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방법, 채용 과정 후기
토종 한국인이 실리콘밸리에서 일한다는 것, 상당히 어려운 일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 일이 내게 얼마 전 현실이 됐다. 심지어 난 개발자도 디자이너도 아닌데 말이다. 심지어 난 코로나로 인해 근 한 달간 밖에 나간 적도 없다. 순수하게 집 방구석에 처박혀서 3주 만에 연봉을 두 배로 올렸다. 정말로 2020년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이직을 결심한 지 약 3주 만에 실리콘밸리에 있는 한 IT 회사로부터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보수는 보너스까지 합하면 이번에 두 배 정도 올랐다. 혹시 미국 회사로, 혹은 전원 원격근무인 회사로 이직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까 싶어 글로 남긴다.
지긋지긋한 출퇴근 고통에 시달린 지 약 3개월째 정도 되는 날, 나는 결심했다. 이런 일은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물론 비단 출퇴근 고통뿐만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출퇴근은 나에게 굉장히 크나큰 이슈였다. 지옥철에서 하루 2시간 모르는 사람들과 살을 비비며 시간을 허비하느냐 택시를 타며 월급을 날리느냐 중 나는 한 달 근 60~100만 원 가까운 비용을 택시비로 날리는 선택을 해왔다. 약 두 달 전, 코로나가 터졌지만 우리 회사는 결코 재택근무 따윈 고려하지 않았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니다 싶어서 나는 홧김에 이직을 준비하게 되었다.
아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직장인이라면, 특히 이번 코로나를 통해 재택근무를 경험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재택근무가 얼마나 편한지. 출퇴근의 고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직장의 불필요한 인간관계, 업무 스트레스, 비효율 등이 사라지고, 나 혼자 집중하는 시간만 남는다. 게다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원하는 곳에서 원할 때 일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라이프스타일 혁신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가 끝나면 원래대로 사무실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일부 회사에서는 365일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워드 프레스를 운영하는 오토매틱, 업무 툴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베이스캠프 등의 탑티어 IT 회사들은 글로벌 인재 유입, 사무실 비용 절감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수 년째 100% 전사원 원격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이런 회사들에 대해 들어서는 알고 있었지만, 나도 실제로 내가 채용이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번 글을 통해 간단하게 이런 회사들이 어떻게 채용하는지, 채용 과정은 어땠는지 간단히 풀어보도록 하겠다.
이번 이직에서 나는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1. 전원 원격근무로 근무하는 회사일 것
2. (문화적,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회사일 것
3. 월급은 지금보다 많을 것
사실상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워낙에 불안정하고, 박봉이었기 때문에 2, 3번을 충족하기는 꽤나 쉬웠다. 다만 1번이 문제였다. 한국에서 원X드, 사람X 등을 통해 자리를 찾아보았지만 원격 근무를 시행하는 회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원격 근무라고 쓰여있어도 자세히 살펴보면 '복지 차원'에서 한 달에 한 번 원격근무를 하게 해 준다던가, 혹은 그조차도 리뷰를 살펴보면 '사실상 쓸 수가 없다'라고 쓰여있는 경우들이 많았다. 한국에는 그러니까 제대로 된 원격근무 회사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각해보니, 원격근무라면 굳이 한국 회사에서 일할 필요가 없었다. 원격근무를 구글에서 검색하다 보니 원격 근무로 일할 수 있는 여러 회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경우야 위에서 언급한 미국계 IT 회사들이지만, 일부 스타트업들에서도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서 인재들을 채용하고 있었다. 개발자라면 사실 원격으로 일을 구하기가 상당히 쉽지만, 나는 그야말로 고졸 문과 출신이라는 큰 제약(?)이 있지 않는가. 특별한 기술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사실상 그럼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로 좁혀진다. 사업 개발, 매니지먼트, 디지털 마케팅, 콘텐츠 제작자, 애널리스트, 고객 지원 정도? 이 중 난이도가 좀 있는 업무들은 대부분 경력직이므로 사실상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또 하나, '유연근무 허용'이나 '재택근무도 허용'이 아닌 '전원 원격근무' 회사만 고집한 이유는 이렇다. 일부 사람들만 원격 근무를 하는 경우에는 직장 내 승진이나 평가, 심지어는 보수에 불이익이 있는 경우가 많고, 무엇보다 기본적인 기업 문화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원격 근무하는 사람들이 소외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가 원격 근무를 하는 것과 전원 원격 근무를 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나는 좋은 원격 근무 문화를 지닌 곳을 최우선 순위로 삼았다.
