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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영 Aug 13. 2019

들뢰즈와 로트망, 그리고 하이데거

<번역원문 서지사항>
James Bahoh, ‘Deleuze’s Theory of Dialectical Ideas: The Influence of Lautman and Heidegger’, in Deleuze and Guattari Studies 13.1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19), pp. 19–53.
왼쪽부터 Martin Heidegger(1889-1976), Albert Lautman(1908-1944), Gilles Deleuze(1925-1995)


들뢰즈의 변증론적 이념론로트망과 하이데거의 영향    


제임스 바호



개요

『차이와 반복』에서 들뢰즈의 존재론은 이념들 또는 문제들의 변증론에 의해 구조화되어 있다. 그것은 플라톤, 칸트 그리고 고전적 미적분법으로부터 내용을 가져온 것이다. 들뢰즈는 이러한 내용들을 이념/문제의 이론을 통해 통합하는데, 이것들은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알베르 로트망(Albert Lautman)에 의해 전개된 것이다. 로트망은 수학과 관련된 문제들 또는 변증론의 이념들의 본성, 또한 이를 이해하기 위해 탐구해야 하는 수학 이론들에 대해 연구했다. 로트망은 이러한 연구 작업을 하이데거에 기반하여 수행했다. 이 논문은 (1) 들뢰즈의 이념들/문제들의 변증론을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로트망과 하이데거를 분석함으로써 명확히 하고 (2) 로트망을 경유하여 들뢰즈에게 미친 하이데거의 영향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키워드: 들뢰즈, 로트망, 하이데거, 존재론, 형이상학, 메타수학, 변증론적 이념, 문제.     


I. 서론


『차이와 반복』에서 들뢰즈는 복잡한 존재론을 전개하는데, 이것은 그의 변증론적 이념들 또는 문제들에 의해 만들어진 전반적인 구조에 해당된다. 내가 논하고자 하는 것은 들뢰즈에게 이러한 이념들은 '변증론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고유하게 문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여기서 '이념들'(Ideas) 그리고 문제들(problems)이라는 어휘들을 지속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 중요해질 것이다.) 들뢰즈의 이 존재론에서 존재자들은 '시뮬라크르' 또는 '차이 자체를 통해 차이가 차이와 관계맺는 체계'(Deleuze 1993: 355/1994:277[주1])이다. 시뮬라크르의 체계는 두 가지 존재론적 목록을 가진다. 하나는 잠재적 목록으로서 여기에서는 미분화(differentiation)의 과정이 구성된다. 또 하나는 현행적 목록으로서 분화(differenciation)의 과정이 구성된다. 이 미분적 그리고 분화 상태들은 이 목록들 안에서 변형을 겪으며, 그와 같은 시뮬라크르적 존재자의 세계는, 오직 준안정적인 상태들로 존속하는 '카오스모스'의 세계를 휘젓는 어떤 것이다. 들뢰즈는 잠재적인 것과 현행적인 것의 관계, 그 구조의 핵심 측면들을 변증론적 이념들과 문제들의 이론 그리고 그것들과 관련되어 발생하는 해들(solutions)로 이해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시뮬라크르의 체계가 '이념들의 현행화를 위한 자리들(sites)'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잠재적 또는 변증론적 이념들에 의해 조성되는 문제들의 해들을 결정하기 위한 자리라고 보는 것이다(Deleuze 1993: 356/1994: 278). 현행화 단계에서, 이념들을 구성하는 미분적 관계들과 특이성들은 '극화되고'(dramatised), '육화되고'(incarnated), '개체화된'(individuated) 또는 '해결된'(solved) 것으로 존재한다. 이것은 시공간적 역동과 질들, 연장들, 종들 그리고 그러한 역동들이 야기하는 부분들에 의한 것이다.     



들뢰즈의 이념과 문제들의 변증론은 플라톤, 칸트 그리고 고전 미적분론으로부터 그 특성들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특성들을 20세기 초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로트망(1908-44)에 의해 발전된 이념/문제들의 이론에 도입함으로써 통합한다. 이 점에서 로트망의 우선적인 관심사항은 수학과 관련된 문제들의 본성 - 로트망은 이를 '변증론적 이념들'이라고 불렀다 - 과 해들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요구되는 수학 이론들에 대해서도 연구했다(Lautman 2011b: 199). 비록 로트망이 그의 이론을 수학 이외의 장에 적용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는 변증론적 이념들 또는 문제들 그리고 그것들에 조응하는 해들이 모든 탐구 영역 그리고, 사실상 엄연히 존재론적 발생론을 위해 필수적인 형이상학적 구조를 구축한다고 주장했다. 들뢰즈는 이념들/문제들에 관한 로트망의 이론을 거의 전반적으로 채택하면서 그것을 정확히 그러한 결실들[로트망이 주장한 형이상학적 구조들]을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시킨다. 다른 말로 해서, 로트망주의적 이론은 들뢰즈 존재론의 전체 구조를 조력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놀랍게도 로트망은 그의 이념/문제들의 이론을 발전시키는 와중에 하이데거에게 아주 많이 의존했다. 들뢰즈가 하이데거를 인용하는 경우가 아주 드묾에도 불구하고, 로트망이 둘 사이의 매개체로 작동하는 것에 주목하다 보면 하이데거 존재론의 특정 요소들이 간접적으로 들뢰즈의 존재론을 형성하는 것이 드러난다. 또한 이것은 우리가 들뢰즈의 존재론을 이해하기 위한 역사적 참조점을 형성하는 것이기도 하다.[주2] 그간 무시되어 왔지만, 로트망은 하이데거와 들뢰즈 사이에, 역사적이고도 체계적인 수준에서 어떤 관건적인 연결지점을 형성한다. 들뢰즈의 참조 지점은 우선적으로 로트망의 세 개의 논문에서 알 수 있다. 「수학에 있어서 구조와 존재의 개념에 관하여」(Essai sur les notions de structure et d'existence en mathématiques, 1938), 「수학의 변증론적 구조에 대한 새로운 탐구」(Nouvelles recherches sur la structure dialectique des mathématique, 1939)[이하 「새로운 탐구」], 그리고 「수학과 물리학에서 대칭성과 비대칭성」(Symétrie et dissymétrie en mathématiques et en physique, 1946)의 두 번째 장 - 이 장에는 ‘시간의 문제’[주3]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 이 그것들이다. 「새로운 탐구」는 하이데거와 로트망의 가장 중요한 연관성을 담고 있다. 1956년과 1957년 사이에 들뢰즈는 루이 르 그랑 학교의 고등사범학교 준비반(hypokhâgne)에서 〈근거란 무엇인가?〉(Qu'est-ce que fonder?)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주4] 녹스 패당(Knox Peden)이 지적한 바에 따르면, 그 강의가 기반한 '원텍스트'(source text)는 앙리 코뱅이 번역하고 소개한 하이데거 선집으로서,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이었으며, 거기에는 하이데거의 논문인 「근거의 본질에 관하여」(Vom Wesen des Grundes)와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Kant und das Problem der Metaphysik)가 포함되어 있었다(Peden 2014: 245, 200)[주5].  특히 이 책에 포함된 하이데거의 「근거의 본질에 관하여」는 로트망 이 「새로운 탐구」에서 하이데거의 저작으로는 유일하게 참조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들뢰즈가 문제들/이념들에 관한 로트망 이론의 요소들을 「새로운 탐구」로부터 가져왔을 때, 그는 그 안에 있는 하이데거의 기여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이것은 로트망의 탁월성이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에 가져다 준 주목할 만한 기여이며, 들뢰즈가 로트망을 다루고 있을 때, 하이데거에 대한 명백한 참조를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어지는 글에서 나의 주요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들뢰즈의 이념들/문제들의 변증론을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로트망과 하이데거를 분석함으로써 명확히 하고 (2) 로트망을 경유하여 들뢰즈에게 미친 하이데거의 영향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하이데거의 영향에 관한 특별한 노선은 들뢰즈 학술집단 안에서 광범위하게 미인지 되고 미개척 되어 있다. 나는 하이데거가 '근거지움'(Grundlegung, 정초)과 관련하여 '생산적 논리학'(produktive Logik)이라고 불렀던 것을 개괄함으로써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이것은 존재의 문제틀에 대한 하이데거의 개입을 성격지우는 것이며, 그의 경력 전체에 걸친 존재론의 진화를 구조화하는 것이기도 하다(Heidegger 2006: 10/1962: 30). 이는 로트망의 이념/문제들 이론의 여러 중요한 면모들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어떤 기술적(technical) 맥락을 수립한다. 이에 따라 나는 로트망의 이론에 있는 이념/문제들에 대한 의미의 외연적 재구축을 통해 들뢰즈의 이념/문제들 이론 안에 있는 다섯 가지 핵심적 주장들에 관한 어떤 설명으로 들어갈 것이다. 나는 로트망이 자신의 이념/문제 이론의 핵심 부분으로 설명하는 하이데거의 용법에 관한 논의도 포함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두 가지 방식들, 즉 들뢰즈가 로트망-하이데거 이념/문제 변증론에 어떤 것을 부가하는 그 방식들을 분명히 설명하면서 마무리할 것이다.[주6] 내가 분명히 하고자 하는  들뢰즈 이론의 다섯 가지 중심 주장들은 다음과 같다.     



1.이념/문제들은 해와 본성적으로 다르며, 해와 더불어 사라지지 않는다.

2.이념/문제들은 변증론적이다.

3.이념/문제들은 해와 관련해서 초월론적이다.

4.이념/문제들은 그 해들에 동시에 내재한다.

5.이념/문제들과 해들의 관계는 생성적이다. 즉 해들은 이념/문제들의 결정 조건들에 기초하여 발생된다.[주7]   

 

아래의 압축된 구절에서 들뢰즈는 이러한 다섯 가지 지점들과 내가 논하게 될 개념들과 연관된 여러 중요한 지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그 해들의 바깥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을 뒤덮는 이 해들을 통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해들 속에서 내속하고 존속하면서 끈덕지게 자신을 주장한다. 문제는 해결됨과 동시에 규정된다. 하지만 문제의 규정과 그 해는 구별되어야 한다. 이 두 요소는 본성상 다르고, 규정은 동반자의 지위에 있는 해의 발생에 해당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특이성들의 할당은 전적으로 문제의 조건들에 속하는 반면, 그것들의 종별화는 이미 이 조건들을 통해 구축된 해들에 의존한다.) 자신의 해들에 대해 문제는 초월적인 동시에 내재적인 관계에 있다. 그것이 초월적인 것은, 문제가 발생적 요소들 간의 이념적 연관[liason idéelle]이나 미분비(微分比)[rapport différentiel]들의 체계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재적인 것은, 이 이념적 연관이나 미분비들이 [현실적 차원의] 어떤 결합관계[relation]들 안에 구현되기 때문인데, 그 미분비들을 닮지 않는 이 결합관계들은 해의 장(場)에 의해 정의된다. 알베르 로트만이 그의 감동적인 저서에서 어느 누구보다 명쾌하게 보여준 것처럼, 문제들은 무엇보다 먼저 어떤 플라톤적인 이데아들이고 변증론적인 기초개념들 사이의 어떤 이념적 연관들이며, 이런 이데아나 연관들은 “실존하는 것의 돌발 가능한 상황들”과 관련되어 있다. 게다가 문제들은 어떤 결합관계 안에서 현실화되고, 이 결합관계는 어떤 수학적 혹은 물리학적 등등의 장에서 탐구되는 바로 그 해를 구성한다. 로트망에 따르면, 이런 의미에서 과학은 언제나 자신을 뛰어넘는 어떤 변증론에 참여하고, 다시 말해서 어떤 메타수학적이고 명제 외적인 역량에 참여한다. 비록 이 변증론이 오로지 실질적인 과학 이론의 명제들 속에서만 그 연관들을 구현한다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문제들은 언제나 변증론적이다. (Deleuze 1993: 212-13/1994: 163-4/Kor. 360-1 번역 수정)   

  


II. 하이데거의 '근거지움(정초)'의 '생산적 논리학'

하이데거의 중심문제는 존재의 본성을 명백히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는 존재를 어떤 문제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존재론 안에 있는 존재의 논리는 어떤 특정한 의미에서 문제적'이다.' 들뢰즈의 용어를 가져 온다면, 하이데거에게 존재는 '문제틀적 요소'로 작동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그의 존재론의 개념들에서 어떤 지성적인 방식 안에 드러 밝히어져 있다. 반면 그러한 요소들은 동시에 존재론적 개념들을 초과하면서 그 존재론의 내재적 진화를 추동한다(Deleuze 1993: 231/1994: 178).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어떤 반성적 논리가 하이데거의 존재론 - 그리고 그가 자신의 존재론을 표명하는데 있어서 사용하는 개념들 - 이 안정적이지 않고 복잡한 방식으로 진화한다는 것을 이끌어내는 존재에 관한 문제틀에 연루된다는 것이다. 점진적으로 잘 정초된 방식들에서 존재에 관한 문제들을 표명하는 그러한 개념들의 효과는 어떤 정교한 방식으로 그것들이 기존에 수립된 개념적 체제나 의미론적 그리고 통사론적 질서들을 위반한다는 것을 도출한다.[주8] 이러한 위반들은 (1) 로트망의 저작에서, 수학 이론의 재구성과 (2) 들뢰즈의 저작에서, 현행적인 수준에서의 사건들과 나란히 간다. 전자는 수학이 그것에 의해 형성될 때  또는 이념 또는 문제들의 수학적 변증론의  새로운 구조적 측면들을 구체화할 때 발생하며, 후자는 이념들 또는 문제들의 변증론이 잠재적으로 변형들의 현행화와 더불어 발생한다.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는 '근거지움' 또는 근거-놓기에 관한 '생산적 논리학'을 논하는데, 이는 존재에 관한 질문을 제기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특징지어진다. '생산적 논리학'이란 그의 존재론의 진화를 이끈다. 이것은 로트망에게 중요시되는 하이데거적 초월성의 핵심 의미를 드러내며, 단지 말해지기만 하는 기존에 수립된 개념적 체제나 의미론 그리고 통사론적 질서들의 위반들의 본성을 명확히 한다. '생산적 논리학'에 관한 하이데거의 언급들의 맥락에서, 그는 학문(science)의 두 가지 양상을 나눈다. 하나는 '실증적' 학문이며, 이것은 내가 '근원적'(radical) 학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근거지움에 관한 생산적 논리학은 이 근원적 학문 안에서 표명된다.      



