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사무실이 없다는 것 그 이상으로
인생에 한 번뿐인 20대를 1평도 채 안 되는 사무실 구석에서 매일같이 보내고 싶은가?
22살, 첫 창업을 했을 당시에 내가 가장 싫어했던 것은 매일 같이 팍팍한 사무실로 좋으나 싫으나 출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매일 보는 회색 벽, 매일 보는 동료들, 매일 같은 출근길은 비록 내가 내 일을 하고 있더라도 어딘가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설렘이 없는 일상 같은 것들. 누군가는 안정이라 부르겠지만, 방랑벽이 심한 나에게는 표독스러운 감옥 같이 느껴질 뿐이었다. 아무리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다 할지라도, 당장 매일 마주하는 건 좁디좁은 사무실일뿐이니까.
요즘은 발길 닿는 대로, 그날 기분대로 일하는 공간을 선택하고 있다. 혹자는 매일 같은 곳에서 일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왜인지 언제나 버스 안, 비행기 안, 기차 안 등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설렘 속에서 집중력이 극대화되는 경험을 하고는 했었다. 아마도 낯선 곳이 주는 본능적인 긴장감과 새로운 경험에 대한 설렘이 뒤얽혀 창의력이 마구 샘솟게 되는 것 같다. 오히려 집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으면 지루함에 못 견딜 것 같은 느낌을 받고는 했었으니까. 나는 아무래도 끊임없이 떠돌아야 하는 운명인가 보다.
이전 같으면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곳을 찾아 헤매어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요즘 세상에는 정말로 언제 어디에서든지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일을 할 수가 있다. 우리 회사 같은 경우는 정해진 업무 시간도 없는 덕택에 나는 꿈같은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숲 속에서, 바다 위에서, 공원에서 그 어디서든 바람 좋고 경치 좋은 곳이면 일하러 나갈 수가 있으니 말이다. 직장 생활을 한다고 해서 공유 오피스라던지 홈 오피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은 말 그대로 고정관념일 뿐이다. 어디서든 일할 수 있고, 여행하면서도 일할 수 있는 시대가 정말로 와버렸다.
아래 사진들은 실제로 내가 지난주에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오토바이 - 배 -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오면서 8시간 풀타임 근무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루에 4-5시간 운전을 하면서 맛집도 찾아가고 한강에서 치킨도 먹으며 친구들도 만났지만 놀랍게도 나는 연차를 쓰지 않았다. 나는 분명 8시간 근무 중이었다. 이동하면서 틈틈이 말이다.
지금 이 글조차도 제주도에서 남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쓰고 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여행할 작정이어서 연차를 쓰기는 했지만, 불과 3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난 이런 삶은 꿈도 꾸지 못했었다. "퇴사 후 세계 여행 vs 직장인으로 착실히 경력 샇기"라는 양 극단의 선택지 두 가지를 열심히 저울질하며 사표를 가슴에 품고 출근하는 새가슴에 가까웠으리라. 세상은 생각보다 넓었고,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생각보다 많았다. 두 가지 갈래의 길만 있다고 생각했다면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이게 다 3달 전에 혹시.. 하는 마음에 찾아보고 내보았던 이력서 한 장에서 비롯된 일이라니. 정말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하는 노마드 생활 무릇 3개월 하고도 반째, 나는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가장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니까. 원격 근무가 future of work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번 맛보면 돌아갈 수 없기에. 연봉 1억짜리 직장을 준다 해도 지금의 생활과는 맞바꾸지 않을 것 같다. 더 이상 나의 시간과 행복을 저당 잡히지 않고도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