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도 달라진 우리의 일상
아침 8시, 느지막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커피를 내리러 발길을 옮긴다.
침대에서 아침 명상을 한 뒤, 커피를 들고 정돈된 내 책상으로 향한다.
노트북을 켜면 출근 끝. 우리 회사는 오늘로 거의 3주째, 재택근무를 실시 중이다.
우리는 아마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예요 (트위터 인사총괄)
처음에는 한국만 X된 줄 알았더니 WHO의 팬데믹 선포, 엊그제 미국의 비상사태 선포 등 국제적 빅뉴스를 이끌어가며 그야말로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기승이다. 전례 없던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에 반강제적으로 전례 없던 원격근무, 유연근무 돌풍이 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반대면 업무라 여겨지던 콜센터에서 사상 처음으로 유연근무를 도입하고, 수많은 대기업이 전원 재택근무를 선포했으며, 정부가 이를 전면적으로 지원함을 선포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특히나 대면 업무시간이 중요하던 대한민국 작업 현장에서 바로 이 작은 코로나가 우리의 상식과 전통을 180도 뒤엎어 버린 것이다.
1월, 중국에서 위챗, 텐센트, 알리바바가 전사원 원격근무를 선언했다.
2월, 한국에서 카카오, 네이버가 전원 원격근무를 선언했다.
3월, 해외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전원 원격근무를 선언했다.
한국에서만 최소 십만 명, 세계적으로는 몇 백만 명이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본격적인 '원격 근무'에 돌입하게 됐다. 21세기에 치료약도 없는 펜데믹이라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 벌어짐으로써 대부분의 기업과 직장인들은 아무런 준비나 경험 없이 갑작스레 전원 '원격근무'라는 어마어마한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원격근무', '유연근무', '재택근무' 등 부르는 이름은 다양하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우리가 일을 하는 '장소'가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는 것. 어떤 사람들은 집에서, 많은 사람들은 카페에서, 코워킹에서, 심지어는 다른 나라에서 일을 한다. 일을 하며 전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을 '디지털 노마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때 '이상주의자 히피들의 반란' 정도로 여겨졌던, 지나갈 것이라 생각했던 이 '원격근무' 트렌드가 코로나를 만나 불이 붙었다. 이번 본격적인 '원격근무' 대란으로 인해, 전문가들은 어쩌면 전 세계적으로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예측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원격근무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기업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전사원이 원격근무로 일하는 경험을 최소 1달 이상 가지게 되면서 이에 대한 객관적으로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이 코로나 덕분에, 우리 모두가 직장 다니면서 한편으로는 꿈꿔왔던 디지털 노마드 생활이 앞으로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카카오, SKT “코로나 끝나도 재택근무하라” 원격근무 본격 전환 움직임 :
카카오는”앞으로도 채용 면접을 취소하지 않고 화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카카오는 원격근무 종료일을 아예 정하지 않기로 했다. 여민수·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는 "이번 기회에 카카오의 업무 툴 '아지트'와 카카오톡을 활용해 업무 공개·공유·소통 문화를 안착시키면 '스마트 오피스'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마도 가장 달라질 것은 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다. 기존에는 아무런 질문 없이 아침부터 몸을 맡기던 지옥철에서 이렇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굳이 만나서 하지 않아도 잘만 돌아가던데.. 나는 사무실에 왜 가야 하는 걸까?' 하고 반문하게 되는 것. 원격근무라는 것의 효용을 깨달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98%의 사람들이 원격근무를 한 번 맛을 본 뒤에는 기존에 일하던 9 to 6+ 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다고 한다. (레딧)
코로나 이전에도 미국의 43%가 넘는 사람들이 원격근무로 일하고 있었다. (2016년 Gallup 조사)
93%의 테크 업계 종사자들은 부분적으로라도 원격근무를 희망한다. (2020 Salary Report, Dice)
이러한 추세에도 불구하고 30%의 기업만이 이러한 원격근무 도입에 대비되어 있다고 대답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원격근무를 하는 사람의 수는 약 3배가량 증가했다. (Flexjobs)
원격근무 및 디지털 노마드에 관한 논의는 2007년 나온 티모시 페리스의 '나는 4시간만 일한다'가 대대적으로 유행하며 진행되는 듯했으나 2020년 현재, 과반수의 기업들은 아직 원격 업무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밀레니얼들의 격한 환영과 이번 코로나로 인한 인식 변화로 인해 원격근무 도입 속도는 점점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의 흔한 통념과는 반대로, 수많은 글로벌 유니콘들이 기업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원격근무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이 중 100% 원격 근무를 하는 회사들을 모아보았다. 대부분은 소프트웨어를 판매한다.