하이데거의 생각에, 모든 학문은 어떤 주제적 사물/사태(subject matter, Sachgebiet, 사태영역)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자연, 영혼 또는 국가가 그것이다. 이 경우에, 학문은 어떤 존재적 학문이거나 존재자의 존재, 즉 근본존재론에 속하는 학문이거나이다(Heidegger 2006: 9/1962: 29). 나는 때때로 어떤 학문에 의해 한계지어지는 어떤 영역을 '문제적 장'이라고 부를 것이다. 각각의 학문은 일련의 '근본개념들'(Grundbegriffe)을 발생시키고, 이것은 그 주제적 사물/사태에 관한 근본구성틀(Grundverfassung), 즉 그것의 문제적 장의 근본구성틀을 드러낸다. 심리학의 한 분야로서 정신분석은 이를테면 쾌락 원리, 현실 원리 , 이드, 에고 그리고 수퍼에고라는 근본개념들이 영혼의 근본구성틀을 드러내기 위해 제안된다. 만약 근본개념들이 어떤 주제적 사물/사태(사태영역)의 가장 근본적인 표명으로 기여한다면, 그것들은 마찬가지로 보다 파생적인 개념들과 학문 내의 기제들을 위한 근거로서도 작동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심리학적 착란의 정의와 치료적 실천의 용어들이 그것이다. 실증 학문은 과학적 탐구와 그것의 실천적 응용이다. 이때 응용은 과학의 근본개념들이 공리적 역할을 떠맡을 때, 의심의 여지가 없을 때, 그리고 그 전문가들에게 거의 명철할 때 수행된다. 실증 과학에서, 탐구는 문제적 장과 일련의 근본개념들에 의해 기술되는 논리 안에서 수행되며, 이 근본개념들은 그 자체로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들이다.     


반대로, 과학의 근원적 작동에서, 그 주제적 문제에 관한 근본구성틀은 문제화되며, 그 근본개념들의 재-평가와 근거지움 또는 근거-놓기[정초-놓기, ground-laying]의 작동을 강제하게 된다. 여기서 과학의 근본개념들은 확실하게 문제화되며, 그 공리적 위상을 상실하고, 따라서 그것이 근거하는 논리는 합법적인(즉, 규제적인) 실증적 작동의 척도로서의 기능을 더 이상 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무의식의 본성을 문제화하면, 그리고 그것이 어떤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이것은 즉시 정식분석적 심리학의 용어들과 실천의 재절합을 촉발하게 된다. 이러한 분열 양상은 들뢰즈적 의미에서 현행적 사건의 한 예로서 취해질 수 있다. 그와 같은 사건은 하이데거의 용어로 하자면, 과학적 근본개념의 수정이며, 그 주제적 문제의 근본구성틀에 대해 보다 적절한(appropriate [eigentliche])  생각을 부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제 차례가 되면 이것은 그것 위에 구축된 실증 과학의 장을 근본적으로 재형상화한다. 근거-놓기에 관한 근원적인 과학적 움직임은 생산적 논리학(produktive Logik)을 가동한다. 즉 이것은 보다 원초적인 근거를 향해 침투하며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근본개념을 모색하는 것이다. 중요하게도 그러한 움직임에 따라 근거-놓기는 잔존하는 근본개념을 초월하여 친숙한 주제적 문제의 원초적 근거를 향해 가는데, 이것이 하이데거가 ‘초월’이라고 부르는 운동의 예이다. 바로 로트망에게 관건적인 것이 이것이다.     


어떤 과학은 실증적인 것으로부터 근원적인 양상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반면, 하이데거의 생각에 [이와는 다른] 존재적 과학(ontic science)은 그것의 주제적 문제에 대한 근본구성틀에 관해 충분한 고려를 제공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와 같은 고려는 그 주제적 문제를 구성하는 존재자의 존재에 관한 합당한 이해를 요구하며, 이것은 바로 근본 존재론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근본존재론의 주제적 문제가, 존재자가 존재하도록 하는 근거의 한 부분으로서의 존재이기 때문에, 또는 존재자의 존재이기 때문에, 정의의 따른 근본 존재론은 모든 존재적 과학의 근본개념을 문제화하며, 그것들을 어떤 근원적인 양상으로 몰아 간다. 다른 말로, 존재적 과학들과 관련하여 근본 존재론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근원적 과학인 것이다.      

 

근본 존재론은, 이를 테면 그것이 존재-신론(onto-theology)에 기여할 때처럼, 손쉽게 망가질 수 있다. 이것을 피하려면, 근본 존재론의 시야와 방법론이 합당하게 수립되어야 한다.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가 어떤 존재론(사유와 존재 간의 내적 관계를 함축하고 있는)의 가능 조건과 그것이 그 자신의 것에 대해 차별적인 접근을 가지는 존재를 구성하기 때문에, 근본 존재론을 위한 필수적인 활동 무대는 그 자신의 실존에 속하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해 하이데거의 근본 존재론은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으로서 수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성찰은 여기서 하이데거적 존재론에서 존재의 문제틀에 소가는 어떤 생산적, 심층적 논리를 포함한다. 하이데거에게, 현존재가 요청하는 실존은 부분적으로 질문의 작동에 의해 구성된다. 결론적으로 그 작동이 수행되는 매 계기는 현존재의 실존을 변조한다(modulate). 이것은 어떤 특정한 계기에 주어지는 것에 대한 이해를 뛰어넘는 그러한 실존의 차원을 운영한다. 존재의 문제틀 안에서,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으로 틀지워짐으로써, 탐구되는 주제적 문제는 부분적으로 탈은폐되지만, 동시에 그것의 주어진 사항으로부터 퇴거한다. 1930년대에 하이데거는 ‘탈-근거’(Ab-grund) 또는 ‘심층 근거’(abyssal ground)에 관한 그의 문제틀의 이 차원을 형상화하며, 존재론은 이러한 -근거의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         


존재의 문제틀에 속하는 심층 논리는 존재론의 기획을 배제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것은 근본존재론을 주어진 존재와 관련하여 점차적으로 보다 잘 근거지워지는 어떤 계속되는 기획으로 만든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이데거는 이 심층논리를 운용하면서 근거-놓기의 생산적 논리의 방식에 따라 그러한 실존을 구성하는 구조들의 더 심화된 원초적 사항들에 관련된 현존재에 있어서 일련의 실존적 고려를 수행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기서 실존론적 분석이 현존재의 존재로 탐구해 들어가는 반면, 현존재는 어떤 존재, 즉 그것의 실존이 존재론적이고 존재적인 목록들을 포함하는 그 존재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주9] 탈은폐된 존재론적 구조들은 보다 파생적인 존재적 측면들을 존재하게 하는 근거로서 기여한다. 근본 존재론 안에서, 현존재가 근거-놓기의 생산적 논리를 존재의 문제들에 속한 심층 논리를 표명하기 위해 도구화할 때, 위에서 언급된 근원적 과학과 연관된 초월적 운동은 현존재의 실존과 결합된다.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는 일련의 목록들(이를테면 세계-내-존재의 논리 또는 현존재의 논리와 관련된 목록들) 안에서 초월성과 연관된 현존재의 실존에 관한 동력학을 기술한다. 하지만 현존재의 근본 존재론적 초월은 로트망의 하이데거 분석에서 어떤 특별히 중요한 목록을 구성한다. 여기서 현존재는 존재의 심층적 차원을 따라가고, 그것을 표명하기 위한 근본개념들을 전개하고, 그 기초 위에 그 존재의 확장된 차원을 개변하는 것이다. 즉 근본 존재론의 풍부한 문제틀의 장을 개조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계속적인 근원적 과학의 운동, 즉 그것에 의해 하이데거가 존재론이 진화하는 바다.  

     


III. 변증론적 이념/문제들에 관한 로트망의 이론

최근 알베르 로트망의 저서에 대한 철학적 관심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두 가지 연관된 원인들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들뢰즈의 존재론에서 수학의 역할에 관한 연구의 갈래로 인한 것이며(로트망은 이와 연관해서 들뢰즈에게 핵심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둘째로 프랑스 과학철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맑시즘, 정신분석 이론에서 발전된 20세기 중반의 형식주의(formalisms)이다.[주10] 후자의 모든 것은 로트망이 중요한 대담자로 봤던 장 카바이예(Jean Cavaillès)의 저작으로부터 이론적 계보를 이끌어 냈다.[주11]     


로트망이 들뢰즈의 수학에 대한 적합한 관련에 있어서 중요한 참조지점이었던 한에서, 들뢰즈에게 가장 심대한 영향을 주었던 것은 바로 로트망의 메타-수학(그의 수학에 관한 형이상학 또는 존재론)이었다. 로트망의 메타수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증론적인 이념 또는 문제들에 관한 이론 그리고 그것들이 수학이론과 가지는 관계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킨 하이데거의 초기 존재론의 특성들을 채택한 것이다. 이것은 그러한 변증론적 이념이나 문제의 해들을 구성한다. 이 이론이 들뢰즈가 자신의 철학에 도입한 로트망의 연구 중 중심적인 요소를 형성한다. 하지만 『차이와 반복』에서 로트망에 대해 논하는 부분에서, 들뢰즈는 이런 하이데거적 채택사항들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이데거에 대한 로트망의 최초의 연관은 「새로운 탐구」에서 발견된다. 거기서 로트망이 중점을 두는 텍스트는 앙리 코뱅이 1938년에 프랑스어로 번역한 하이데거의 1928년 논문, 「근거의 본질에 관하여」(‘Vom Wesen des Grundes’)이다. 『존재와 시간』은 그저 지나가면서 언급할 뿐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번역 텍스트는 코뱅에 의해 편집된 하이데거의 텍스트 선집으로서,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로트망의 하이데거는 전체적으로 초기 하이데거이며, 거기에는 하이데거가 명백하게 언어적 전회(Kehre)를 시작했던 1930년 동안에 진행된 변신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자각도 없다. 그에게 특별한 개념적 중요성을 가지는 것은 하이데거의 존재와 존재자 간의 존재론적 차이, 즉 존재론적 진리와 존재적 진리 간의 구분에 조응하는 그것이다. 이는 초월에 관한 하이데거의 구별 관념임과 동시에 근거 짓기에 있어서 방법론적이고 존재론적인 작업방식이기도 하다.     


아래에거 나는 로트망이 하이데거를 활용하는 맥락을 규정하는 그의 메타수학적 이론의 핵심 요소들을 재구성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로트망이 변증론적 이념들/문제들에 관한 수학 이론의 관계성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하이데거적 존재론의 특성을 채택하는 방식에 관해 특별히 집중하면서, 그의 하이데거 관련성을 분석해 낼 것이다. 이에 따르면 수학 이론은 이러한 관련성 안에서 생성되며, 로트망이 주장하고자 한 것이란 변증론적 이념/문제들이 수학에 있어서 초월적이며 동시에 내재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나는, 앞서 주목한 들뢰즈의 이념들/문제들 이론의 핵심에 해당되는 로트망과 하이데거에 관한 다섯 개의 주장을 조망할 것이다.      


#수학 이론들 그리고 변증론적 이념개념들에 관한 로트망의 구분(들뢰즈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주장을 명확히 함)

들뢰즈에 따르면, 로트망에서 이념들/문제들은 해와는 종적으로 다르며, 해와 더불어 사라지지 않는다. 이 입장은 실재에 대한 로트망의 수학적 형이상학에서 지속된다(「수학과 변증론」(Lautman 2011b: 197)). 시뮬라크르의 체계 또는 실재성에 있어서 현행성(the actual)과 잠재성(the virtual) 간의 들뢰즈적 구별은 로트망의 이 구별의 반복이다. 여타의 역사적 참조점들과 더불어 로트망의 구별은 또한 들뢰즈의 변증론적인 이념들/문제들에 관한 기술에 있어서 최초의 의미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로트망에게 ‘수학’은 이런저런 ‘유효한 수학 이론들’(이를테면, 집합이론, 대수, 해석학적 수론, 그리고 미분학)과 그러한 이론의 실재적 적용(예를들어, 하나의 수학 명제를 다른 것으로 번역하는데 집합이론의 정의들을 응용하기)을 지칭한다(Lautman 2011b: 197).[주12] 이러한 개념의 의미는 실증 학문에 관한 하이데거의 생각과 조응하는데, 왜냐하면 그와 같은 수학이 문제화되지 않는 기초 공리들이나 정의들에 기반하여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수학’은 수학 이론이 그러한 이론들을 조직하고, 그 문제들에 관해 통찰하며, 그러한 통찰에 기반하여 변화를 도모하는 기초 문제들을 결합하는 방식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 의미는 하이데거의 근원적 학문(radical science)에 관한 생각에 조응한다. [주13]   

  

