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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정 Jul 22. 2020

버릴수록 행복해진다

나를 구속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여행하듯 살기 위해 버리는 것들

머나먼 여정을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노트북 두 개, 가방 하나, 오토바이 하나에만 의존한 채, 조만간 국토를 횡단하여 배를 타고 제주도로 내려갈 생각이다.


앞으로 나는 일이 년 간은 집도, 차도, 물건도 소유하지 않을 작정이다. 방랑자에게 그것들은 모두 구속에 불과하다.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값비싼 골칫거리 같은 것이다.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 나는 먼저 버려야 한다. 나를 구속하는 물건도, 정신도 싹 갈아치워야 한다.


물건을 다 버리고 나니 캐리어 하나가 남았다

부모님 집을 나와 작업실 겸 내 생활공간인 작은 원룸을 얻어 생활한지도 어연 두 달 반 정도가 지났다. 두 달 반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나의 상황도, 나의 몸도 마음도 마치 다른 사람의 것인 마냥 극적으로 바뀌었다. 더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두 달을 몸담았던 내 작업 및 생활 공간

처음 내 몸무게의 절반은 되는 듯한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던 그 날과는 감회가 참 남다른 것 같다. 이 집으로 오던 날은 마치 누군가 온갖 불행을 뭉쳐 내게 던져준 것 같은 때였다. 갑작스러운 남자 친구와의 이별로 툭치면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던 시기였다. 어버이날 아침, 엄마가 지나가며 던진 한 마디에 내 마음이 툭 터져버렸고, 어쩌다 다소 즉흥적으로 독립하게 되었더이다. 20년 간 같이 살아온 집에서 챙겨 나올 온전한 '나의 짐'이란 어찌나 하잘 것 없는지, 옷가지며 소중한 추억을 담은 물건들이 작은 캐리어 하나에 모두 담아졌다.


삶이란 이토록 우스운 것이었다. 내 방에는 수없이 많은 물건들이 있었지만, 정작 꼭 필요한 물건만 챙기려 하자 캐리어 하나에 모두 담기고도 남았다. 그리 큰 가방도 아니었다. 중간 크기 정도의, 내 키의 반 정도 미치는 그런 평범한 캐리어. 그거면 사실 충분했던 것이다.


본집을 나오기 전 한 차례 옷가지를 버렸었다. 옷장 가득 들어있는 옷들 중, 일 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을 모으니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몽땅 채우고도 남았다. 들 수조차 없어 질질 끌리는 봉투를 들쳐 매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순간 뭔지 모를 희열이 느껴졌었다. 그 간의 오래된, 쓰이지 않는, 낡은 옷이 마치 캐묵은 내 삶의 때 같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나 보다. 죽은 세포들이 새 살을 덮고 있으면 피부가 숨을 쉴 수가 없다.


엊그저께부터는 이렇게 한 번 줄어든 짐을 또다시 버리고 있다. 이번에는 조금 고민이 된다. 이 옷은 그래도 가지 가고 싶은데, 이 수건도 언젠가 쓰이지 않을까, 혹시 추우면 어떡하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여행을 하는 입장에서는 짐은 결국 짐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최소한의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버리는 편이 맞다. 물론 쉽지는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사고, 사고, 또 산다. 물건을 욕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람들은 매번 새로운 것들을 사고, 보관하며, 자랑하고는 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런 것들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쓰지도 않는 값비싼 물건과 일하느라 잘 있지도 못하는 집에 인생의 대부분을 저당 잡히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저 지금 존재하는 몸뚱이와 정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저 존재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것들이 정말 필요하단 말인가.


소유를 줄이면 행복해진다

자신 있게 모든 것을 내가 버릴 수 있는 까닭은, 내가 발리를 여행할 당시 작은 백팩 하나에 의존하여 한 달을 산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의 내 삶이 가장 이상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물건에게 지배당하지 않는 삶. 물리적 위치에 구속당하지 않는 삶.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이라고는 그저, 명상과 요가뿐이었던 그때 내 삶은 가장 행복했었다.


한 달 동안 들고 다닌 건 저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행복은 당장 눈 앞의 것에만 집중할 수 있을 때 일어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것들을 모두 버려야 한다. 이를테면, 오늘 어떤 옷을 입을까 하는 고민들. 관리비와 월세는 어찌하며, 직장 상사와의 카톡은 어찌 대답할지 아침부터 머릿속이 해야 할 일들로만 가득 차 있다면 당신은 아마 그 고민의 양만큼 행복으로부터 떨어져 있을 것이다. 발리에서 내가 행복했던 이유 중 하나는 쓰던 폰도 버리고 왔기 때문이었다. 카카오톡, 이메일, sns가 없는 삶은 풍요롭기 이를 데 없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전날 술을 마시다 폰을 택시에 두고 내리는 바람에 공항 오는 길에 5만 원짜리 기계를 사 인도네시아 유심을 꽂아버렸다. 모든 메시지는 오전 11시에 한 번 컴퓨터로만 확인했다.)