오토매틱(Automattic): 전 세계 웹사이트의 24%를 차지하는 워드프레스를 개발하는 회사로, 40개국의 400명 이상의 직원이 전원 원격으로 근무하고 있다.
깃랩 (Gitlab): 전 세계 65개국에 1000명 이상의 직원을 가지고 있는 깃랩은 직원 1인당 매출이 120억에 달하는 높은 수익성을 자랑한다.
두이스트(Doist): Todoist와 Twist라는 서비스를 운영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2천만 유저를 보유하고 있으며 전 세계 25개국에서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버퍼(Buffer): 전 세계적으로 77,000명의 유저를 보유하고 있으며 22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냈다.
저희 회사에서는 40%의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함으로써 일인당 연간 1200만 원 정도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 CBRE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하지 않고도 최고의 인재들을 영입할 수 있었던 것은 원격근무 제도 덕분입니다 - Automattic
69%의 미국 직장인들은 유연근무 여부가 직장을 선택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응답했다. (Flexjobs)
15%의 남성들과 21%의 여성들은 원격근무가 가능할 경우 연봉을 줄일 수 있다고 응답했다. (PwC)
54% 의 미국 직장인들은 유연근무가 가능하다면 직장을 옮길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Gallup)
89% 구직자들은 업무의 자율성 (원격근무 및 유연근무 가능 여부)가 연봉보다 직장을 결정할 때 더 중요한 요소라고 응답했다. (Glassdoor)
100% 원격근무는 생산성을 평균적으로 4.4% 향상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 노스이스턴 대학 공동연구)
43%의 직장인들이 유연근무가 스트레스 해소 및 정신 건강에 효과적이라고 응답했으며 38%가 워라벨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딜로이트)
65%의 응답자가 재택근무 시 기존 직장에서 근무하는 것보다 훨씬 작업 효율이 좋다고 응답했다.(FlexJob )
이 원격근무란 것, 잘만 활용한다면 전 세계로부터 좋은 인재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빨아들이고, 사무실 비용도 아끼고, 업무 효율은 높이는, 그야말로 세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 방안이 될 수 있다. 2030년까지는 75%의 오프라인 오피스가 사라지게 된다는 전망도 있으니,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 사장님이라면 이번에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한 옵션이라고 할 수 있다.
저는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가 아닌,
얼마나 일을 잘했는지에 대해 자랑했으면 합니다.
(Jason Fried – Basecamp CEO)
원격근무를 도입한다는 것은 단순히 일을 하는 장소가 다양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충 시간 때우며 스쳐 지나가던 월급루팡들이 생존의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뜻한다. 대충 앉아서 일 하는 시늉을 하면 하루가 갔던 평소와는 다르게도, 모든 소통, 모든 업무가 문서화되어 기록되는 원격 업무 제도 하에서는 모든 성과가 철저히 실적에 의해서 평가된다. 명백하게 내가 얼마만큼의 일을 했는지 기록으로 드러나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일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만 했다면, 그리고 이를 잘 평가할 수만 있다면 직원들은 훨씬 더 효율적으로 일하게 된다.
이번 경험을 통해 기업들과 직원들은 느끼는 바가 클 것이다. 사실 2020년 현시점에서 대부분의 업무는 사무실에 있어도 채팅, 이메일, 문서 서비스 등을 활용하여 '원격'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장소가 집이 된다고 한들 대부분의 경우 아무 문제가 없다. 실제로 현재 다양한 커뮤니티에는 원격 업무 이후 일 효율이 늘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문화적인, 제도적인 차이 이외에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인식뿐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빌어 부디 한국에도 보다 유연한 근무 형태가 하나의 선택지로서 자리잡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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