변증론은 수학과는 구분되는 실재성의 목록이다. 변증론에 대한 로트망의 이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가 어째서 형이상학 체계나 전체 존재론의 한 부분으로서, 메타 수학(다른 말로, 수학의 형이상학)에 의해 수학이 필연적으로 보완되어야 한다고 믿는지 이해해야 한다. 로트망은 “형이상학과 수학의 친교는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필수적이다”(Lautman 2011b: 197)라고 말한다. 그는 특히 힐베르트의 메타수학과 메타수학적 목적들을 위한 하이데거 존재론의 활용에 관심을 가진다. 로트망의 힐베르트 해석에 따르면, 메타 수학은 필수적인데, 왜냐하면 어떤 적절하게 형식화된 수학 이론은 “그 자체 그것의 내적 일관성에 관한 증명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Lautman 2011c: 89). 따라서 “수학은 스스로를 하나의 대상으로 형식화하는 메타 수학을 더해야 하고, 일관성과 완전성이라는 이중의 관점에서 그것을 연구해야 한다”(즉, 그것의 공리들에 의해 그 시스템이 내적으로 일관되고 모든 대수적 연산들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려고 시도할 만한 방식에 따라 어떤 형식화된 수학적 체계를 연구해야 한다.)(Lautman 2011c: 89–90).[주14]  그러나 이 경우에 일관성과 완전성은 오직 “이 탐구가 지향되는 바, 이념[들]”이다(Lautman 2011c: 90). 즉 수학 이론과 관련하여 구조적으로 문제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이론 그 자체 안에서 결코 충분히 증명될 수 없는 것이다. 뒤피(Duffy)가 강조했던 것처럼, 여기서 로트망의 말은 “어떤 일관된 형식적 체계도 그 자신의 공리계를 통해 그 완결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논증한 괴델의 두 번째 불완전성 정리에 대한 참조를 함축한다”(Duffy 2013: 12).[주15] 로트망 메타수학의 요점은 일관성과 완전성의 이념이 사실상 어떤 형식화된 이론의 구성을 지배할 것이고, 그것들은 형식적으로 이론 그 자체에 있어서 증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로트망은 이러한 이념들, 또는 그보다 어떻게 어떤 일관되고 완전한 이론을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취하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수학적인 이론들을 조직하는 기초 문제들에 해당되는 하나의 사례이다. 그의 관점에는 다른 많은 것들도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변하거나 오랫동안 배제될 수 있다. 메타수학은 수학 이론들 자체를 연구하기도 하고, 그 이론들을 조직화하는 기초 문제들과 다툴 능력에 대해 연구하기도 한다.(예컨대 그것은 다음과 같이 물을 수 있다. 우리는 ‘주어진 입방체의 체적의 두배인 입방체’를 구성할 수 있는가? 또는 집합이론은 어떤 일관되고 완전한 수학 언어를 제공할 수 있는가?)(Smith 2006: 148).     


이런 구상에서, 수학 이론들의 장은 역동적이고, 파편화 되어 있지만 기초 문제들 또는 추상적 이념들을 그 역사에 있어서 주어진 계기에 능동적인 것으로 표명하기 위한 영속적인 노고 안에서 진화한다. 가끔 이러한 파편들이 함께 이질적으로 보이는 기초 문제들이나 이론적 구성들 사이에 그려진 예전의 은폐된 연결들을 허용한다.      

일단 비교하자면, 부분적인 결론은, 여전히 유사한 배치들이 동일한 주제의 통일성 아래에서 조직화되며, 그것들의 움직임 안에서 어떤 추상적 이념들, 즉 우리가 변증론적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한 그 이념들 사이에서 형태를 갖추는 것으로 보이는 어떤 연결을 허용한다.(Lautman 2011c: 91)     


중요한 사항이 메타수학이 수학에 대한 필수적인 부가물이라는 그 사실로부터 따라 나온다. 즉 어떤 수학 이론이라도 그것의 항들[개념들, terms] 안에 설명 가능한 것을 초과하는 실재의 측면들과의 고유한 구조적 참조지점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로트망은 “수학의 발전에서, [그와 같은] 실재는 수리 철학이 인지하고 기술하는 그것의 기능으로서 긍정된다” (Lautman 1977: 23, qtd in Duffy 2009: 356).[주16] 로트망에게, 이것은 수학 이론의 필연적 불완전성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이상이다. 수학 이론이 분명히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초문제들은 그러한 초과 실재의 장에 놓여 있다. 그리고 메타 수학의 개념적 틀거리 안에서조차, 이러한 문제들은 충분히 규정되지 않거나, 심지어 필연적으로 잘 정의되거나 잘 이해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인식론적으로 그리고 존재론적으로 그 자체 문제적인 실재성의 구조들이다. 이 실재성은 로트망이 ‘변증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들뢰즈의 변증론 개념이 칸트와 – 로트망과 같이 – 플라톤으로부터 이끌어져 나오는 것과 반대로, 로트망의 개념이 도입되는 바는 들뢰즈가 다음과 같이 쓸 때 드러난다.      


‘변증론’이라는 말로써, 우리는 개념의 동일성 안에서 그것들을 일치시키는 대립하는 재현들의 순환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해에 관한 적합하게 수학적인 요소와 구별되어질 만한 것인 한에서 문제 요소를 의미한다.(Deleuze 1993: 231/1994: 178)   



변증론의 본성에 관한 들뢰즈의 개념은 직접적으로 로트망의 그것에서 도출되며, 이러한 실재성의 본질적으로 문제적인 차원, 변증론에 대한 해로서 작동하는 실재성의 차원과 구분되는 그 차원을 위한 개념이다. 

     

이어지는 진술에서, 로트망은 변증론이라는 어휘를 위에서 언급한 것, 즉 수학 이론의 파편화된 노선이 자주 어떤 애매한 문제적 구조의 상이한 측면들을 설명하는 와중에 언급된 사항을 재론하기 위해 사용한다.   

     

변증론의 이념적 구조가 실재화될 수 있다는 하나의 예시로서, 수학이 존재한다는 것은 필연적이지만, 특정한 변증론적 구조에 조응하는 그 예시들이 특정한 종류에 속한다는 것은 필연적이지 않다. 반대로 가장 자주 발생하는 것은 동일한 구조를 조직화하는 것이 상이한 이론들에서 주장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특수한 수학적 구조들과의 근친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구조들은 그것이 연루된 그러한 일반 변증론의 구조를 반성한다 (Lautman 2011b: 207).     


달리 말해 하나의 이론 또는 다른 이론, 즉 상호간의 관계에서 파편화된 이론의 특수화된 개념들에 문제적인 변증론적 구조기 제한되어 있다 해도, 그러한 변증론적 구조의 논리는 이론들을 조직화하며, 이론들의 근친성이 명백하지 않거나, 잘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그와 같은 구조적 근친성들을 드러낸다. 때때로 여기에 기반하여, 어떤 연결이 이론들 사이에 만들어질 것이고, 문제적 구조의 부분은 수학적 영역들 안에 펼쳐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수학 이론의 적합한 운동은 수학에 관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어떤 추상 이념들을 지지하는 연결들의 도식을 펼쳐 놓는다”(Lautman 2011d: 28). 스미스(Smith)가 강조하는 좋은 예는 고전 미적분법의 초기에 발견된다.     


[라이프니츠와 뉴턴 이전에] 미분학은 탄젠트의 문제를 두고 고심했다(주어진 곡선에 대한 탄젠트 선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반면 적분학은 구적법의 문제를 두고 고심했다(주어진 곡선 안의 영역이 어떻게 결정되는가?). 라이프니트와 뉴턴의 위대함은 이 두 문제들 간의 밀접한 연관성을 인식했다는 점이다(영역들을 발견하는 문제는 곡선에 대한 탄젠트를 결정하는 문제의 역이다). 그리고 그들은 둘 사이를 연결하고 해결하기 위한 어떤 상징의 사용을 발전시켰다(Smith 2006: 152).       


 들뢰즈에 의하면, 뉴턴과 라이프니츠 이전의 미적분학의 불연속 상태와 흡사한 방식에 따르면, 현행성의 수준에서 해들로 구성되는 것은 불연속성, 즉 현행화-시뮬라크르적 존재자들인 사물/사태들 간의 불연속성에 의해 특성화된다. 이런 불연속성은 수학 이론들의 파편적 위상과 관련하여 정확하게 로트망에게서 발견된다. 들뢰즈에게 불연속적인 시뮬라크르적 존재자의 현행성에서의 배열[형상화]은 한편으로는 변증론적인 이념들 또는 문제들에 의해 결정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해의 현행적 장 안에서 차이들을 개체화함으로써, 즉 현행적 사건들로 결정된다. 어떤 변형이 현행성의 장에 속한 배열 안에서 발생할 때, 현행적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위에 인용된 예문은 이것을 훌륭하게 설명한다. 뉴턴과 라이프니츠 이전에 미분법와 적분법은 해로서, 그것의 현행적 작동의 불연속적 장들을 정의하는 변증론적 이념이나 문제에 관한 상이한 측면들을 위해 작동했다. 뉴턴/라이프니츠 사건과 더불어, 현행성의 장 안에서 새로운 결합이 생산된다(발견적 장의 문제가 곡선에 대한 탄젠트 결정의 역이라는 규칙). 그리고 이것이 장을 재형성한다. 현행적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변증론의 본성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것은 로트망의 메타 수학적 연구의 중심 목표다. 확실히 변증론은 하나의 방법론이 아니라, 실재성의 요건이다(그것의 존재론적 위상이 과학적 방법론을 위한 직접적 함축들을 가진다 하더라도 그러하다). 변증론은 “수학에 비해 우월하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수학 이론의 범역을 넘어선다(Lautman 2011b: 199). 형이상학적으로 실재한다 해도, 그것은 이념이다. 사실상 변증론은 수학의 ‘실재’이거나 페르난도 잘라미아가 논하듯이, “수학적 실재”이다(Lautman 2011c: 89; Zalamea 2011: xxiii). 이것은 두 종류의 것에 의해 채워지는데, 하나는 ‘변증론적 개념들(notions)’이고 다른 하나는 ‘변증론적 이념들’이다. 이것들이 그 구조를 구성한다 (Lautman 2011b: 204, 199).    

 

변증론적 개념들은 가장 폭넓은 자연의 반정립적, 상관적 개념들의 짝들이다. 이것은 변증론적 사항을 구조화하는 기초적인 – 비록 변화한다 해도 – 긴장들을 구성한다. 로트망이 제시하는 몇몇 예들은 다음과 같다. “전체와 부분, 상황적 속성들과 내재적 속성들, 기초 영역과 그러한 영역들 위에 정의되는 실체들(entities), 형식 체계와 그것의 실현들”(Lautman 2011b: 204). 여기에 다음이 부가될 수 있다. “유한 대 무한”, “불연속과 연속”, “국지성 대 총체성”, “대수 대 해석학”, “소통적인 것 대 비소통적인 것 등등”(Dieudonné 2011: xl). 로트망의 관점은 그러한 대립들을 절대적인 이율배반으로 취급하는 역사적 경향을 거부한다. 장 디오도네(Jean Dieudonné)가 강조한 바에 따르면, 그러한 오류는 변증론적 개념들에 “보다 근원적인 관계들을 가리는 표면적인 외양”을 부여한다(Dieudonné 2011: xli). 그는 부언하길, “1940년 이래 이러한 가설적 대립들이 어떤 동일한 구조 안에서 실재적으로 긴장의 극들이라는 것, 가장 주목할 만한 진보가 이 긴장들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잘 인지되어 왔다”(Dieudonné 2011: xli). 긴장의 극들(poles)로서, 이러한 개념들은 들뢰즈의 잠재적 이념들을 부분적으로 형성하는 전개체적인 특이성을 예견하는 것이다.     


로트망에게서, 변증론적 개념들은 수학적 실재의 구조에 있어서 그 부분을 구성하지만, 수학적 실재는 수학과 메타수학과 관련하여 접근되는 형이상학적이거나 존재론적인 실재다. 변증론적 개념들은 단순히 요소들이거나 수학 또는 심지어 메타 수학 이론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들은 실재성의 구조를 구성하는 바, 특별히 실재성의 변증론적 사항에 속하는 것이다.     



변증론적 개념들과 구분하여, 로트망의 변증론적 이념들은 예비적으로 두 방향에서 특성화될 수 있다. 한편으로 개념들의 이념들의 관계에 관해, “이념들은 변증론적 개념들 사이의 가능한 관계를 예견한다”(Lautman 2011b: 204). 즉 이념들은 변증론적 개념들 사이의 간격을 횡단하는, 또는 개념들의 극들(poles)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가능한 구조적 도식의 장들이다(일찍이 긴 구절을 인용하면서, 들뢰즈는 이러한 관계들을 이념적 ‘연결’(liasions)이라고 불렀다. 그의 존재론은 이것을 보다 기술적으로 ‘미분적 관계’라고 정의한다.(Deleuze 1993: 212/1994: 163)) 잘라미아는 이에 대해 “이념은 [개념들 간의] 양극성(polarity)에 관한 부분적인 해법이다”라고 말한다(Zalamea 2011: xxxi). 이를테면 연속성 대 불연속성 개념에 있어서, 현대 수학은 “불연속성의 완결로서의 연속성(칸토르적 입장)”이라는 이념을 내세운다(Zalamea 2011: xxxi).    

 

다른 한편, 수학 이론에 대한 이념들의 관계에서, 이념들은 “그것에 따라 효과적인 이론들이 조직화되는 구조적 도식들”로 기능하는 ‘문제들’이다(Lautman 2011b: 205, 199). 이와 비슷하게, 들뢰즈의 사유에서도, 문제들은 그것이 구체화되는 현행적 관계들에 내재하는 이념적 관계 또는 연결들(liaisons)이다. 여기서 로트망의 생각은 실재의 한 영역이 다른 것을 지배하거나 조직화한다는 것으로서, 어떤 플라톤주의를 암시하고 있다. 사실상 로트망에게 ‘변증론적 이념이란 개념은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 즉 그의 수리 철학을 규정하는 플라톤주의를 참조해서 이끌어내어진다. 이것은 수학 이론에 대한 이념들의 관련성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하다. 나는 곧 이리로 돌아올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로트망이 그의 이념 개념을 표준적인 플라톤주의 판본에서 발견된 것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취급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우리는 그 수학적 실체들이 단지 복사본들일 뿐인 모델들을 이념들에 따라 이해하지 않는다”(Lautman 2011b: 199). 달리 말해 수학 이론들은 이념들에 대해 모방적이거나 재현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론들은 그것들에 의해 조직화된다. 이러한 조직화가 효과화되는 방식은 로트망이 하이데거적 존재론을 이용하여 해결하려고 한 중심 문제들 중의 하나이다.     