나쁜 습관도 모조리 버려버린다

왜인지 물건들을 버리고 나니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과거의 내 잔해를 솎아내어 버릴 자신이 말이다. 어쩌면 정말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 삶에서도 정말 오랫동안 나를 지배해온 썩은 내 나는 나쁜 습관들이 많았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물건을 버리는 것은 쉬운데, 습관을 버리는 것은 그것보다 조금 어렵다. 그렇지만 습관을 버리는 것이, 새로 만드는 것보다는 조금 쉬운 것 같다.


이 집에 온 뒤로, 나는 낡은 나 자신도 한 번 청소를 하기로 했다. 나는 너무 오랜 세월 이 몸뚱이와 이 정신으로 살아왔다. 청소를 싫어하는 성격 탓인지, 고질적인 문제는 모두 싹 다 끌어안은 채로 말이다.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 지금의 나는 조금 보기 흉한 꼴이 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었다.

기분 나는 대로 돈 쓰기

기분 나는 대로 아무거나 먹기

담배, 술 절제하지 않는다

기분 나는 대로 아무 때나 자고 일어나기

기분 내킬 때에만 일하기

청소하지 않기

연락에 답장하지 않기


얘기하다 보니 참 끔찍한데, 그렇다. 나는 때로 이런 인간이었다. 정신 차려 열심히 일하는 모범적인 나와, 시궁창 냄새나는 오랜 본능을 따르는 동물적인 내가 한 몸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이 캐묵은 습관들은 모이고 모여 이내 현재의 내 몸과 마음을 만들었고, 그건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다.


이를테면 Inbody를 봤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

내 몸엔 단백질과 지방이 동등하게 존재한다..


덧붙여서 내 통장 잔고는 심각한 수준이었고, 나는 곧잘 회사에서 잘리지 않을까 고용불안에 시달릴 정도로 스스로도 예측하기 힘든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런 요소들은 모이고 모여, 학창 시절의 high achiever, 완벽주의는 어디 간지도 모를 정도로 나는 엉망진창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내가 너무 싫었다. 싫은 점이 많은데, 고칠 노력은 안 하고 괜찮다고 자기 위로하는 패배자 마인드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간이 있을 때 조금씩 고쳐보기로 했다.


1) 식단 고치기 - 배달 음식 먹지 않기

2) 청소하기

3) 운동 시작하기

4) 일찍 일어나기 - 늦게 일어나지 않기


보통 한 가지 습관을 없애거나 만드는데 평균적으로 21일이 소요된다고 한다. 식단은 기록을 찾아보니 6/6일부터 배달음식을 끊고, 대부분 직접 해 먹었다. 매주 시키는 음식은 거의 같았다. 샐러드, 고기, 그리고 커피. 이따금씩 과일. 식단을 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나자 몸이 눈에 띄게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심플 이즈 더 베스트
친구가 와도 같은 음식을 해주었다 / 친구 제공 사진


다음은 운동이었다. 평생 저질 체력으로 조금만 일하거나 공부해도 몇 시간은 퍼질러 자야 했던 입장으로서, 항상 피곤해하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식단 관리와 운동을 병행해도 바뀌지 않는 나의 인바디를 보고 충격 먹어 피티를 끊었다. 20일 동안 11번 수업을 받기로 하고, 운동할 때마다 노트에 적고 있다. 운동의 기준은 그 날 너무 힘들다 싶을 때까지, 한 번에 1시간 반 정도만 한다.

이번달 운동 기록 (업로드하는 오늘은 7월 22일)

운동은 6월부터 시작했는데, 이제 두 달이 되어가지만 체력이 정말 좋아진 게 피부로 느껴진다. 술을 먹어도 죽지 않는다 지치지 않게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내 평생의 한이었던 약한 체력을 극복하는 순간 아마 나는 세계 정복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그런 기분이다.


다른 습관들 역시 바꾸기 위해 추적하고 있는데.. 일부 습관의 경우에는 추적만 열심히 하지 잘 바뀌지 않는다. 그래도 이 두 가지를 명확히 바꾼 것만 해도, 한 두 달만에 많은 성과가 나타난 느낌이어서 새로 태어난 것 마냥 상쾌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계속해서 하나씩 고치다 보면 아마 나는 조금씩 더 나은 인간이 되지 않을까.


사실 이렇게 결심하고 하나씩 고치면서 고쳐지고 있는 게 있는데, 바로 '작심삼일 하는 습관'이다. 다른 말로 의지박약이라고도 부르고, 나는 내심 내 MBTI인 ENFP의 특징이라 치부하고 있다. 무언가 꾸준히 하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못하는 인간이, 하나를 지켜나가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면, 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아마 이 세상에 없게 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나를 구속하는 것들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다. 매일 조금씩,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다. 나아가다 보면, 행복이 정말 나타나지 않을까. 이미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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