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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정 Aug 14. 2020

100억 벌면 뭘 할 거예요?

여행하듯 사는 삶, 제가 지금 살고 있습니다만


"100억을 벌게 되면 가장 먼저 뭘 할 거예요?"


100억 정도의 돈을 벌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정말로 내 통장에 100억이 들어있다고 생각하고 바로 떠오르는 생각을 솔직하게 적어보자. 눈치 보지 말고, 미래 생각하지 말고 나에게 시한부 인생이 주어져있다고 생각하고 써보는 것이다. 정말로 지금 당장이라도 튀어나가서 하고 싶은, 꿈만 꿔왔던 불가능한 상상이 무엇인가?


나는 사실 이 질문을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했었는데,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중 공통되게 나왔던 답변은 하나 -


여행.


이렇게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단어가 있을까? 누군가는 여행을 하기 위해 오늘도 출근을 하며 돈을 모으고, 누군가는 일 년 내내 모은 그 돈을 들고 여행길 위에 오르고 있을지 모른다. 여행을 위해 퇴사하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대학생 때 모두들 한 번쯤 가봐야 한다고 이야기하듯, 돈을 많이 벌면 가장 먼저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여행. 그 두 글자가 주는 설렘은 남다른 것 같다.


뉴욕, 런던, 발리 등 세계 곳곳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고는 하는 나를 보며 우리 엄마는 부러운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했었다. "나도, 24살 때 뉴욕에 갔었는데... 그때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 다닐 수 있을 때 많이 다녀 여행."


이 얘기를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왜 나이를 먹으면 여행을 갈 수 없게 되는 걸까?


아마도 직장을 가졌기 때문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아이가 있어서. 나이를 먹으며 다양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우리를 덮치기 시작하고, 우리는 그 거센 물결에 휩쓸려 버리는 것일 테다. 그래서 유독 '젊을 때'를 강조하며, 대학생들은 무엇에라도 홀린 듯 '꼭 가봐야 하는 유럽여행'을 떠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이렇게 자유로운 것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주변에서 그런 삶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2020년, 은퇴할 때까지 한 곳에 틀어박혀 일만 해야 했던 그 세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0원으로도 하루 1-2시간 투자를 통해 온라인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 왔다. 배 위에서도, 숲 속에서도 원격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모두 알아버리게 되었다. 사실 모든 건 원격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제주도에서 아침마다 말을 타고, 낮에는 다이빙을 하며 틈틈이 해변가의 힙스터 카페에서 업무를 보면서도 월급은 미국에서 받고, 원격으로 스타트업을 만들며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의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것이 가능해져 버린 것이다.


오늘은 제주도 한라산을 바라보며 비건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
최상의 업무 환경이 아닌가요


워라벨과 욜로족에 대한 단상

5년 전, 반도를 휩쓸었던 워라벨

한 때 일과 삶의 균형 - 워라벨 -이라는 단어가 한창 유행했던 것 같다. '저녁이 있는 삶' 그리고 나의 취미를 즐길 시간이 있는 삶, 이라는 사실 당연한 문구로 전 세계를 휩쓸었던 이 단어는 어느 정도 물질적으로 풍족한 요즘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조금 더 여유롭게, '나의 삶'을 챙길 시간과 권리를 보장받고 싶은 것이다. 직장에 출근은 하지만, 퇴근 이후에는 온전히 나만의 삶을 가지고 싶은 이 시대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스타트업을 운영하던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었다. 나는 워라벨을 추구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 있었다. 스타트업은 스타트업대로 'hustle porn'(죽어라 일만 하는 모습을 멋있게 여기는)에 빠져 뭔가 잠도 안 자고, 주말까지 갈아서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가 있었는데, 당시 대표였던 나는 이 치열한 일 문화는 그거대로, 워라벨은 또 워라벨대로 마음에 들지 앉았다. 애초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창업을 했는데, 왜 죽어라 일만 해야 한단 말인가? 거꾸로 워라벨의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이 있는데, 왜 굳이 선을 긋고 일과 삶을 분리해야 하냐는 말이다. 이게 내 삶인걸? 난 일할 때 행복한데?