로트망에 의하면 이념들은 확장적인 수학 이론들에 의해 표현될 수 있는 장들을 넘치고, 초과하거나 초월하는 동시에 바로 그러한 이론들을 구조화한다. 이념들은 그것들에 대한 응답에서 생성되는 해들과 더불어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변증론적 이념들은 순수하게 문제적이다”(Alunni 2006: 70). 하이데거의 개념에서, 그것들은 수학 이론의 근본개념이 표현하기 위해 작업하는 주제적 문제를 구성한다. 수학 이론을 구별하는 것 – 또는 수학의 역사에서 어떤 시기의 수학의 장을 구별하는 것 – 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들을 구성한다. 하지만, 그것들의 순수하게 문제적인 특성 때문에, 변증론적 이념들은 그것들과 관련하여 생성된 이론들 또는 해들을 초과한다. 달리 말하자면, 수학 이론은 변증론적 이념들을 드러내는 바, 그것은 수학이 사유하는 실재를 구성한다. 하지만 변증론적 이념들은 수학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변증론은 수학의 부분이 아니다”(Lautman 2011b: 204).       


수학이 그 자신의 실재성을 초과하는 실재성과 그것을 구성하는 실재성과의 필연적인 연관성을 포함하기 때문에, 수학은 개념적으로 충실한 존재론을 제공할 수 없다. 이것은 메타 수학의 필요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기서 이론들은 그것을 조직화하는 문제들을 만족시키는 이론의 충실성에 대한 것일 뿐 아니라, 변증론 자체의 본성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로트망의 분석에서, 하이데거의 존재론은 그의 수리철학과 일관될 뿐 아니라, 이 메타수학적 시스템의 보완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이데거는 로트망에게 변증론의 존재론적 위상을 정의하는 원천을 부여하고, 중요하게도, 변증론에 대한 수학 이론의 관계를 표명할 근거를 주기도 한다.      


들뢰즈는 이 관계를 “문제적 (변증론적) 이념을 구성하는 이념적 연결들이 수학 이론에 의해 구성되고, 해의 형태로 문제 안으로 넘어가는 실재적 관계들 안에 육화된다”(Deleuze 1993: 232/1994: 179)고 이해한다. 이와 유사하게 로트망의 입장은 “수학의 내적 실재성은 (...) 그것들[실재적 관계들]을 지배하는 이런 변증론의 이념들에 대한 참여에 놓여 있으며” 또한 ‘수학 안에서’ 이 변증론의 ‘이념적 관계들’은 ‘구체적 방식으로 실재화된다’(Lautman 2011b: 199). 달리 말해, 수학은 실재에 대한 그것의 경로를 변증론과 그것의 이념 또는 문제들과 연관되는 방식으로 획득하는 것이다. 로트망은 다음과 같이 그것을 다시 요약한다. “실재성은 수학 이론에 고유한 것으로서, 수학에 관해 지배적인 이념적 실재성에 대한 그것의 참여로부터 비롯되며, 오직 그것을 통해서만 인식가능하다”(Lautman 2011d: 30). 둘이나 그 이상의 실재성의 영역들 간의 구별을 정립하는 이론과 같이, 그것이 제기하는 기초 문제는 영역들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법에 속한다(에피쿠로스적 원자론과 클리나멘, 심신 문제, 세 가지 다종적 실체들이 존재한다는 스피노자의 데카르트적 주장에 대한 반론 등등을 참조하라). 로트망이 제기한 바에 따르면, “실재의 영역과 탐구 방법들 간의 이러한 일치성에 대한 연구를 전반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과학 철학은 관심의 범위를 상당히 벗어나게 될 것이다”(Lautman 2011e: 9).      

           

넓은 범위에서, 로트망의 이론은, 비록 수학에 대한 변증론의 환원불가능성과 그것들의 차이를 위한 존재론적 필연성이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마찬가지로 어떤 존재론적 연속성, 즉 그것에 따라 수학이 구조적으로 변증론에 의해 형성되는 바도 존재한다는 것을 수용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존재와 존재자 간의 존재론적 차이라는 하이데거 존재론의 개념에 기반한 변증론과 수학 사이의 구별을 파악한다. 보다 특별히 그는 변증론에 대한 수학의 관계가 존재적인 것(존재자로서의 존재자에 속한 바의 것)과 존재론적인 것(존재자의 존재에 속한 바의 것)의 관계와 중첩된다는 것을 논증한다.[주17] 『차이와 반복』에서 변증론적 이념/문제들과 해들에 관한 들뢰즈의 존재론이 로트망의 그것을 채택하기 때문에, 이 사실은 들뢰즈의 구조에 대한 하이데거적 영향의 명징한 선을 증명하는 것이다.[주18]    


수학에 대한 변증론의 관계를 특성화하기 위해 로트망이 사용하는 중심 개념은 ‘지배’(domination)인데, 이것은 뒤피가 ‘통괄’(governing) 또는 가끔은 ‘지배하는’(dominating)으로 번역한 단어이다(Lautman 2011b: 199). 로트망은 그 관계의 본성과 “이러한 변증론의 이념들이 필연적으로 결과적인 수학 이론들의 발생으로 확장되는 방식”(Lautman 2011b: 197)을 설명하기 위해 하이데거의 존재적-존재론적 관계에 관한 여러 관점들을 채용한다. 전자의 특별히 중요한 요소는 “변증론으로부터 수학의 발생을 기술하는 것”이다(Lautman 2011b: 206). 이것은 변증론에 대한 수학의 참여와 수학이 구체적으로 이념적 관계들을 실현하거나 육화하는 방법을 설명하게 된다. 여기서 핵심은 변증론적 이념들이 수학에 대해 초월적이면서 내재적이라는 로트망의 입장이다. 들뢰즈는, 이념/문제들과 사건들 둘 모두와 관련하여 로트망 이론의 중심 요소를 채택한다. 들뢰즈가 이 사항들에 대해 말한 바는, “문제는 그 해들과 관련해서 초월적이면서 내재적”이며 “[사건들의] 이념적 계열들은 실재적인 것[또는 사건의 현행적 계열들]과의 관계에서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인 이중적 속성을 향유한다”는 것이다(Deleuze 1993: 212/1994: 163; 1993: 244/1994: 189).       

    


#지배적인 관계에 관한 로트망의 초월적 개념(들뢰즈의 세 번째 주장을 명확히 함)

로트망은 “변증론과 수학 사이를 (...) 지배하는 관계의 초월적 개념”에 대해 논증하면서, 변증론적 이념들이 수학과 관련하여 초월적이면서 내재적이라는 점을 이끌어 낸다(Lautman 2011b: 200). 그는 ‘초월론적’, ‘초월적’ 그리고 ‘내재적’이라는 단어를 특별히 하이데거적 의미에서 사용한다. 이전에 나는 ‘초월’이라는 핵심적 의미를 하이데거의 근본개념에 관한 생산적 논리학의 기초-존재론적 운동와 연관해서 지목했다. 나는 이것을 확장하고 ‘내재성’과 ‘초월성’의 의미를 이어지는 두 절에서 상술할 것이다. 그것은 로트망의 수학적 플라톤주의로 되돌아감으로써 초월성 개념을 위치지우는 것을 돕게 된다.     


첫째, 분명히 드러나듯이 하이데거적인 기초-존재론적 초월은 내가 ‘형이상학적 초월’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것과 구분되어야 한다. 철학 체계는, 만약 그것이 플라톤적 형이상학(지성의 형식들 또는 이념들은 형이상학적으로 감각적 흔적들의 영역과 관련하여 초월적이다)의 표준 해석인 바, 실재적으로 또는 실체적으로 우리 자신의 것과 구분된다면, 형이상학적 초월을 정립한다. 로트망의 철학은 어떤 형이상학적 초월도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학이 연루되고, 형이상학적으로 실재적인 변증론에 의해 지배되는 그의 입장은 부분적으로 수학적 플라톤주의의 판본을 초래하는 초월적 이념들에 의해 구성된다. 하지만 로트망의 논증에서 이것은 하이데거주의와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나며, 들뢰즈에게 그것은 전복된 플라톤주의와 조응되는 것이다. 수학적 플라톤주의의 표준적 형식은 “그것의 실존이 우리와 우리의 언어, 사유 그리고 실천들과 독립적인 추상적인 수학적 대상들이 존재한다”는 이념과 일치한다. 이 대상은 ‘수와 집합’과 같은 것이며, “그러므로 수학적 진리는 발견되는 것이지 발명되는 것이 아니다”(Linnebo 2013). 로트망의 정의에서, 이러한 종류의 표준적인 수학적 플라톤주의는 “비록 그 실체가 유한한 단계들 안에서 구성될 수 없다 하더라도, 수학적 실체(entity)의 실존이 보증되게 하는 어떤 철학”(Lautman 2011c: 190) 안에서 발견된다. 수학적 플라톤주의는 수학적 유명론과 대립한다. 즉 그와 같은 대상들과 진리들은 우리 또는 우리의 문화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그것들로부터 나온다.  

    

로트망은 유명론과 표준적인 수학적 플라톤주의 둘 모두를 거부한다. 그는 그 플라톤주의가 오직 ‘플라톤주의의 표층적 지식’만을 제공한다고 간주한다(Lautman 2011c: 190). 대신에 그는 그가 ‘현재 플라톤 주석가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해석을 채택하는데, 그들은 “이데아들이 부동이며 지성계로 환원불가능한 본질이 아니라, 그것들의 도착을 관장하는 어떤 우월한 변증론의 도식에 따라 서로 연관된다”고 주장한다(Lautman 2011c: 190)[주19] 로트망의 플라톤주의에서는, 수나 집합과 같은 수학적 대상들이 수학자와 그들의 문화들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되는 것이 아니라, 변증론과 그것의 문제들 또는 이념들(즉, 수학이론에서의 비-수학적 대상들)은 형이상학적으로 실재적이거나 존재론적으로 그것들을 표명하는 수학 이론들에 선행한다. 이것은 변증론에 대한 어떤 실재론을 구성함에도 불구하고, 표준적인 철학적 플라톤주의는 아니다. 다시 말해 로트망의 존재론은 형이상학적 초월 중 하나가 아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변증론과 수학 간의 지름길’의 형태는 형이상학적 초월에서 발견되는 바, ‘효과적으로 구상될 수 없다’ (Lautman 2011b: 199).[주20]       


이러한 통괄적인(governing)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로트망은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적 초월의 동력학 또는 그 구조를 채택한다. 특히 그는 하이데거가 「근거의 본질에 대하여」에서 제시한 판본에 주목한다. 거기서, 하이데거는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초월이 넘어감(Überstieg)’이며 ‘초월적’(또는 ‘초월하는’)이라는 상관된 개념이 “그와 같은 넘어감을 획득하고 그 넘어감 안에 거주하는 것”이라고 한다(Heidegger 2004a: 137/1998a: 107). 이를테면 현존재의 실존의 구조는 초월적인 바, 그 이유는 그것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넘어가지만, 그 자신 정확히 이 넘거감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에게 ‘초월’은 구성적으로 초월의 구조에 속하는 것을 함축한다. 비록 그 개념이 칸트적 유산과의 연결을 유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여기서 초월론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경험이나 지식의 가능 조건만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하이데거의 입장은 초월이 존재하는 존재자의 존재적 영역(현존재의 존재적 영역을 포함하여)을 활동하게 하는 기초이기 때문에, 초월론적인 것은 초월성이 어떤 존재론적 기초를 구성하는 한에서 초월에 속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다음과 같이 쓴다. “이 개념[초월론적]은 본질적으로 초월적인 것에 속하고, 그와 같은 초월성으로 그것의 내적 가능성을 가지는 모든 것을 명명한다”(Heidegger 2004a: 139/1998a: 109). 로트망은 하이데거의 초월 개념을 재음미하면서 다음과 같이 논한다.      


그것이 그것 바깥에 있는 어떤 실체(entity)를 향해 가기 위해 스스로를 넘어 가는 어떤 것의 본질적인 본성에 속할 때, 이러한 사물은 더 이상 실존하는 것으로 파악됨이 없으며, 그 실체를 향한 주체 너머로 가는 것이므로, 이를 초월이라 한다(Lautman 2011b: 205).     



로트망은 특히 다음과 같은 것에 주목한다. (1) 세계를 향한 현존재의 초월, (2) 존재론적 개시(ontological disclosure)의 초월, 즉 그것의 존재를 구성하는 존재론적 구조들을 향해, ‘근거짓기(Begründung)의 이성적 활동’을 경유한 그 존재적 영역(register) 안에서의 현존재의 초월(Lautman 2006b: 241/2011b: 202).[주21] 그 자신의 저작에서, 이것은 변증론이나 변증론적 이념들을 향한 수학 이론들의 초월성으로 형상화된다.     


루이 르 그랑 고등학교(Lycée Louis le Grand)에서 했던 들뢰즈의 1956-7년 고등사범학교 준비반 강의에 대한 피에르 르페브르(Pierre Lefebvre)의 노트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적혀 있다. 거기서 들뢰즈가 밝힌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세계는 인간 실존의 구조입니다. 이때 세계라는 개념은 더 이상 인간의 존재 방식과 분리될 수 없지요. 이것이 초월 또는 초과함[dépassement, 넘어감]입니다. ‘초월’이라는 용어는 더 이산 세계보다 우월하거나 외적인 어떤 존재를 의미하지 않고, 오직 어떤 실행만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실존은 초월적인 것으로 존속합니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넘어가는 것과 우리가 넘어가는 것에 대한 것을 구분하지요. 초월성은 주체성의 본질이며, 그는 심지어 이 주체성이라는 단어를 초월성으로 대체하기도 하지요(Deleuze 2015: 37).    