해외 원격근무 채용 플랫폼은 몇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내가 알아보고 사용해본 바로는 대략 다음과 같다.
플랫폼 별로 올라와 있는 잡이 매우 다르다. 거의 겹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약 4-5개 홈페이지를 돌려가면서 서칭하고 하루 평균 2개 정도 지원했다.
* '리모트' 필터 그리고 '서울'지역 필터를 걸어야만 한국 시간으로 원격 근무를 할 수 있는 회사들이 나온다. 많은 회사의 경우 '미국 시민만 가능'하다는 조건을 걸고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1) Glassdoor - 대기업 위주이며, 모든 종류의 잡이 다 올라오지만 '리모트' 필터를 걸면 원격 근무로 일할 수 있는 회사 리스트가 나타난다. 종류는 적지만 퀄리티가 높고 정보가 체계적이다. 나는 여기서 일을 구했다.
(2) LinkedIn - 가장 흔하게 쓰는 채용 플랫폼이나 주로 경력직 위주다. '리모트' 필터가 그리 정확하지는 않으나 잡 종류가 많고 퀄리티가 높다.
(3) RemoteOK - 오직 100% 원격근무 가능한 채용 정보만 올라온다. 중소기업 위주로 올라오는 듯하다. 다만 소규모 회사들의 경우 채용 체계가 잡혀있지 않아서 진행 과정에 대한 안내가 거의 없는 편.
(4) Weworkremotely - 이곳 역시 상당히 오래된 100% 원격근무 전문 채용 플랫폼이다. 정보가 생각보다는 많이 올라오나 중소기업 위주로 올라온다.
(5) Flexjobs - 채용 정보가 가장 방대하다. 그러나, 경력직 위주이며 미국 시민 위주이다. full remote 보다는 유연 근무를 시행하는 회사들이 다 올라와 있다고 보는 편이 맞다.
(6) remote.co - 써보지는 않았지만 이곳에도 상당히 채용 정보가 많이 올라오는 듯하다.
(7) workingnomads.co - 신규 서비스. 이메일로 원격근무 채용 리스트를 보내준다고 한다.
해외 회사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력서와 커버 레터를 보내야 한다. 나 같은 경우 이력서는 3장 정도로 간단히 정리해뒀고 (약 1-2시간 소요), 커버 레터 같은 경우 그때 그때 작성했다. 원격 지원하는 회사들의 경우 각자 채용 페이지가 있어서 커버 레터 없이 질문들에만 답변하면 되는 경우도 많았고, 일부의 경우 지원 이유를 비디오로 1-2분 정도 녹화해서 업로드하라는 요청이 있었다. 링크드인은 물론 잘 정리해놨다면 언제나 유용하지만 필수는 아닌 듯하다.
지원 이유와 같은 경우 공통적으로 물어보는 질문들이 있었는데, (1) 지원 이유가 무엇인가요? (2) 연관 있는 경력이 무엇인가요? (3) 리모트로 일해본 적이 있나요? 얼마나 원격 근무에 대해 이해하고 있나요? 세 가지 정도였다.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질문이며, 향후 면접을 가는 경우에도 이에 대해 더 자세하게 물어보니 준비해놓으면 여러 군데 써먹을 수 있다.
그 외에는 상당히 간단했다. 하루 30분 정도 투자하면 2군데 정도 지원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대기업의 자소서와는 달리 상당히 짧게짧게만 작성해도 괜찮기 때문에 지원 자체는 만만한 편이었다.
내가 최종 합격한 회사의 경우 이력서 지원 시점부터 최종 합격까지 약 3주 정도가 걸렸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전 과정은 원격으로 진행됐다.
(1) 서류 (결과까지 3일) - 자체 홈페이지에서 문답식으로 작성하는 방식이었으며 이외 이력서와 링크드인 주소를 요구했다.
(2) 서면 시험 (결과까지 3일) - 약 1~2시간 정도 소요됐던 오픈북 테스트. IT 회사였기에 직무 관련 지식을 테스트했다.
