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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영 May 21. 2018

진상인 너, 아파테이아 한 방

- 스토아 철학 응용 편

살다 보면 진상이지만 얼굴 맞대고 지낼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꼭 있지요?


재수 없음이 일시적이든 꽤 오래 가든 간에 그 기간은 좀 괴롭습니다.


이런 불편한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치유 개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지요.


뜻풀이를 해 보면 'a(없음)+pathos(감정)'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난 너에게 감정이 일도 없다.


는 의미이지요. 가만히 이 말을 되새겨 보세요. 언뜻 보기에는 그런가 보다 싶지만, 이런 암시를 상대방으로부터 받게 되면 뭔가 무서운 고립감이 느껴질 것만 같지 않나요? 왜냐하면 이런 암시의 의미는


'너의 존재감이 나에게 없다'


는 뜻이기 때문이지요. 

저 새들의 표정을 보세요. 시큰둥하고 무관심하지만, 경멸스러운 표정들이지요?

그게 바로 진상인 인간을 대하는 아파테이아의 아주아주 구체적인 태도입니다.


그럼 '아파테이아'의 본래 철학적 문맥은 어떤 것일까요? 스토아 철학 문헌에서 아파테이아를 잘 표현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한 번 볼까요?


누가 당신을 자꾸 자극하는 것처럼 보일 때 당신을 자극하는 것은 그 사건에 대한 당신의 판단뿐이란 점을 잊지 말라. 단순한 겉모습에 흥분하지 말라.
그 순간 즉시 반응하지 않도록 노력하라. 상황으로부터 떨어져라.
넓게 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혀라.


이 구절은 후기 스토아 철학자 중 한 사람인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 스스로 노예 신분이었기 때문에 화나고 감정이 상하는 일이 많았을 그는 이렇게 자신의 감정이 '판단'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무반응'을 행동원칙으로 정한 것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지요.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아파테이아, 즉 '감정 없음'의 상태입니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일을 많이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표적으로 전하는 일화는 그의 주인이 그의 다리를 부러뜨린 사건입니다. 이후로 그는 절름발이가 되었지요.


불행한 사건, 또는 자신을 위해하려는 인간을 만나거나 그런 예감에 휩싸일 때 아마도 그는 '아파테이아'의 상태에서 상황을 예의 주시했지 않았을까요?


사실 이 개념을 현대적으로 번안하면,


싫은 자에게 감정 낭비를 하면서 스스로의 평안을 해치지 마라.


라는 뜻이 됩니다.



자, 이제부터 저 스토아의 올빼미처럼 감정을 갈앉히고, 그 녀석의 행동을 예의 주시하십시오.

혹시 압니까? 녀석이 진상짓을 그만둘지? 아니라고요?


그렇지 않다면, 내 생각이 바뀔지도 모릅니다. 그 녀석이 매우 매우 희한하고 재미있는 인격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그와 마주치는 것이 흥미로워질 수도 있어요.





<더 읽어볼 만한 책>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BOK00021356615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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