에서 지금의 여러분처럼 혼란을 겪습니다.
그러니 최선은 다 하되
너무 완벽하지 못해서
스스로를 미워하지 마세요.
서른 중반의 길목에서 수능부터 지금까지 굉장히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지만, 여전히 저는 잘 모르고 흔들리고 오늘을 걱정하면서도 오늘을 잘 살아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요. 완벽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있으나 그 마음 위에 '나는 불완전한 존재다'라는 사실을 덮어쓰기를 하죠.
오늘부터 당분간, 그러니까 인생 단위로 본다면 그리 크지 않은 기간 동안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얼마나 이 글을 볼지는 모르겠지만, 혹여나 그런 분이 이 글을 본다면 이 한 문장은 마음속에 간직하시길 바랄게요.
나는 완벽하고 싶지만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야.
(그러니 괜찮아. 인생 아직 안 끝났어.)
오늘 고생 하셨습니다.
2022.11.17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