극단적 욜로(YOLO)의 유행

그 반대급부로 쏟아져 나왔던 '욜로족'이 같이 떠오른다. 당시 신입생이었던 내 과잠에는 그래서인지 '내일은 없어'라고 아직도 쓰여 있다. (현재도 상당히 계획 없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당시 내 삶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들어오는 족족 돈을 '탕진' 해버렸고, 매일같이 오늘의 즐거움만 생각하며 먹고 마시던 삶. 당시 많은 직장인들은 이 욜로 물결에 휩쓸려 가슴속에 품고 있던 사표를 내었더란다. 대다수는 돈이 떨어져 일 이년이 지나자 이내 돌아와 다시 구직을 해야 했지만 말이다.


매일을 여행하듯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워크&라이프 블렌딩 - 워라블을 추구하다

저녁 이후의 삶이 아닌, 나의 24시간을 내 의지대로 살 수 있다면.
원할 때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놀 수 있는 삶.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곳에서.  


첫 원격 근무 직장을 가지게 된 후, 첫 석 달 간은 왜인지 업무는 고정된 공간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때문에 내 방의 작은 책상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회사 생활이 조금 안정이 되고, 코로나도 잠잠해지자 온갖 생각이 들게 되었다. 발리로 갈까? 서핑하러 갈까? 고양이를 키울까? 오토바이를 타고 로드트립을 해볼까? 세계 여행은 어떨까? 농사도 지어볼까? 동남아에 가서 요리도 배워볼까. 무궁무진하게 늘어나는 리스트에 조금 놀랐다. 몇 달 간의 코로나로 인한 방콕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이런 의욕이 난 걸까. 나는 어쩌면 우울증에 걸린 게 아니라, 단순히 맞지 않는 곳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들떴었다.


요즘 나의 일상은 바쁘지만 단순하다.

오전에 눈을 뜨면 하루를 간단히 계획한다. 걸리는 시간은 10-15분 정도. 아이패드로 깨작거리며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적는 시간이 꽤나 재미있다.

20-30분 정도 집안일을 처리한 후 (고양이 밥 고양이 물 고양이 똥), 아이패드를 들고 카페로 향한다. 뷰가 좋은 카페, 혹은 커피가 맛있는 한적한 카페가 글을 쓰기 좋다.

오전은 글을 쓰는 시간이다. 8월 말이 원고 1차 마감이라, 매일같이 조금씩 글을 써나가고 있다. 붕붕 허공에 떠다니는 내 일상을 차분하게 잡아주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다.

점심은 주로 간단히 먹는다. 식단은 단백질과 야채 위주로. 약간의 탄수화물을 섞어 간단히 먹는다. 시간이 없으면 단백질 바로 대체한다.

오후 1-5시는 내가 가장 졸린 시간이자 회사 업무를 봐야 하는 시간이다. 집중해서 업무를 최대한 1-2시간 내에 끝낸다.

남는 시간에는 날씨와 기분에 따라 그 날 하고 싶은 액티비티를 고른다. 지난 일주일간은 승마, 스쿠버다이빙, 프리다이빙, 드라이브, 수영, 등산을 했었다. 이때 먹고 싶은 저녁도 함께 고른다.

오후 7-9시에는 낮시간에 못했다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다. 액티비티를 했다면 나머지 회사 업무를 집중해서 최대한 끝낸다.

오후 9시부터는 내 개인 사업 업무를 조금씩 처리한다. 낮시간 돌아다니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저녁 시간에 실행에 조금씩 옮긴다.

이렇게 하면 회사를 다니면서 책을 쓰고, 내 사업을 운영하면서 잘 먹고 잘 노는 워라블이 완성된다.


