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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정 Cathy K Mar 10. 2020

양양에서 한달살기

신선 뺨 후려갈기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

8 P.M.

해가 질 때쯤, 작업하던 노트북을 덮고 하염없이 바라본다.

상상도 못한 색채로 빛나는 하늘에 흠뻑 젖어 바라보다 보면 정말인지 시간이 멈춘듯한 기분이 든다.


하늘을 덮고 잔다는 말이 있는데 이렇게 예쁜 걸 덮어도 되나 모르겠다..


디지털 노마드.


    사실 이게 디지털 노마드인지, 아님 그냥 먹고 노는 신선 놀음인지 모르겠다. 사무실 시계만 1분에 한 번씩 노려보고 앞에 놓인, 이미 몇 잔을 마셨는지도 모를 커피잔에서 카페인을 수혈하며..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가' 고민하던 때가 무색할 정도로 놀라우리만치, 일을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님 정말 일을 안 하는 걸지도.. 아마도, 차들로 빼곡한 서울 시내를 좁디좁은 회색빛 사무실 창문에서 바라보며 10시고 11시고 퇴근 못하던 몇 몇 사람들이 '탈조선'이니 '워라벨' 따위의 핑계를 대며 그럴싸한 이름을 붙인 것이 '디지털 노마드'의 시작일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같은 키보드를 두들길 진대, 이런 절경을 누릴 수 있다면 한 번 거꾸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 우리는 이런 하늘 아래, 발 아래는 파란 바다를 두며 일할 수 있음에도 굳이 매연과 미세먼지와 열로 가득찬 서울을 굳이 고집하냐는 말이다. 인터넷을 넘어 모든 게 과도하게 연결된 '초연결'의 4차 산업 혁명 시대라면서? 그러니까, 안 그래도 되는데 왜 우린 빼곡한 유령들 사이에 출퇴근의 고통을 겪는 미생이 되어야하는가.  



타이밍.


    몇 번이고 노트북을 키고서는 엑셀과 PPT 조금을 만진 후, 이만하면 되었다 싶었다. 다들 일하다 보면 감이 생기지 않나. 이 정도 하면 되었다, 하는. 그러나 사무실이었으면, 아직 퇴근 안 하신 부장님 때문에, 팀원들 때문에, 부하 직원 때문에, 아마 어디 나가기 눈치 보였겠지.


    그러나 여기는 바닷가고, 나는 디지털 노마드인지라. 자유로운 영혼을 마음껏 해방할 수 있다. 밤 10시, 해가 이미 저물고도 반 시경이 지났을진대, 나는 바다에 들어간다. 왜 들어가냐 물으신다면, 그저 바다가 앞에 있기 때문인데, 아무도 없는 바다에 작업하던 옷 그대로 들어가면 벌거벗는 것 이상의 어떤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그 어떤 쾌감.


    타고나기를 부엉이 자고 난 다음에 자는, 초야행성 동물이라 내 생애 단 한 번도 아침 운동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 그토록 지난 몇 년간 '아침형 인간'에 대한 찬사와 맹신의 흥분이 전세계를 지배했으나 나는 휩쓸리지 않았다. 그만큼 소신있는 인간이 아니라, 어쩌면 나는 그냥 '아침'. 그게 안 맞는 거다. 받아들이자 좀. 그냥 '아침'이 안 맞는 인간이 있다.


저녁형 인간도 이해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은 여린 생물이다


    정말인지 말하건대, 나는 게으르지 않다. 오히려 엄청나게 부지런한 축에 속한다.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으니까. 그러나 나는 직장에 잘 적응하는 법이 없었다. 일은 잘하고, 똑똑하다는 소리도 깨나 들었으나, 항상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조금만 성실했으면 완벽할텐데..' 솔직히, 화난다. 아침에 일 잘하는 사람이 있는 만큼  나는 새벽까지 일 잘한다. 정말인지 그렇다. 그 '성실'의 척도가 왜 대체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는지여야 하는지 정말인지 나는 개탄스럽다. 나는 정말인지 아침과 밤의 IQ가 다르단 말이다.


    디지털 노마드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사실 서핑이었지만, 그로인해 가장 크게 느낀 해방감은 '아침으로부터의 탈피'였다. 우리나라에서 '아침'이란 단어는 '성실'과 동의어로 쓰이며, 때로는 '능력'과도 직결되어 생각된다. 양양의 '아침'은 나를 평가하는 법이 없었다. 일찍 일어나는 댓가로 37도 날씨에 그보다는 조금 낮은 36도짜리 체온으로 가득찬 지옥철에 올라타는 대신, 나는 호기롭게 일어나 바다에 입수했다.  잠옷 그대로.


응 그래 이거지.


    생각한다. 왜 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YOLO라며, 2030들이 각자의 소박한 행복을 찾고 취미를 찾아 떠나지만 여전히 우리 하루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일'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 생활 역시 크게 바뀌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한 번쯤 던져볼 질문은 이것이다.

"왜, 우린 이렇게 '일'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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