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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정 Cathy K Mar 19. 2020

원격근무 예찬

한 번 맛보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본격적으로 원격근무를 예찬하고 이를 한국에도 널리 널리 전파하고자 하는 영업 글입니다!>


원격근무 3주 차, 도대체 이전에는 어떻게 일을 했나 모르겠다. 온갖 훼방꾼과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직장인 노예의 굴레로부터 해방된 지금,


나는 너무나도 행복하다.


나는 이미 2018~2019년 1년간 원격 근무로 근무해왔다.

온라인으로 내 사업을 6개월 간 운영했으며, 싱가포르의 투자사에서 사업개발팀으로 6개월 간 근무했다.


일을 하면서 싱가포르, 호찌민, 쿠알라룸푸르, 자카르타, 발리, 심천, 워싱턴, 뉴욕을 다녀왔으며  4 나라에 있는 최고의 팀원들과 함께 일을 했다. 남자 친구와도 평균적으로 주 3~4일 정도는 같이 보내는 것 같다. 남자 친구도 완전한 디지털 노마드라, 함께 아침과 밤에 일을 해두고는 오후에 시간을 보내고는 한다.



디지털 노마드의 하루  


6AM

보통은 오전 6~11시 정도에 눈을 뜬다. 전날 늦게까지 일을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아침 명상을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내리러 간다.

커피를 원체 좋아하는지라, 집에는 온갖 종류의 홈카페 재료가 구비되어 있다.

집에서 해먹는 커피가 제일 맛있다


6:15 AM

커피 한 잔을 내리고, 내 작업 공간으로 간다.

작업 공간이라고 해봤자, 거실의 넓은 식탁 위에 자리를 잡고서는, 음식 및 커피와 뒤섞여 노트북을 피는 것이 고작. 장기전을 하기 위해서는 1L짜리 물병은 필수다.  

아침 이른 시간에 작업을 하고 있으면 자고 있던 강아지가 나와 반겨주고는 하는데, 이리저리 포즈를 뒤바꾸어 가며 낮잠을 자는 모습을 보는 것도 꽤나 쏠쏠한 재미를 준다.


6:30 AM

이제 앉아서 노트를 피고서는 하루 일과를 짠다.

사실상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데, 나는 하루 일과를 80% 이상 그대로 지키는 편이기 때문에 여기서 그 날의 업무량과 내용이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과를 짠 이후에는 이메일과 카톡 등을 확인하고, 비로소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아침밥을 만들러 주방으로 향한다.

주로 해먹는 건 건강식(?) 종류다

7AM

요리하는 걸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라, 하루 세 끼나 만들어먹는 건 가끔 버겁지만 나는 요리하는 과정 자체에서 상당한 행복을 느낀다. 애초에 밖에서 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을 잘 사 먹지 않으려 하는 편이라, 점심시간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갈 때면 상당히 신경 쓰이고는 했었다. 이런 영양소의 균형을 죄다 무시하고 때려 박은 음식이라니. 먹고 앉아만 있으면 일주일 만에 아랫배가 나오고는 했었다. 그렇다고 사무실에 혼자 남아 샐러드나 내가 싸온 음식을 먹기에는 상당히 외롭다는 거. 그런 점에서 완전히 내 식단에 대한 자율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내게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9AM

날씨가 좋은 날이면 노트북을 들고는 카페나 공원으로 나간다. 요즘은 정말 예쁜 카페가 많아서, 곳곳에 숨겨진 카페를 찾아내는 맛도 있다. 고즈넉한 공간에서 평일 오후에 향이 좋은 커피와 함께하는 작업시간이란 정말 행복 그 자체다. 대부분의 경우 사실 일이 힘든 건 아니다. 일을 하는 환경이 힘들었던 거지. 고로 환경이 바뀌면 일을 하면서도 굉장히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직장을 나오고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가 있었다. 거지 같은 인간관계와 답답한 사무실 칸막이를 걷어내고 나면 순수한 성취감만 남는다.


내가 사랑하는 작업 공간 중 하나

1PM

보통 오전 시간과 점심 먹은  1~2시간 정도를  집중하면 웬만한 업무는 끝이 난다. 직장이 어지간히 비효율적인 것이 아닌 게, 직장에서는 8시까지 근무해도 못 끝냈을 분량을 집에서는 오후 2시 정도에 다 끝낼 수 있다. 아마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혼자 일하는 게 정말 잘 맞는 것 같다.


