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에 일을 해본 사람만 아는 그 새벽 감성이 생각나는 어느 새벽
고요한 정적. 이제는 몸이 기억한다.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불 밖으로 나와서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끼지만 애써 아는 척하지 않는다. 얇은 눈꺼풀 사이로 어둠을 응시하며 일어나 있지만 그 시간이 되면 본격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을까. 출근 전부터 벌써 뇌에서 에너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난 근무가 떠오른다. 참 바빴다. 출근하자마자 퇴근할 시간이 되었다. 기억 상실증에 걸리면 좋을 때가 있다. 그건 근무하는 동안 기억 상실증에 걸리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때가 있다. 그날이 그랬다. 너무 바빴다. 사실 어떻게 지나갔는지 인지조차 못 했다. 퇴근버스에 몸을 실었던 것만 기억난다. 눈 떠보니 종점에 있었다. 다시금 떠올리니 자연스레 이불을 턱 밑까지 깊게 끌어당긴다. 오늘도 그럴까.
새벽 알람이 울린다. 어렵지 않다. 1초도 걸리지 않아서 알람벨을 껐다. 나는 이미 일어나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불 안에만 있었지 내 정신은 이미 출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기계적으로 준비한다. 인간 몰골을 하기 위한 준비를 어설픈 손놀림으로 해낸다. 사람의 형상이 아니면 일하기 힘든 곳이라서 아주 기초적인 것들은 준비가 필요하다. 깊은 심호흡을 하며 베란다 바깥을 내다보면 캄캄한 어둠 천지다. 다들 자고 있다. 그런데 반딧불처럼 빛나는 존재들도 보인다. 다들 자고 있는 시간 나처럼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공상에 빠진다. 고개를 흔든다. 지금 나가지 않으면 지각이다. 나가자.
첫 차가 눈곱을 떼기도 전인 새벽에 길을 나서면 개미 발걸음조차 들리지 않는다. 고요하다. 눈 감고도 다니는 길에도 불구하고 낯설기만 하다. 새벽 근무를 하였을 때는 교통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서 김포공항까지 가야 하는데 그 시간에 택시 잡는 것도 요령이 필요하다. 일종의 눈치 싸움이랄까.
대로변 가장자리에 서서 택시 빈 차가 다가오는 게 보이면 술 취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 수상해 보이거나,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보이면 택시 잡기란 더욱 어려웠던 것 같다. 보여줘야 한다. 나는 멀쩡해요.
가까스로 택시를 잡고 공항으로 향하는 기분이 묘하다. 누군가는 첫 비행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동한다지만 나는 일을 하러 가기 때문이다. 마치 중세 시대에 문지기 장수로서 교대 근무를 하러 가는 기분이다. 행인들이 오가는 길목에서 그들이 오가는 것을 지켜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해외로 떠나는 최전선으로 향하나, 근무가 끝나면 나의 목적지는 해외 현지가 아니라 집이 될 터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집에서 싸주는 도시락이 없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새벽이라면 배고플 만도 한데, 이상하게 새벽에서 아침 그리고 오전 근무를 하다 보면 밥 생각을 떠올리지 못할 때가 많았다. 누군가 밥을 먹으러 갔다 오라고 하면 그제야 식사를 떠올린다.
새벽에서 아침, 그러니까 우리가 체감상 오전이라고 부르는 시간이 되기 전까지 공항은 모든 시작들이 모여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여행의 시작이고, 누군가는 귀국의 시작이며, 또 누군가는 국내든 해외든 오늘 하루의 시작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더 기분이 묘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아침들을 맞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중에는 나도 있었지.
개인적으로 그 시간이 묘함의 정점을 찍는 날들은 대체로 밤이 낮보다 긴 시즌에 있는 것 같다. 왜 인지는, 퇴사한 지금도 모르겠다. 1년이 다음 해를 향해 올해를 저물게 하는 것이서 더 그런 걸까? 새벽 근무라고 하더라도 출근할 때도, 그리고 근무지에서 몇 시간을 보내도 바깥은 여전히 어두운 경우가 많았다. 동쪽에서 햇빛이 지상을 녹이기 시작하면서 아침인 동시에 오전을 알리는 시간이 되면, 어느새 나는 하루의 끝, 퇴근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참 사람들이 회사에서 점심을 먹을 때면 나는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남들보다 1.5배는 더 유용하게 살 수 있었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였다. 이 몸은 낮잠을 필요로 했다. 한 해의 낮이 저물어서 수평선 너머로 내년이 보이는 시기가 되면, 이렇게 한 해가 지나가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낮잠 자는 시간이 아깝게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전 직장에서 공항에서 근무하였던 기간은 길지 않다. 커리어를 놓고 본다면 인천공항 새벽 근무에 대한 기억은 풍부하지 못하다. 중간중간 끊긴 필름처럼 빈티지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분명 새벽 근무는 하였다. 하지만 그 기간을 통틀어 본다면 모든 기억들이 온전하지 못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기억나지 않는 순간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새벽에 집을 나서서, 공항으로 출근하였을 때 그 느낌은 기억난다. 공항도 음식점처럼 운영시간이란 게 있다. 운영시간이 아닌 시간에서 공항은 여기저기 불이 꺼져 있다. 그렇게 큰 공간이 주는 침묵은 조금 다르다. 좋다 안 좋다가 아니다. 그냥 불 꺼진 공항이 주는 느낌이라는 것이 있다. 공항에서 새벽 근무하였던 종사자 입장에서 (여행을 가는 게 아니지만) 여행을 가는 묘한 감정과 일터로 향하는 의무감을 모두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다 자고 있어서 고요한 동네와, 첫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은 다르면서도 유사한 점이 있다. 새벽 감성을 내심 좋아한다는 것이다. 달콤한 잠을 자느라 그 새벽을 좋아하고 모험심을 자극하는 여행의 시작점이 되는 새벽을 좋아한다. 새벽 출근 그 묘함을 가슴에 품고 일터로 갔던 청년도 그랬을 것이다.
보직이 변경된 후에는 여행 차원에서 인천공항은 자주 갔지만, 인천공항 출퇴근을 했던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지금은 그때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을 하고 있다. 전혀 관련도 없고 완전히 다른 일이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그 새벽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비싼 공항 밥을 두고서 남은 식권을 계산하지 않지만 맨날은 아니어도 지금도 새벽 근무를 하고 있다. 새벽이 주는 감성은 퇴사란 없나 보다. 새벽 근무라고 싫지만 않다. 새벽이 주는 고요함, 밤을 새더라도 조금 있으면 아침이 밝아오리라는 순리, 어제 무슨 일이 있었어도 무엇이든 감싸 안아주는 느낌적 느낌.
혹시 오늘 새벽 근무를 하고 있는가?
지금 출근을 준비하고 있는가?
아직은 밤이 낮보다 긴,
아니 점점 밤이 낮보다 길어지는 지금
그 새벽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있다.
답장이 안 올 수도 있지만
그래도 쪽지를 보낸다.
당신도 깨어 계시군요?
나도 여기 깨어 있어요!
아직 밝아오지 않은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