(3) 인사팀 면접 (약속 잡는데 일주일, 결과까지 1일) - 약 40분~1시간. 나 같은 경우 1시간 20분 동안 미국에 있는 인사팀과 화상통화로 면접을 진행했다. 새벽 시간에 진행했기에 화상 통화는 아니고 음성으로만 진행됐다. 질문 내용은 주로 개인적인 이력과 삶, 이직 이유 등에 대해 자세히 물어봤다. 압박 면접과는 거리가 먼 상당히 훈훈하고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4) 슈퍼바이저(팀장) 면접 (약속 잡는데 일주일, 결과까지 3일) - 약 40분~1시간. 이 역시도 1시간 조금 넘게 진행됐는데, 팀장급 2명과 음성으로 진행됐다. 주로 해당 직무에 적합한 사람인지 평가하는 질문과 업계 지식에 대해 평가했다. 이 역시 상대적으로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팀장들은 유럽에 위치해있어 이 역시 밤에 진행되었다.
(5) 최종 합격 통보 및 오퍼 콜 - 약 20분, 레퍼런스 체크 및 백그라운드 체크, 그리고 오퍼에 대한 상세 내용 안내를 위해 또 다른 통화를 진행했다.
전원 원격근무인 회사에서는 이렇듯 모든 채용이 원격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회사의 장점은 일을 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이사하고, 내 가족, 친구, 연인과 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 외에도 비자 문제 같은 복잡한 문제와 직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있다. 특히 요즘 F1 비자 등이 발급이 어려워서 미국에 있는 유학생들도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기회를 활용해볼 수 있지 않나 싶다. 또한, 채용 과정이 전부 컴퓨터 하나로 이뤄지기 때문에 현재 직장을 다니면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취업을 준비할 수 있다. 미국까지 괜히 면접 보러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없어져 비행기표 부담도 덜 수 있다.
이렇게 채용의 전 과정을 거치면서 느끼게 된 것은 생각보다 채용이 상당히 쉽고 간편하게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원격으로만 진행하고, 얼굴을 보고 진행하는 것도 아니다 보니 복장이나 격식 같은 것을 차릴 필요도 없이 집에서 커피 한 잔 하며 편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기업마다 자소서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어서 이력서 한 번 만들어 둔 것으로 상당히 편하게 여러 곳에 지원할 수 있었다. 하루 30분 정도 투자하면 일을 구할 수 있는 것 같다. 다만 채용 과정에서 최소 3주, 채용이 결정된 후 일을 시작하기까지 또 몇 주가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얼마간의 여유 자금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준비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실상 업무용 영어는 그리 고급 영어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만 노력하면 해외에서도 충분히 일을 구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이번 이직을 시도해본 결과 한국인이라는 제약도, 고졸이라는 제약도, 문과라는 제약도, 길지 않은 경력의 제약도 물론 있기야 있을 테지만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면접에서도 내가 먼저 나는 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고 먼저 말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미국 회사에서 일해서 좋은 것은 USD로 월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미국 회사가 상대적으로 한국보다는 보수가 높은 편이라, 물가가 상당히 비싼 편인 한국에서 생활한다고 한들 한국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높은 생활수준을 즐길 수 있다. 향후에는 베트남 등 물가가 싼 동남아로 옮겨 살 예정이라, 그때는 보다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같은 때에는 환율이 높아질수록 연봉이 같이 올라간다는 장점도 있다.
또 하나 느낀 점은 채용 과정 자체에서 기업 문화가 벌써 마구 느껴진다는 것이다. 고작 세 명의 직원들과 이야기해봤지만, 세 명 모두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편하게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또 전원 원격 근무인 회사기 때문에, 다들 자기 집에서 커피 한 잔 하며 전화하는 것이었는데, 양복을 입고 격식 차려 긴장 잔뜩 하고 가는 한국 회사 면접과는 그 결이 사뭇 달랐다. 정말 친한 친구와 커피 한 잔 하며 이야기하는 느낌? 세 명 중 한 명은 디지털 노마드로 전 세계를 여행 중이어서 다양한 생활상을 들을 수도 있었다. 글라스 도어(Glassdoor)의 기업 평가 점수나 리뷰를 보면 꽤나 정확하게 기업 문화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는 듯하다. 지원 전에 꼭 한 번 체크하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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