제주도에서 풀타임 근무 중인 모습


이쯤에서 생각해보는 부자의 삶이란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 보면, 100억을 벌었을 때 혹자는 세계 여행을 간다고 했고, 혹자는 작고 예쁜 가게를 차려 운영한다고 했으며, 혹자는 스페인에 가서 파티를 즐기며 살 것이라고 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맥주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했고,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은 서핑 스팟을 모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업을 하는 사람 중 많은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사업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업으로 말이다.


물론, 이미 이것보다도 훨씬 큰돈을 벌어 100억 정도야 뭘,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삶은 내 생각보다는 평범했기 때문에 조금 실망했었다. 뭔가 어마어마하게 독창적이지는 못했달까. 10억이 인생에서 처음 생기면 그건 큰 변화가 될 수 있지만, 10억에서 100억이 되고, 100억에서 1000억이 될수록, 돈이 인생에 미치는 변화는 조금씩 더 미미 해지는 것 같다. 조금 더 비싼 옷 입고, 조금 더 비싼 차 타고. 좋은 음식을 먹고, 조금 더 부자인 사람들을 만나겠지만. 뭐랄까, 어느 시점부터는 돈이 내 인생을 바꿔놓지는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이 질문을 하고 다니며 깨닫게 된 한 가지는 돈의 액수만큼 돈을 가지고 있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50대의 100억과 20대의 1억은 가치로 따지자면 맞먹는 금액일지도 모른다.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전자가 더 많을지라도, 개인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단연컨대 후자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50대에 허리디스크, 관절염에 노안까지 온 (굉장히 양호한 상태) 유부남이 할 수 있는 일은 젊고 팔팔한 20살 미혼 청년이 할 수 있는 일과 크게 차이가 난다. 고로 더 빠르게 이런 삶을 선택하고 가꾸어나갈수록 나에게 온전히 주어지는 '나의 인생'이 더 많아진다고 생각한다.   


읽으면서 한 가지 눈치채셨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은 사실 내가 돈을 아주 많이 벌었을 때 살려했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원하면 스페인 이비자에 가서 미친 듯이 파티를 즐기다가도, 다음 날 한적한 시골 섬에 내려가 자연 속에서 농사를 짓고 낚시를 하며 유유자적하게 살 수 있는 삶. 사실 내가 원격 근무로 얻은 건 돈이 아닌 시간이고, 선택할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그 변화가 가져온 내 삶에는 어느새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가득 찼으며, 나는 언제든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곳에서 살고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는 은퇴 후의 삶이라 그리며 50년을 생각만 해온 삶이며, 팀 페리스에 따르면 중간중간하는 '미니 은퇴'를 매일 같이 겪고 있는 삶이지만, 나는 아예 내가 꿈꾸던 일과 삶을 블렌딩 해버렸다. 그 결과 매일 같이 살고 싶은 아침. 기대되는 하루를 맞을 수 있게 되었다.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속박에서 벗어나리라 - 헤르만 헤세


오늘의 자유가 당연한 것이라 믿는 사람들만큼 현재의 속박을 당연한 것이라 믿는 사람들은 어리석다.


내 행복이 어디 있는지 알았다면, 그걸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지옥철을 타고 상사의 잔소리를 들으러 출근하는 그 일상이, 아무리 익숙하다 해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자신의 평온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그런 불합리를 참아내는 '보통의 인간'이 나는 인간적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들 그렇듯 아침 일찍 일어나 9시에 출근하고 6시 조금 넘어 퇴근하는 일상이 정말 당연한 것일까?


잠시 동안의 파리 여행을 가슴에 품고 그때의 청춘과 자유의 공기를 그리며 오늘의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 그들의 추억과 로망은 아름답지만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삶을 바꾸기를 주저하고 있다면 지금 새롭게 찾아온 시대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태생적으로 9 to 6 직장인이 적성인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들의 삶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 '보통의 직장'은 살아있는 지옥이었으니까. 만약 지금 본인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데도 가만히 앉아만 있는 당신이라면 이야기하고 싶다. 더 이상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이런 삶은 정말 a click away니까. 내 인생이 180도 바뀌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2 달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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