 

하이데거의 전 저작에 걸쳐, 초월의 운동은 여러 가지 영역들에서 표명된다. 가장 친숙한 것은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에서 발견된다. 여기서 ‘초월’은, 이를테면 피투성(被投性, thrown projection) 또는 시간성과 관련하여 기술되는 현존재의 구조적 역동성을 함축하는 것이다. 피투성으로서 현존재는 세계, 즉 자신의 통제를 초과하는 조건들(예컨대 역사적, 물질적 그리고 사회-경제적 조건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특유하게는, 성장해 가면서 우리가 만나는 급우들 또는 무릎을 까지게 만드는 어긋난 자전거 체인과 같은 것)에 내던져진 것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조건들은 현존재의 개별적 실존(예를 들어 누군가의 신체에 속하는 특성들과 그것이 그 시대에 기입되는 방식)과의 직접적이고 구성적인 관계를 함축한다. 이와 더불어 이러한 조건들은 부분적으로 현존재의 현사실성(facticity), 즉 현존재의 하나의 구조적 차원을 구성한다. 그 특유한 현사실성이 기초 위에서, 현존재는 그것의 실존과 세계 그리고 중요하게 여기는 기획투사를 해석하고 이해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에 따라 현존재는 스스로 가능성들 또는 세계에 그것의 과제들을 획득할 만한 실행의 경로들을 기획투사한다. 현존재가 기획투사하는 가능성들의 장은 그 실존의 또 다른 구조적 차원을 구성한다. ‘초월’은 지속적인 운동을 함축하는 바, 그것에 따라 현존재는, 세계에 기획투사된 가능성들의 장을 통해 그 현사실성을 넘어 가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현사실성이 뒤에 남겨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존재가 현사실적인 피투성으로서, 그러한 초월의 운동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현존재는 이러한 넘어섬 ‘안에 거주하고’ 그것을 ‘획득한다.’) 가능성들로 진입함으로써, 현존재는 그 현행적인 현사실적 상태를 넘어가고, 어떤 계기에 그것의 현사실성을 변경한다. 즉 일단 현존재의 미래적 장에서의 어떤 가능성이었던 것은 그것의 현사실성 안으로 침전되어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현존재의 자기 자신과 세계에 관한 해석과 이해의 어떤 변조와 제 차례에 와서 그것이 기획투사하는 가능성들의 장의 변조를 강제한다.      


현존재는, 그것이 그 실존의 이전 상태를 너어가는 가능성 안으로 스스로를 넘어 그 자신을 끊임없이 옮겨 놓는 방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초월적이다.[주22] 말할 것도 없이, 하이데거에게 초월이란 주체의 자동적인 의지적 결단의 문제가 아니다. 거기에는 현존재가 존재하지 않고 초월적이지 않을 여지가 전혀 없다. 현존재의 실존은 초월이다. 로트망의 초월 개념이 사용을 이해하기 위해 특히 중요한 것은 내가 2장에서 현존재가 그 자신의 실존의 탐색을 향해 과학적으로 스스로를 정향한다고 논의했던 그러한 운동의 형태다(존재자의 존재를 규명하기 위한 초기 하이데거에게서 방법론적 영역). 이것은 하이데거의 생산적 논리학에서 발견된 초월의 운동을 활성화한다. 이에 따라 근거짓기는 기존에 수립된 기초개념을 넘어 그것들의 주제적 문제의 원초적인 근거를 향해 가면서, 점점 더 잘 근거지워진 그 주제적 문제의 표명들을 획득하게 된다.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서, 지배하는(governing) 관계라는 로트망의 초월 개념은 이 관계의 모든 요소들이 초월의 동력학이나 어떤 진행중인 운동으로 수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이끌어 낸다. (1) 변증론적 이념들과 개념들(이것들은 초월적이다)은, 그것에 대한 형이상학적 초월로 존재하지 않으면서 수학 이론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수학은 변증론에 대한(즉 그것에 대한 참여로서) 어떤 고유한 구조적이고 구성적인 참조점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2) 수학 이론의 생명력이 발견되는 근원적인 운동에서, 수학은 스스로를 변증론을 행야 넘어서는데, 이것 없이는 수학이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3) 이 운동에서 수학은 변증론의 새로운 측면들을 표면하는데, 이는 수학 이론의 특정 요소들이 개정되는 기반이 된다.    

  


로트망에게, 변증론과 수학 사이의 지배하는 관계에 관한 초월론적 고려는, 형이상학적 초월에 기대지 않는 그것들의 차이와 동일시 없는 그것들의 친밀성을 함께 보존할 수 있게 한다. 현존재의 초월적 구조 안에서, 현존재는 “세계를 향해 지향된 것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다” 또는 그 점에 있어서, 존재를 향해 지향된 것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다(Lautman 2011b: 205). 따라서 로트망은 형이상학적 초월의 의미에서, “하이데거에게서 [현존재와 세계 또는 현존재와 존재] 둘 모두가 (...) 나누어진 상태가 아니라 (...) 합류하는 어떤 실행으로서의 초월”의 모델을 발견한다(Lautman 2011b: 205). 하지만 하이데거가 존재와 존재자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를 주장하는 것과 달리 로트망은 변증론과 수학 사이의 차이를 주장한다.      


지배하는 관계에 관한 초월론적 사유는 또한 로트망이 “수학과 관련하여 변증론의 선행성이라는 형식”을 특성화할 수 있도록 한다(Lautman 2011b: 203). 명백히 말해, 그것은 공리들로부터 도출된 명제들과 관련하여 그 공리들의 선행성의 형태는 아니다(또한 발생적인 본성이 그것을 포함하는 바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어떤 ‘존재론적’ 선행성, 로트망이 ‘염려’(souci) 또는 응답과 연관된 ‘질문’에 속한 것으로서 공리들 대신에 공식화한 것이다(Lautman 2011b: 204). 프랑스어 ‘souci’는 코뱅(Corbin)이 하이데거의 독일어 ‘Sorge’를 번역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서, 영어에서는 대개 ‘care’로 번역된다. 염려는 물론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의 현존재에 대한 실존론적 분석의 핵심 개념이다. 그 책의 1부 끝에서, ‘염려’는 현존재의 존재를 지칭하는 것이며, 그것은 존재론적 근거로서, 텍스트 안에서 이전에 탐구된 세계-내-존재의 모든 측면들의 통일성으로 발견된다(이 측면들은 세계의 세계성, ‘함께-있음’, ‘안에-있음’ 등등 안에서 발견된다). 존재론적 선행성의 한 예로서, 염려는 그것이 근거짓는 보다 파생적인 구조들에 존재론적으로 선행한다. 게다가 우리는 근본개념의 생산적 논리학에서 활성화된 기초-존재론적 초월에 의해 염려의 구조를 표명할 수 있다. 이때 그 초월은 실존론적 분석론에서 현존재의 존재에로 지향된다. 이것은 아래의 구절에서 기술되는 바와 같다.    

  

구조적인 전체의 전체성(Die Ganzheit des Strukturganzen)은 요소들로부터 그것을 구축함으로써 도달되는 것이 아니다 (...) 현존재의 존재는 그것에 따라 구조적 전체 자체가 존재론적으로 지지되는 것으로서, 우리가 이러한 전체를 통해 어떤 단일성, 즉 근원적으로 단일한(ursprünglich einheitliches) 현상으로 가는 모든 방식을 살팔 때, 접근가능한 것이 된다. 이때 현상은 이미 이 전체 안에서 그것이 구조적 가능성에서의 각각의 구조적 항목을 위한 존재론적 기초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미 존재한다(so daß es jedes Strukturmoment in seiner strukturalen Möglichkeit ontologisch fundiert)(Heidegger 2006: 181/1962: 226).   

  

이러한 개념적 틀 안에서, 염려 개념에 대한 하이데거의 생각은 정확히 존재질문(Seinsfrage)에 관한 응답이나 해로서 생성된다. 이것은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의 규준들 안에서 공식화된다.  

         

#발생과 내재성(들뢰즈의 네 번째다섯 번째 주장을 명확히 함)

이념들에 관한 이론에서 들뢰즈의 중심적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그가 ‘정적 발생’이라고 지칭한 존재론적 발생을 설명하는 것이다(Deleuze 1993: 238/1994: 183; italics removed).    

 

이러한 발생은 마침내 작은 것이라 해도 하나의 현행적 항목과 다른 현행적 항목 간이 아니라, 잠재적인 것과 그것의 현행화 사이에서 발생한다. 달리 말해 그것은 구조로부터 시작해서 그것의 구체화로, 문제의 조건들로부터 해의 경우들에 이르기까지, 미분적 요소들과 그것들의 이념적 연결로부터 현행적 항목들과 각각의 순간에 시간의 현행성을 구성하는 분기하는 실재적 관계들에까지 진행한다(Deleuze 1993: 237–8/1994: 183).  

   

로트망에게, 변증론과 수학 사이에 존재하는 지배하는 관계라는 초월적 개념은 그것에 따라 수학 이론들의 특성들이 변증론적 이념에 의해 발생되는 어떤 발생적 기제와 같은 것을 명확히 할 수 있도록 한다. 즉 이것은 로트망이 수학이 창조적 방식으로 어떻게 이념적 관계들을 실현하거나 구체화하는지에 대한 그 방법, 특히 ‘지식의 향상’과 같은 것이 효과화될 수 있는 방식을 설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Lautman 2011b: 205).[주23] 여기서 변증론적 이념들에 관한 새로운 수학 이론의 표현들이 변증론의 구조와 그것의 이념들에 관한 보다 근원적이고 잘 근거지워진 파악 안에서 생성된다. 지배하는 관계의 초월론적 개념이 드러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변증론적 이념들에 적합해지고자 하는 지성의 노력은, 이 변증론의 내적 연결에 대한 앎에 그것이 적용된다는 바로 그 사실에 의해, 보다 구체적인 개념들의 체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러한 연결들은 긍정된다. 이러한 발생은 따라서 더 이상 이념으로부터 나오는 구체성의 물질적 창조로서 파악되지 않고, 이념의 분석 안에서 구체성에 관련된 개념들의 출현으로 파악된다(Lautman 2011b: 200).[주24]     


발생의 과정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로트망은 「근거의 본질에 대하여」에서 하이데거에 의해 만들어진 구별, 즉 존재적인 진리와 존재론적 진리 간의 구별을 도입한다. 그것은 그 관계를 표명하는 초월의 구조와 합쳐진다. 존재적 진리는 존재자들에 대한 명제적 진리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비-표상적이다. 오히려 하이데거가 ‘존재적 진리’에 의해 의미한 것은 존재자의 존재자의 표명이나 탈은폐이다. 로트만의 말에서, ‘실존하는 것(l’existant)의 진리는 존재적이며, 구체적인 실존의 효과적 상황들에 관련된다. 존재(실존하는 것, l’existant)의 특수성은 스스로를 표명한다는 것, 즉 탈은폐된다는 것이다(Lautman 2011b: 200; italics removed and trans. modified). 존재적 진리는 어떤 주어진 시간에 현상적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자의 영역이다. 다른 한편 존재론적 진리는 존재자의 존재의 영역에 속한다. 그것은 존재자의 드러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존재자의 드러남이 가능해지는 바의 것이 탈은폐되는 것을 가리킨다. 보다 정확히 말해, 존재론적 진리는 존재적 진리를 근거짓는 존재론적 구조들의 탈은폐인 것이다. 이러한 두  영역들은 비록 구별된다 할지라도, 하이데거는 그것들의 본질적 상관성을 언급하는데 조심스럽다. 즉 “존재적이고 존재론적인 진리는 상이한 방식으로 서로 연관된다. 그것은 그것들의 존재 안에 존재자이면서, 존재자에 속한 존재이다.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존재와 존재자 간의 구별(존재론적 차이)에 대한 그 연관성에 기반하여 서로 에게 속한다”(Heidegger 2004a: 134/1998a: 105).    

