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인생이 가혹합니다. 계획은 늘 틀어집니다. 안 좋은 일은 몰아서 온다고 했던가요.
등골이 쎄한 겨울이 지나는 길에는 꽃이 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게 갑작스러웠습니다.
영혼을 팔아넘기며 내게 남은 건 '실패'라는 주홍글씨, 동시에 터진 예기치 않은 가족에 대한 간병.
오후 2시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영등포구 당산 방면으로 넘어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봅니다.
새해가 시작된지 벌써 2달이 지나가고 있는 어느 날, 봄은 어설프고 겨울에 잠든 한강이 조금씩 깨어나는 어느 날.
버스 구석자리에서 창밖 한강을 바라보며 조용히 울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15분 가량 버스타고 이동하는 이 시간이 유일하게 허락된 사치입니다.
이 사치가 끝나면 현실로 돌아가야 합니다.
에코백 가방끈을 부여잡고 다리에 힘을 주고 좌석에서 일어나야 하는 순간이 멀지 않았습니다.
한강의 얼음판을 깨는 햇살을 피해 어디론가 숨고 싶은 감정이 오랜만에 명치 부근에서 전해집니다.
오늘은 면접이 있는 날입니다. 2022년 5월에는 몰랐죠.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나의 사연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연 중 '한 가지'일 뿐이라는 걸 말이죠.
특별하다고 대우를 받고 싶지 않고, 내가 가진 몸으로 다시 일어나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도무지 앉아서 무언가를 집중할 수 있는 정신적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몸을 움직여보기로 합니다.
'노동'이라고 부르는 일을 얻기 위한 면접입니다.
나중에야 가족에게 밝혔을 때, 그동안 대학교에서 성적장학금까지 받고 다니며 원하는 회사에 입사해 속칭 '장미빛' 황금 미래만 펼쳐질 거라 굳게 믿는 가족의 기대에 '실망'을 끼얹어버린 꼴이 되었습니다만.
내가 압니다.
머리로 할 수 없다면 몸을 쓰는 일을 해야 한다는 걸. 그게 나의 유일한 선택지라는 사실을 말이죠.
콘텐츠며, 마케팅이며, 기획이며, 전략이며, 재무 회계이며..
1000억 부자, 월 천 만원, 연봉 1억..
대기업 회장님, 선망 받는 인플루언서..
하루 5분만 일해서 돈을 번다느니..
여행하며 편하게 일을 하고 워라밸 따박따박 지킨다느니..
그런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살아야 했습니다. 멘탈적으로도 생존해야 했습니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한 것일 뿐입니다.
누군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오늘만큼은 어찌됐든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움직였습니다.
그렇게 나의 '노동'은 시작되었습니다.
신입사원 지원도 못 하는 나이에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