4PM

오후에 약속이 없는 날이면, 잠시 스쿠터를 끌고 드라이브를 나간다. 평일에는 인기 많은 거리도 한산하다. 바람도 쐴 겸 이모저모 둘러보며 저녁 장을 본다. 때로는 남자 친구나 친구들과 통화를 하며 나른하게 보낸다. 낮잠을 자기도 한다. 오후 4시 정도에 하는 독서가 정말 꿀이다.


주로 이쪽에서 조깅을 한다

8PM

오후 8시 정도에는 주로 운동을 나간다. 주로 집 앞 한강변에서 3~5KM 정도 조깅을 하는데, 사실 이전 직장에서라면 꿈도 꿀 수 없던 일인 것 같다. 월급도 별로 안 주는 주제에 집에 일찍 가면 괜히 미움받는 엄청난 곳이었다.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건 때로 아주 외롭다고 하는데, 나도 이에 대해 부정하는 바는 아니다. 나도 발리에서 한 달 동안 홀로 살아갈 때 때로 외로웠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가족도 있고, 남자 친구도 친구들도 강아지도 있어서 외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직장에 매일 같이 있을 때는 부담스럽던 얼굴들이 조금 그립기까지 하다. 슬랙과 카톡, 이메일로 어찌 보면 절제된, 필요한 의사소통만 한다는 것은 일종의 전우애를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보고 싶지 않은 얼굴과 받고 싶지 않은 간섭 없이 내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하루. 내게는 너무 소중하다.



VS 한국 아주 보통의 직장인의 하루


3개월 정도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한국 회사에서 보통의 직장인 생활을 했었는데,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숨 막히는 우울한 생활이었다.


출퇴근 시간의 고통 : 모르는 생판 남들과 살 부비며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1~2시간의 순수한 고통.

불편한 의자와 업무 환경 : 괜히 뒷자리에서 내 모니터가 보이는 것 같다..

굉장히 별로인 공장식 커피 : 카X, 맥X, 기껏해야 네스프레X 이런 것들만 먹어야 한다니 위장의 수치다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아저씨 음식 : 왜 그리들 해장하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별로 친하지 않은데 친한 척해야 하는 직장 동료들 : 모든 사람들이 내 입맛에 맞을 수는 없는 일이지, 사회생활은 뭐 그런 거지, 하고 넘기려 해도 난 불편한 걸 어떡해.

굉장히 쓸데없는 잔소리를 해대는 직장 상사 : 괜한 노파심에 한 마디씩 더 하게 되나 보다.

집중하려던 참에 때맞춰 오는 업무 요청이나 번개 미팅 : 제각기 급한 대로 요청하기 때문인데 이 잠깐의 요청 때문에 집중과 흥이 깨져 버린다.

불필요한 보고와 형식을 위한 미팅 : 보고를 위한 보고, 미팅을 위한 미팅이 많다. 보고와 미팅은 일이 아니다.

잡담으로 늘어지는 회의 시간 : 괜히 딴 얘기로 한 번 빠지면 한없이 흘러가버리는 회의 시간과 늦어지는 퇴근 시간.

괜히 눈치 보여하지 못하는 퇴근 : 옆자리 사람들이 모두 안 가는데 혼자 가면 나쁜 놈 되는 것 같다.

내 취향과 동떨어진 회식과 마셔야 되던 맛없는 술 : 난 술을 안 먹고 싶고, 술을 먹어도 좋아하는 사람 하고만 먹고 싶다. 체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소맥을 들이부으며 간신히 잡고 있는 정신줄이라니, 술값이 아깝다.

일주일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남자 친구 및 친구들 얼굴 : 항상 내 인생의 행복을 놓치고 있는 기분.


총체적으로 난잡하고, 답이 없고, 암울하기 그지없는 환경이랄까.

아침에 눈 뜨고 싶지 않아 지는 환경이랄까.

이런 환경에 적응하고 또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 직장생활을 잘하는 것이라면 나는 사양하고 싶다.

결국 두 개의 회사를 거쳐 3달 정도 근무를 간당간당 채우고는 다시 리모트 근무로 돌아와 버렸다.


대부분의 원격근무를 경험한 직장인은 다시는 원래 생활로 돌아가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이번 코로나 사태를 빌어 우리나라에도 건강한 원격근무, 유연근무 문화가 정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원격근무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직장 생활이 너무 안 맞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선택지니까. 부디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회사가 더 많아지길 바라본다.


원격근무에 대해 더 얘기하고 싶은 사람은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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