 

존재론적 진리에 대한 존재적인 것의 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특히 존재론적 진리가 존재적인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한에서, 로트망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의 다른 기초 요소를 채택한다. 존재에 관한 전-존재론적 이해가 그것이다. 하이데거로부터 인용하면서, 로트망은 다음과 같이 쓴다. 이러한 드러남 또는 ‘탈은폐[존재적 진리]는 오직 “존재자의 존재에 관한 어떤 이해(존재구성틀[the constitution of being], 즉 존재하는 어떤 것이 존재하는 방식)에 의해서만 분명해지고, 이끌어질 수 있다”’(Lautman 2011b: 200).[주25] ‘존재구성틀’은 여기서 ‘Seinsverfassung’을 번역한 것이다. 코뱅은, 로트망이 그의 프랑스어 텍스트에서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어떤 공식에 나오는 ‘존재의 구조’(la structure de son être)를 이렇게 번역한다. 결과적으로 로트망이 이것을 구조적 도식들로서 변증론적 이념들을 고려하는 바에 연결하는 방식을 이해하기란 쉽다. 다시 말해 들뢰즈는 가끔 이념들을 구조들로 정의한다. “하나의 구조 또는 어떤 이념은 ‘복잡한 주제’, 즉 내적인 다양체이다. 다른 말로 해서 그것은 다양성의 체계이며, 실재적 관계들에 구체화되는 미분적 요소들과 현행적 항목들 간의 비국지화하는 연결들이다”(Deleuze 1993: 237/1994: 183). 들뢰즈의 구조나 이념은 하이데거의 존재구성틀의 자리를 대신하며, 그의 실재적 관계들과 현생적 항목들은 존재적 진리를 대체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것의 발생적 과정은 존재론적 진리와 그것의 존재자 안에서의 드러남이라는 탈은폐를 대신한다. 인용된 로트망의 언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존재적 진리가 어떤 존재론의 가능성의 조건으로서, 오직 현존재의 실존 안에 구성된 존재에 관한 선존재론적 이해에 기반해서만 가능하다는 하이데거적 이념을 그가 전유한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자면, 하이데거에게 “존재의 탈은폐성’(Enthülltheit)은 처음으로 드러남(Offenbarkeit)을 가능하게 만든다”(Heidegger 2004a: 131/1998a: 103; italics removed). 물론 로트만은 이러한 하이데거의 생각을 변형하는데, 그는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학과 메타 수학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그 자신의 존재과 세계에 대한 현존재의 원초적인 열려있음의 구조를 ‘개방성’(Erschlossenheit) 또는 ‘탈은폐성’(disclosedness)이라고 부른다. 현존재의 선-존재론적 이해는, 존재와 관련하여 전개되지 않은 탈은폐성으로서, 존재의 학문(기초 존재론)을 전개하고 주제화할 가능성을 근거짓는다. 이를 따라감으로써 현존재는 원초적인 존재론적 구조들을 탈은폐한다. 따라서 로트망의 독해에서, 존재론적 진리는 ‘존재에 대한 진리’로 이해되는 ‘탈은폐’이다(Lautman 2011b: 200).[주26] 하이데거에게 존재론을 수행하기 위한 필수적인 방법론적 지평이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이기 때문에, 존재론적 진리는 탈은폐되며, 따라서 현존재의 존재에 관한 탐구에 의해 존재는 명확해진다. 존재론적 과정과 탈은폐된 구조는 현존재의 실존을 구성하고, 제 차례에 존재자의 현상적 세계를 근거짓는 그러한 것들이다. 

     

한 예시가 이것을 명확하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존재적 진리의 수준에서, 나는 존재자의 존재자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문을 따라 갈 수 있다. 그리고 ‘하나의 존재로서 나는 무엇인가?’라고 물을 수 있다.[주27] 나의 특정한 현사실적인 조건들의 기능에 따라(이 조건들은 역사상 이 순간을 지배하는 잘 알려진 이론적 틀거리를 포함한다) 나는 나의 실존을 여러 방면에서 해석한다. 나는 중간 크기의 생물학적 조직체이다. 나의 두뇌는 육질의 컴퓨터이다. 나는 미국인이다. 나는 세금을 납부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나의 양상들이며, 나의 존재로서의 존재에 속하며, 실증 과학의 논리 안에서 지칭되는 바이다. 그와 같은 해석들의 매트릭스는 내가 세계에서 실행하는 것을 가치있다고 발견하는 프로젝트를 정의한다. 프로젝트를 성취하기 위해 내가 애써 가는 경로들, 그리고 내가 세계에서 만나는 다른 존재자가 나에게 가지는 의미들은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내가 기초 존재론을 행할 때, 즉 나의 존재나 실존에 대한 질문을 제기할 때 – 나는 그러한 존재적 해석들이 나에게 부여될 수 있는 구조들을 분별하려는 노력 속에서 근본 개념의 근원적-과학적 기제를 채택하게 된다. 예컨대 헤겔에게서 해석 그 자체의 구조는 내 실존의 존재론적 구조, 다시 말해 ‘실존역’(existentialia) 중의 하나인 것이다. 존재론적 진리는 내 존재를 구성하는 존재론적 구조들의 탈은폐를 형성한다. 이것들의 예는 『존재와 시간』이 포함하는 해석, 기획투사, 염려, 드러남, 개방과 숨김, 역사성 그리고 시간성과 타자들이 그것이다.   

  

로트망에게 존재적 진리와 존재론적 진리 간의 구별은 수학 이론과 변증론적 이념들에 대한 그것의 추구 사이에 있는 구별을 기술하는 것이다. 이념들에 있어서 수학의 참여는 존재론적 진리에 관한 현존재의 탈은폐와 유비된다. 즉 그것은 존재적인 것을 근거짓는 원초적인 존재론적 구조들의 탈은폐인 것이다. 그렇다 해도 어떻게 이러한 것이 로트망으로 하여금 변증론으로부터 수학의 발생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가? 다른 말로 해서 어떻게 수학 이론에서 이념적 관계들의 현실화를 설명할 수 있게 하는가? 이를 위해 그는 하나의 초월의 ‘실행’으로서 탈은폐에 관한 하이데거의 사유를 재구성한다. 즉 “존재의 탈은폐에 관한 분석에서, 이러한 실행들의 일반 이론이 구성되는 바, 그것은 우리에게 발생적인 것이며, 하이데거가 초월의 실행 또는 넘어감의 실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Lautman 2011b: 200). 하지만 초월의 실행은 그것에 따라 현존재가 스스로를 넘어가는 것으로서, 예컨대 세계를 향해 또는 그 자신의 존재의 근본구성틀을 향해 가는 것이다. 로트망의 논의는 이 둘 모두를 주장하지만, 나는 후자에 집중하고자 한다. 그의 탈은폐의 재구축은 그것에 응답하면서 발생되는 질문과 대답의 논리와 관련하여 작동한다.      



“존재의 탈은폐는 (...) 어떤 것에 대한 하나의 질문을 실행함으로써 우선적으로 이루어진다”(Lautman 2011b: 200). 물론 하이데거가 요청하는 주제적 문제는 존재자의 존재로서, 현존재의 존재에 의해 접근가능한 것이다. 실재로 어떤 의미에서, 현존재는 하나의 질문으로 실존한다. 그것은 그 자신의 존재를 하나의 주제로 가지는 존재이다. 하지만, 여기서 보다 적절한 것은 사실상 그것의 전-존재론적인 이해 때문에, 현존재가, 존재가 명백하게 개념화되는 어떤 학문을 전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질문을 제기하는 행위가 비록 탐구되는 주제적 문제에 관한 충분한 이해를 포함하지 못할지라도, 그것은 ‘선행적 제한’을 구성한다(Lautman 2011b: 200). 다시 말해, 질문 자체는 어떤 전개념적 방법으로 주제적 문제를 제한한다. 즉 그것은 가치있는 모호한 이해에 기반하여 문제적 장을 제한하는 것이다. 기초 존재론의 경우, 이러한 제한은 존재에 관한 전존재론적인 이해에 의해 부여된다. 그러한 문제적 장의 기초 구조들을 탈은폐함으로써, 어떤 전개된 ‘존재의 개념’이 구성될 수 있다. 우리는 하이데거의 생산적 논리에 관한 사유로부터 이것이 근거짓기의 과정에 따라 작동하는 기초존재론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현존재의 존재의 근본구성틀(즉 현존재의 존재구성틀[Seinsverfassung])은 문제화되며, 그 질문을 표명하는 존재에 관한 모호한 이해의 논리는 그러한 표명을 활성화하는 존재론적 근거까지 추적된다. 탐구되는 그 근거의 구조와 개념(근본개념)들은 그러한 것들을 표명하는 태도다. 탈은폐된 존재론적 구조들의 논리는 이 근본개념들 안에서 탄생한다. 로트망의 어위들에서, 그와 같은 존재 개념의 구성은 “하나의 구조가 지성에 대해 탈은폐되는 실행”이다. 그리고 이 기반 위에서 지성은 “질문 안에 있는 존재(l’être)와 관련해서 일련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개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Lautman 2011b: 200). 존재에 관해 질문하는 그 ‘실행’은 어떤 주제적 공간을 제한하고, 탐구되는 주제적 문제는 그 주제적 문제의 예비적인 표명을 구성하는 바, 이것은 그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을 제공하는 일련의 근본개념에 의해 사유될 수 있으며, 보다 형식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존재론적 진리의 탈은폐의 발생적 운동은 로트망에게 본질적이지만, 존재적 진리 또는 결과적인 수학 이론의 발생을 통해 그것을 수행하지 않고서는 불완전하다. 필수적인 다음 단계는 꽤나 쉽게 이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즉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것이 우리에게 근본적인 지점이며, 존재하는 것의 존재론적인 진리의 이러한 탈은폐는 그와 동시에 모양을 갖추는 존재적 실존의 구체적 측면이 없이는 종결될 수 없는 것이다”(Lautman 2011b: 200–1). 다른 말로 해서, 존재론적 진리의 탈은폐는 사태들의 존재적 상태를 조성한다(modulate)(그리고 비모방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주28] 위의 예시를 계속 이어가자면, 내가 나의 존재의 부분적인 구성요소로서 해석의 구조를 탈은폐하고 해석의 논리(해석학적 순환)를 수행할 때, 이것은 내가 이전에 나 스스로를 실체화했을 존재적 개념들의 합법성을 탐구하는 것이다(내 존재는 본질적으로 ‘미국인’, ‘납세자’ 등등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이것은 때에 맞춰 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의미와 기획투사의 매트릭스를 조성한다. 존재적 수준에서 내가 나 스스로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 그리고 사실상 세계와 내가 존재하는 방식 – 은 내가 탈은폐했던 나의 존재하는 것의 존재론적 구조와 일관된게 재형상화된다. 해석의 논리는 그 속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하이데거는 보다 거대한 본래성(authenticity)을 지향하는 추세와 관련된 이 변화를 기술한다. 이런 식으로 탈은폐의 존재론적 진리는 존재적 진리를 동시적으로 조성[변조]한다.     


들뢰즈의 경우, 여기서 기술되는 재형상화라는 하이데거적 용어는 현행적 사건들로 개조된다. 예를 들면, 어떤 과학[학문]의 현행적 담론이, 그 과학을 잠재적 해들의 장으로 정의하는 변증론적 이념의 새로운 측면을 드러낼 때, 그 장은 재형상화를 겪는 것이다. 달리 말해 어떤 현행적 사건은 새로운 해의 장을 생산하는 것이다. 로트망은 아래와 같이 광범위하게 과학적인 영역에서 다시 한 번 하이데거적 사항을 구성한다.    

  

동일한 현행성이 (...) 두 가지 상이한 평면들에서 수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존재론적 평면에서 존재하는 것의 존재 구성은 존재적 평면에서의 한정, 즉 학적 지식의 대상들이 생명과 물질을 획득하는 영역의 현사실적 실존의 한정과 분리불가능하다 (Lautman 2011b: 201).      


로트망에게, 같은 분리불가능성과 동시적인 – 하지만 비표상적인 – 변조[조성]는 변증론적 이념과 수학 이론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이 맥락에서, 로트망이 변증론적 문제에 대한 수학 이론적 해들의 내재성을 이해하는 방식이 보다 잘 파악될 수 있다.     


제기된 문제인 한에서, 아마도 어떤 변증론적 개념들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연결들과 관련해서, 이러한 변증론의 이념들은 수학에 있어서 확실히 (흔한 의미에서) 초월적이다[다시 말해 이 이념들은 수학의 이념을 초과하는 실재다]. 다른 한편 이러한 연결들의 문제에 응답을 제공하는 어떤 노고가, 사태/사물의 바로 그러한 본성에 의해, 효과적인 수학 이론들의 구성이므로, 요청되는 해의 논리적 도식을 위한 내재성에 있어서 이런 이론들의 전반적인 구조를 해석하는 것은 정당화된다. 따라서 어떤 밀접한 연결이 수학의 범역에 놓인 변증론적 문제에 대한 해에 속한 논리적 구조의 내재성과 이념들이 초월성 사이에 존재한다. 이 연결은 우리가 그것에 부여하는 바, 적어도 우리가 변증론으로부터 수학의 발생을 기술함으로써 그것을 파악하고자 해왔던 발생의 개념이다(Lautman 2011b: 205–6).         


구조적으로 말하면, 로트망에 의해 기술된 발생적 운동은 정확히 하이데거에게서 발견되는 기초-존재론적 초월과 동일하다. 그리고 로트망의 발생적 관계는 그것을 명료하게 바라봄으로써 보다 상세하게 주어질 수 있다. 현존재가 기초 존재론을 수행할 때, 그것은 근거에 관한 근원-과학적 축을 따라 초월의 운동을 활성화한다. 나는 현재 나의 존재를 이해하고 – 하이데거에 따라 – 그것들이 불충분하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근원적 구조들을 음미한다. 나는 그러한 구조들을 적어도 가능하게 하는 근거를 탐구하며 그것들을 표명하는 일련의 근본개념을 전개한다. 마찬가지로 수학 이론은 변증론적 이념들 또는 문제들에 연루되고 그것들을 표명하기 위한 일련의 근본개념들을 드러낸다. 여기에 기초해서 실증 과학적 담론의 전체 영역들은 존재적 수준에서 발생된다. 하지마 내 존재의 구조적으로 문제적인 차원이 새로운 존재론적 근본개념 너머에 정립되듯이, 변증론적 이념들의 문제적 차원은 새로운 기초 수학 이론적 개념들의 파악을 초과한다. 이것은 나를 (또는 수학자를) 여전히 보다 원초적인 방식으로 문제적 요소들을 표명하는 새로운 근본개념을 탐구하도록 이끈다. 다음으로 새로이 형상화된 실증적인 존재적 또는 수학적 담론이 발생하며 … 등등. 문제틀적인 요소에 의해 동기화된 근원적인 과학적 또는 기초 존재론적 초월의 운동은 존재적 수준에서 ‘해’들의 발생론인 것이다.  

    

하이데거에 관한 로트망의 접근에 기반하여 우리는 그의 수학적 플라톤주의가 어떤 형이상학적 초월을 주장하는 데 있지 않고, 어떤 존재론적 실재론, 즉 존재론적 구조들(변증론적 이념들과 개념들)에 대한 실재론을 구성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학 이론은 이러한 존재론적 구조들을 드러내기 위한 탐색이다. 이것은 어떤 구성주의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합리주의를 구축한다. 수학의 이론적 실천은 수학 이론의 근본 개념에 속한 변증론적 구조의 도식의 논리를 채택할 때, 그러한 도식들의 면모들을 탈은폐함으로써 실재성을 파악하며, 그때 그것에 기반하여 실증적 수학의 장을 개혁한다. 달리 말해 근원적 수학의 작동이 변증론의 논리와 그것의 이념들에 속한 수학 이론을 발생시키는 바, 어떤 내재적인 구조적 정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IV. 결론들뢰즈가 로트망을 넘어서는 두가지 방식-변증론적 이념들에 관한 하이대거의 이론



로트망이 일차적으로 변증론적 이념이나 문제들 그리고 그것이 수학 이론의 해들과 가지는 관계에 관심을 가지는 동안, 그는 여기서 모든 과학에 적용하기 위해 기술되는 구조를 취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수학적 논리는 이런 측면에서 어떤 특별한 특권을 향유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여러 다른 이론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그것이 제기하거나 해결하는 문제들은 대개 다른 곳에서 동일하게 발견된다”(Lautman 2011d: 28). 사실상 그는 이념/문제의 발생적 관계를 취하며, 이때 해는 사물/사태들이 일반적으로 그것에 의해 발생되는 바, 존재론적 기제를 기술하기 위해 구조화한다. 로트망은 다음과 같이 쓴다.     


변증론과 수학의 관계와 관련하여, 우리는 어떤 실행 메커니즘을 밀접하게 따를 수 있다. 이 메커니즘에서는 이념들의 분석이 효과적인 창발로 확장된다. 즉 잠재적인 것이 실재적인 것으로 전환된다. 따라서 수학은 구체화[육화]의 다른 영역들, 즉 물리적 실재, 사회적 실재, 인간적 실재, 즉 사물/사태들이 실존하게 되는 방식이 관찰되는 모델의 역할과 관련하여 활동한다 (Lautman 2011b: 203).       


비록 들뢰즈가 존재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수학 – 특히 고전 미적분학 –을 발견했다 해도, 그에게 로트망의 중요성이 수학에만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차이와 반복』에서 들뢰즈는 로트망의 다음과 같은 주장, 즉 변증론적 이념들이 우선적으로 수학적 해/이론들에 기입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체적인 해의 장들을 구조화한다는 것을 수용한다. 로트망을 따라 이념/문제–해의 구조에 관련되는 발생적 관계가 존재론적 작동기제의 기술을 제공하고, 그에 따라 어떤 질서에 속한 존재자가 발생되는 것이다. 즉 변증론적 이념들 또는 문제들의 상이한 질서가 존재하며, 이것은 다양한 이론적 장들을 구조화한다.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학은 최종적인 질서에 속한 변증론적 이념들이 구체화되는 해의 장과 더불어, 이러한 장들과 연관된 문제들의 표현과 더불어 출현한다. 이념들의 다른 질서들은 다른 장들 그리고 여러 과학들에 상응하는 표현의 다른 양상들 안에 구체화된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과학 영역들의 발생은 변증론적 문제들 그리고 그것들의 질서들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Deleuze 1993: 235/1994: 181).       


들뢰즈는 여기서 보다 멀리 간다. 『차이와 반복』 4장에서 제안된 체계에서, 실재 자체는 복잡한 문제와 같이 구조화되는데, 이는 변증론적 이념/문제-해 쌍과 같은 것이다.     


들뢰즈는 로트망의 이념/문제의 이론적 틀을 거의 전반적으로 채택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된 세 가지 중점 사항을 상기하면서, 들뢰즈는 로트망에게 있는 이념/문제-해 복합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로트망의 일반적 주제를 따라, 어떤 문제는 세 가지 측면을 가진다. 해들과 다른 그것의 차이, 그 자신의 결정 조건들에 기반하여 그것이 발생시키는 해들과 관련된 초월성, 그리고 그것을 뒤덮은 해들 안에 속한 그것의 내재성(Deleuze 1993: 231–2/1994: 178–9).     


위에서 전개된 분석에 비추어 보면, 『차이와 반복』에서 들뢰즈가 로트망에 대한 하이데거의 영향을 환기하기 않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의 초기 존재론의 요소들이 들뢰즈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여기서 명백해진다. 우리는 로트망이 존재적인 것과 존재론적인 것 사이의 하이데거적 차이와 연관하여 문제들 또는 이념들과 해들 간의 이질성을 정의했다는 것을 명료하게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로트망이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적 초월과 관련하여 문제들의 초월성을 이해했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여기에 기대어, 그가 존재자들 안에서 그것에 기초하여 구성된 존재론적 구조들의 하이데거적 내재성과 연관시켜 해들 안에 문제의 내재성을 이해했다는 것도 그러하다.[주29]         


하지만 들뢰즈의 존재론은 결코 하이데거의 존재론으로 환원될 만한 것이 아니다. 들뢰즈는 “문제는 언제나 변증론적”이며 “문제적(변증론적) 이념들을 구축하는 이념적 연결들이 수학 이론들에 의해 구성되는 실재적 관계들 안에 구체화되며, 해들의 형태 안에서 문제들 안으로 옮겨진다”는 로트망의 생각에 동의한다(Deleuze 1993: 232/1994: 179; italics removed). 마찬가지로 그는 “수학적인 것(또는 물리적인 것, 생물학적인 것, 심리적이거나 사회적인 것)은 해들”이지 문제들이 아니라는 말에도 동의한다(Deleuze 1993: 232/1994: 179). 하지만 들뢰즈는 이러한 로트망/하이데거적 틀거리 안에서, 그의 차이의 존재론에 기대어 변증론적 이념들의 본성을 재측량하며, 이에 따라 해들에 대한 발생적 관계의 개념들을 개조한다. 들뢰즈에게 “문제적 또는 변증론적 이념은 미분적 요소들 간의 관계들의 체계, 즉 발생적 요소들 간의 미분적 관계들의 체계이다” (Deleuze 1993: 234/1994: 181). 그의 용어에 따라 이것은 변증론적 이념들 또는 문제들은 ‘다양체들’이라고 말해짐으로 재진술될 수 있다. 다양체들은 구조화된 차이의 체계들이다. 유사-안정적(quasi-stable) 세계, 현행적인 시뮬라크르적 동일성들의 세계는 미분적 다양체들로 구성된 문제들에 대한 해들인 것이다.  





[주석]

1) 주석에는 프랑스어나 독일어 텍스트 그리고 그것들의 영역판의 출간년도와 페이지수가 적혀 있다. 순서는 원문 페이지수, 다음으로 번역본의 페이지수다. 


2) 『차이와 반복』을 통틀어, 들뢰즈가 하이데거를 분명하게 참조하는 부분은 본문과 주석에서 단지 11번이다. 내가 간과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기에서 들뢰즈가 ‘하이데거’ 또는 ‘하이데거적인’(Heideggerian)이라는 단어를 24번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숫자는 참고문헌이나 주석에 있는 참고문헌적 정보 안의 경우들은 포함하지 않는다. 폴 패튼(Paul Patton)의 영역본에 있는 색인에는 한 가지 실수가 있는데, 그것은 116페이지에 있는 하이데거에 관한 언급인데, 사실 그것은 117페이지에 있다. 그 색인은 또한 334페이지에 있는 하이데거에 관한 언급을 누락하고 있다.    


3) 이 모든 것은 Lautman 2006a/2011a에서 발견된다. 


4) 이 강의에 대한 기록은 피에르 르페브르(Pierre Lefebvre)가 작성한 필사본에서 발견된다. 여기서는 Deleuze 2016/2015로 인용된다. 


5) 코뱅이 참조한 문헌은 ‘Heidegger 1938’이다. 이 문헌에는 또한 『존재와 시간』(46-53절과 72-6절),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C. 기초존재론으로서의 현존재의 형이상학), 그리고 『횔덜린과 문학의 본질』(Hölderlin und das Wesen der Dichtung)로부터의 발췌와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의 코뱅 번역이 실려 있다. 


6) 분명히 하자면, ‘변증론적’(dialectical)이란 말은 하이데거의 것이 아니다. 로트망이 하이데거의 맥락에 그 말을 도입한 것이다. 


7) 이 대목은 들뢰즈의 사건의 철학을 분명히 하기 위해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 사실 그는 두 가지 사건의 영역을 구분한다. 즉 이념적 사건들(잠재성의 수준)과 현행적 사건들이 그것이다. 이 둘은 모두 존재론적으로 실재적이다. 이념적 사건에 관한 들뢰즈의 이론은 다음과 같다. (1) 이념적 사건들은 잠재적 이념들의 구성을 야기하는 사건들이다. (2) 이념적 사건들은 현행적 사건들과 관련하여 초월적이면서도 동시에 내재적이다. (3) 이념적 사건들은 분명 이념들/문제들의 조건을 구성한다. 그리고 (4) 이념적 사건들의 논리는 존재론적 발생의 논리이며, 잠재적 이념들의 결정과 현행성의 수준에서 해의 장에서의 결정, 둘 모두에 관련된다. 


8) 하이데거의 존재론의 발전이 ‘점진적으로 잘 근거지워진’ 생각들을 이끌어낸다고 주장하는 것이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전통적인 근거 개념을 강하게 비판하고, 자주 ‘무-근거’를 강조하기 때문이다(예컨대 Heidegger 2003: 380/2012: 300를 보라). 하지만 비록 근거라는 그의 개념이 전통적인 것과 구분된다 하더라도, 하이데거는 지속적으로 근거라는 용어와 근거짓기(grounding)과 근거지워진(grounded)의 관계에 관한 용어를 사용했다. 하이데거에게 근거는 궁극적인 기초, 원리 또는 기체(substratum)가 아니다. 오히려 ‘근거’는 원초적인 존재론적 구조의 특성을 묘사하는데, 그러한 구조들이 보다 파생적인 존재론적이고 존재적인 구조를 존재하도록 하는 한에서 그러하다. 이런 방식으로 근거는 가능성의 칸트적 조건과 유사한 것이 되지만, 하이데거는 통각(apperception)의 초월론적 통일성은 삭제했다. 그리고 1930년대부터 시작해서, 그는 현존재(인간적 실존)에 존재론적으로 선행하는 존재론적 구조들을 근거지우는 사유를 발전시켰다. 이런 점들은 ‘내적 가능성의 근거’에 관해 사유할 때 그가 사용하는 용어에서 이해될 수 있는 바, 이를테면 「진리의 본질에 관하여」(Vom Wesen der Wahrheit)가 그것이다(Heidegger 2004b: 186/1998b: 143). 게다가 하이데거가 존재 자체를 규정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근거 개념을 사용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거의 본질에 관하여」에서 그는 “‘근거’는 일반적으로 존재의 본질에 관한 초월론적 규정이다”라고 주장했다(Heidegger 2004a: 172/1998a: 132; italics removed). 몇 년 뒤에 『철학에의 기여』(Beiträge zur Philosophie)(『존재 사건에 관하여』 Vom Ereignis)에서 그는 존-재(beyng, Seyn)에 관한 사유를 존재사건과 관련하여 발전시켰고, 사건에 대한 본질적인 규정을 표명하기 위해 근거의 개념적 영역을 사용했다. 중요하게도 그의 근거 개념은 탈근거(Abgrund)를 도출하는데, 이는 근거로 하여금 어떤 절대적인 기초가 생겨나는 것을 방해한다. 예컨대 「근거의 본질에 관하여」에서하이데거는 ‘자유’의 개념을 전개했는데, 이것은 ‘현존재 안이 심저 근거’(abyssal ground, 탈근거[Ab-grund])를 이끌어내고, 『철학에의 기여』(『존재 사건에 관하여』)에서는 탈근거(초-근거[Ur-grund]와 비-근거[Un-grund]와 더불어)가 사건으로서의 존-재(beyng)의 정의에 부합하는 근거의 세 가지 주요 구조들 중 하나이다(Heidegger 2004a: 174/1998a: 134; 2003: 379/2012: 299). 이러한 근거 개념에 대한 규정들을 명심하면, 전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하이데거의 존재론은 일정한 방법론적 패턴에 따라 발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패턴은 사실상 그의 문제틀의 잘 근거지워진 사유를 점차적으로 발생시킴으로써 기술되어질 수 있다. 즉 그는 (1) 존재의 문제틀이나 그 문제틀의 몇몇 측면을 표면하곤 했던 몇몇 개념들을 음미한다. (2) 또는 그는 그러한 개념들을 작동시키는 근거들로 탐색해 들어간다. (3) 그는 그 근거에 관한 사유를 전개하면서, (4) 그 근거에 관해 문제적 장을 재표명한다. 다른 논문(Bahoh 2014)에서, 나는, 진리의 본질에 관한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문제틀에 대한 연구에서 점차적으로 잘 근거지워진 일련의 사유를 상세하게 기술했다. 순서에 따라 이 대목은 교정적으로 진리이다. 현상학적인 것으로의 진리, 즉 존재자의 비-망각적(a-lethic)인 탈은폐가 그것이다. 그리고 아프리오리한 것으로서의 진리, 즉 비-망각은 존재론적 구조를 가지는데, 그것은 자유와 개방 그리고 은폐/폐쇄/물러남이 그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차이화로서의 진리가 있다.   


9) 하이데거에 관한 몇몇 해석들은 현존재가 전혀 어떤 존재가 아니라, 단지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인 개방성이라 반박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단지 반만 올바르다고 본다. 현존재는 사실상 하나의 존재이며, 단지 어떤 개방성과 같은 것에 의해 규정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존재’(이것은 ‘현-존재’[저기-있음]와 구별되어야 한다)는 하이데거가 인간존재에 부여한 이름이거나, 또는 지성적으로 그것에 대해 닫혀 있는 스스로의 존재를 가지는 특유한 특성을 구성적으로 포함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현존재가 바위와 테이블과 같이 충분히 규정된 존재자들과 혼동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이데거의 말에 따르면, “현존재는 다른 존재자들 사이에서 야기되기만 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존재자[ein Seiendes]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존재적으로 바로 그 존재[Sein] 안에서, 그 존재[Sein]가 그것을 위해 어떤 주제[문제, issue]인 바 그 사실에 의해 구분된다. (...) 현존재는 그것이 존재론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적으로 차이를 드러낸다”(Heidegger 2006: 12/1962: 32. 나는 줄곧 맥쿼리(Macquarrie)와 로빈슨(Robinson)이 실체(entity)’로 번역하는 ‘Seiendes’를 ‘존재자’(being)’로 그리고 ‘존재’(Being)로 번역하는 ‘Sein’을 ‘존재’(being)으로 대체한다.) 게다가 하이데거의 현존재 개념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최근의 해석자들에게지지 받는다. 예컨대 토마스 쉬한(Thomas Sheehan)에 따르면, ‘현존재’는 ‘어떤 구체적, 실존적 인물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리차드 카포비안코(Richard Capobianco)에 따르면, 현존재는 ‘인간’이다(Sheehan 2015: xvi; Capobianco 2010: 70).       


10) 예컨대 ‘Duffy 2013: ch. IV’를 보라.


11) 예컨대 ‘Peden 2014’를 참조하라. 카바이예(Cavaillès)처럼, 로트망이 1944년에 나치에 의해 체포되고 처형되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그는 프랑스군의 멤버로서 전쟁 초기에 붙잡혔으며, 독일전쟁포로 캠프를 탈출했고 레지스탕스 운동의 일원이 되었는데, 이때 체포된 것이다.) 알베르 로트망에 관한 보다 전기적인 정보를 위해서는, 자크 로트망(Jacques Lautman)을 참조하라. ‘Lautman 2011a’의 ‘서문’ 참조.


12) 잘라미아에 따르면, “‘효과적인[effective, 실제적인] 수학’이라는 개념으로, 로트망은 이론들, 구조들 그리고 수학자들의 바로 그 현행성으로 파악되는 구성물들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 개념은 수학 지식의 구조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효과적인[실제적인] 것이란 수학적 건축물을 점진적으로 건설하기 위한 수학자의 구체적인 행위(action)를 가리킨다. 그러한 행위는 구축적[구성적]이거나 실존론적이다”(Zalamea 2011: xxiv). 


13) 나의 분석에서는 보다 덜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로트망은 간혹 ‘수학’을 그것의 발전 역사에 있어서 어떤 주어진 순간에 결합되는 수학 이론들의 장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14) 이에 비추어 논의를 확장하기 위해, 로트망은 다음과 같이 쓴다. “따라서 힐베르트가 형식화된 수학과 이 형식주의에 관한 메타수학적 연구 사이에 수립했던 평면의 이중성은 일관성과 완전성의 개념이 내적으로 어떤 형식주의를 지배한다는 결론을 가지게 된다. 이때 그 개념들은 이러한 형식주의에 의해 정의되는 개념들로 형상화되지는 않는다”(Lautman 2011c: 90). 반대로 “[비엔나 학파의] 논리주의자들의 형식주의는 (...) 수학적 실재에 관한 연구를 오직 그것이 정의하는 공리들의 일관성에 관한 증명으로 간주하기 위해서만 고려한다”(Duffy 2013: 119). 괴델은 어떤 형식적 체계도 그 자신의 완전성과 일관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15) 스미스(Smith)는 공리론과 문제론에 관한 논의에서, 코헨(Cohen)을 포함하면서, 다음과 같은 점을 진술한다. “괴델과 코헨은 (...) 그들의 유명한 정리들(theorems)에서, 수학적 형식들을 끊임없이 형식화하는 우리의 능력을 ‘무한히 초과’하는 다양한 수학적 형식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공리화의 내적 한계(불완전성, 미결정성)를 지속적으로 드러낸다”(Smith 2006: 154). 


16) 로트망이 그의 수리철학을 위해 바라보는 목표들 중 하나는 힐베르트에 의해 표현되는 수학의 ‘구조적 개념’이라는 관점과 브룬스빅(Brunschvicg)에 의해 표현되는 ‘동력학적 개념’이라는 관점을 종합하는 것이다. 그가 쓴 바에 따르면, “수학에 관한 구조적 개념과 동력학적 개념은 언뜻 대립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하나는 결과적으로 수학 이론을 시간으로부터 독립된 완결된 전체로 생각하지만, 다른 하나는 반대로 그것의 탐구의 시간적 무대로부터 그 이론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본다. 전자의 경우 이론들은 서로 간에 구분되는 실체들(entities)과 같다. 반면 후자에서는 각각이 그것의 한계들과 연결들을 넘어 확장되는 무한한 힘을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 이때 지성은 이러한 힘에 의해 확고하게 된다. 하지만 이어지는 페이지에서 우리는 논리적 개념들의 고정성을 결합하는 수학적 실재성의 개념과 이론들이 그것과 더불어 살아 가는 논리적 개념들과 그 운동의 개념을 전개하려고 시도할 것이다”(Lautman 2011c: 90).  


17) 녹스 패든(Knox Peden)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훌륭하게 설명한다. “로트망에 있어서 수학 개념들은 변증론적 이념들과 관련하여 설립되었다. 이 이념들은 어떤 면에서 그것을 구성하는 존재론적 과정들과 연관하여 하이데거의 공식에 속한 단순히 존재적인 실체와 다르지 않은 조건들이다. 로트망은 존재적 대답에 선행하는 존재론적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 하이데거의 틀을 그 개념적 를 넘어 변증론적 문제의 존재론적 우선성에 관한 어떤 수학적 사유로 번역하려고 하는 것이다”(Peden 2014: 28).


18) 비록 나는 역사에 관한 주제를 연구하지 않을 것이지만, 하이데거에 대한 로트망의 용례는 그의 시간성에 관한 이론을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적 초월의 이론에 밀접하게 해준다. 하이데거에서와 같이 이것은 어떤 본질적인 역사성을 근거지운다. 이는 로트망에 따르면 그것의 변증론에의 연루에 있어서 수학을 규정한다. 이런 의미에서 패든이 “로트망은 존재와 존재자들 간의 존재론적 차이라는 [하이데거의] 개념을 역사적으로 근거지워진 사유 양태로서 수학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요결(rubric)로 번역하려고 했다”고 부언한 것은 절대적으로 올바르다(Peden 2014: 28). 여기서 패든은 로트망의 입장을 카바이예의 입장과 병치하는데, 이는 ‘수학 안의 합리성의 내재적 성격’을 유지한 것이다. 


19) 로트망이 호명한 그 주석가들은 레옹 로뱅(Léon Robin), 율리우스 스텐젤(Julius Stenzel) 그리고 오스카 베커(Oskar Becker)다. 


20) 여기서 두 가지 점이 부가되어야 한다. (1) 로트망의 수리 철학은 물론 질료형상론을 거부한다. 수학과 변증론적 이념의 관계는 “이데아[이념]와 이질적인 어떤 질료(Matter)라는 우연적인 상호배치”가 아니다(Lautman 2011b: 199–200). (2) 놀랍게도, 로트망의 실재론은 하이데거의 전회-이후의 사유, 즉 ‘존재론적 실재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유의 특성과 닮았다. 만약 ‘존재적 실재론’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이 존재자에 관한 실재론이라면(다시 말해, 존재자는 인간 실존과 독립적으로 실존한다는 주장이라면), ‘존재론적 실재론’은 존재론적 구조들에 대한 실재론이다. 내가 박사논문인 『하이데거와 들뢰즈: 사건적 존재론의 근거짓기』(Heidegger and Deleuze: The Groundwork of Evental Ontology)에서 논증했다시피, 하이데거의 전회-이후는 그와 같은 입장을 유지하면서, 인간 실존 보다 더 원초적인 존재론적 구조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논증한다[예를 들어, 「진리의 본질에 관하여」나 「철학에의 기여」(존재사건에 관하여)의 ‘시-공간(Zeit-Raum)’에서 알레테이아(ἀλήθεια, 진리)와 레테(λήθη, 망각)]. 이러한 구조들은 인간 실존과 존재자의 세계의 실존을 근거짓거나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인간실존에 기대지 않는다. 유사하게 로트망의 수학적 플라톤주의도, 변증론에 관한 실재론으로서, 변증론적 이념들이 존재론적으로 수학 이론들에 앞서며, 그와 같은 이론들을 실존하게 한다는 주장을 한다. 표준적인 수학적 플라톤주의와는 반대로, 수학에 대한 변증론적 이념들의 지배적 관계에 관한 로트망의 이론에서, 우리는 ‘서로 간에 발산하는 양태, 즉 그것들을 밀접하게 연결하는 어떤 과정의 양상’을 발견한다(Lautman 2011b: 199). 게다가 이것은 들뢰즈의 전복된 플라톤주의와도 일치하는데, 여기서 변증론적 이념들은 플라톤적 변증법과 시뮬라크르의 존재에 관한 신비적 차원 안에서 발견되는 수수께끼 혹은 문제적 요소의 위치를 점한다. 반면 수학은 시뮬라크르들의 체계 안에서 변증론적 이념의 현행화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1) 내가 아는 한, 로트망은, 들뢰즈가 했던 것과 같은 ‘fondement’이나 ‘fondation’ 그리고 ‘fond’의 구별을 하지 않는다. 하이데거에게 ‘근거의 문제’와 초월의 문제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Heidegger 2004a: 126/1998a: 100). 「근거의 본질에 관하여」에서 하이데거는 초월을 ‘우리가 근거의 본질에 관해 취급하는 한에서 구별적 영역[Bezirks]’으로 지칭한다. 반면 이와 상관적으로 ‘초월 그 자체는 보다 근원적으로 결정되며, 보다 심오하게 근거의 문제를 경우한다’(Heidegger 2004a: 126/1998a: 99).


22) 현존재의 시간성과 관련해서 재진술하면, 초월은 운동으로서, 그것에 의해 현존재가 그것의 ‘기재’(having-been, gewesend)의 차원으로부터 나와 그것이 끊임없이 움직여 들어가는 ‘도래’(futural, zukünftig)의 장으로  (Heidegger 2006: 385/1962: 437; italics removed). 즉 ‘초월’은 현존재의 시간성의 구조적 역동성이라고 불리워진다.  


23) 유사하게 하이데거의 현존재에 대한 실존론적 분석론은 초월의 과정에 관한 어떤 사유를 제공하지만, 그는 특히 현존재의 존재의 탈은폐와 결과적으로 보다 큰 본래성의 탈은폐에서 초월이 수행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진다.  


24) 로트망이 어째서 지성의 노고가 여기서 변증론적 이념들에 적합할 것이라고 제안하는지 그 이유는 불확실하다. 우선 변증론적 이념들은 수학 이론들에 의해 재현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간의 어떤 적합성도 이 개념이 이해되는 바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 만약 적합성이 표상적인 의미로 취해지지 않고, 주제적 문제의 포괄적인 표명으로 취해진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남을 것이다. 왜냐하면 로트망의 사유에서 변증론적 이념들은 본질적으로 문제적이며, 언제나 수학 이론에 의한 그것들의 표명을 초과하거나 초월하기 때문이다. 적합성의 (불가능한) 경우에서 변증론은 수학과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대신에 발생적 실행과 변증론적 이념들의 내적 연결들에 대한 ‘앎’은 어떤 진행적인 것, 즉 열린-결말을 가진 진행이며, 거기서 변증론의 차원들은 구조적 필연성에 따라, 그것을 표명하는 수학 이론들을 항구적으로 넘쳐 흐른다(이것은 하이데거적 초월의 논리에 의해 도출되는 결과이다).    


25) 로트망의 하이데거 프랑스어 판본 인용문은 코뱅의 번역본인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metaphysique?)에서 발견된다(Heidegger 1938: 56). 뒤피는 말릭(Malick)의 「근거의 본질에 관하여」 개역판본을 사용한다. 텍스트의 표준형은 ‘Heidegger 2004a: 131/1998a: 103’에서 발견될 수 있다. 나는 말릭의 ‘entity’를 ‘being’으로 모두 대체한다.   


26) 이 단락에서, 로트망은 ‘Heidegger 2004a: 131/1998a: 103–4’를 인용하고 있다. 


27) 하이데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문에 대해 여러 텍스트들에서 길게 논한다. 그것들 중에는 『철학에의 기여』도 속하는데, 이 질문이 철학에 기여하는 지향점은 형이상학의 문제적 역사를 지배하는 어떤 본질적인 요인이다. 비록 현존재의 실존론적인 분석을 경우하여 기초 존재론에 이르는 하이데거의 초기 저작이 이것에 의해 틀을 잡는 것으로 보인다 해도, 자기-비판은 1930년대에 시작되어 그것에 독립적인 존재론적 근거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었다. 


28) 이와 유사하게, 사태들의 존재적 상태에 관한 변조는 존재론적 구조들의 보다 적합한 이론적 표명을 허용할 것이다. 만약 자본주의의 가치들과 관련된 나의 실존을 정의하고 내 시간을 은행일로 사용지 않고, 나 지신을 현존재로 이해하면, 나는 아마도 철학적 삶을 향해 나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며, 이에 따라 존재에 관한 더 좋은 사유를 전개하게 될 것이다.  


29) 마찬가지로 패든이 “잠재적인 것과 현행적인 것은 (...) 그의[들뢰즈의] 체계에서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차이에 대한 하나의 번역으로 수행된다”라고 논증하는 것에 주목하자(Peden 2014: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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