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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정 Cathy K Aug 17. 2020

열심히 살고 있지만 우울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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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함은 이상하게 표출된다


왜 연애를 안 하는 거야?


요즘 친구들이 내게 묻는다. 대학생이 되고서는 쉴 새 없이 연애를 하던 내가, 유독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솔로로 지내는 게 신기한가 보다. 사람 만나는 것도 원체 좋아하는 성격에, 활동을 하는 것도 많아 여기저기서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그 덕에 연애도 많이 했었다. 누군가를 만나서 더 깊게 알아가고, 같이 놀기도 하고 사랑도 한다는 게 엄청나게 재미있는 일이어서 '더더더 많이!' 하고 연애를 갈구했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연애에 유독 집착했던 당시 내 모습에는 이런 이유도 숨어 있었던 것 같다. 내 일상이 지루하고 학교는 매일같이 똑같아서, 무언가 새로운 이벤트 없이는 하루하루를 견디기가 너무너무 어려웠다. 연애라는 건 한정된 자원과 시간, 공간 안에서 찾아내기 가장 쉬운 새로운 "이벤트"였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주는 잠깐의 신선함과 그들의 이야깃거리들은 오늘 하루의 고통을 달래주는 작은 위안거리였다. 연애를 위한 연애를 한다기보다는, 내 뻔한 하루의 진부함과 지루함을 쫓아버리기 위한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써 사람들의 이야기와 따뜻함을 갈구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나의 연애에 대한 집착은 우울의 산물이었다. 당시의 나는 내 인생에 만족하지 못했었다. 열심히 사는 것과는 별개로,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은 언제나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왜 뛰는지 모른 채, 앞으로 달려가기만 했던 그때의 나는 그래서인지 자꾸만 도피했었다. 연애로, 게임으로, 여행으로. 내 본업이 아닌 새롭고 자극적인 것들로 시간을 채우다 보면 내 본래의 일상이 조금은 잊혀서, 사실은 괜찮은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으니까.



우울증으로 가는 첫 단계: 현실 부정


괜찮아. 잘하고 있어. 원래 그런 거야.


매일 밤 자기 세뇌에 가까울 정도로 '사실 나는 잘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내 몸은 귀신같이 알고 있었다. 나는 내 삶이 너무나도 싫었고, 아무리 재밌는 것을 해도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당시 내가 삶을 잘못 살고 있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몸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과도한 '잠'이었다.

하루 20시간씩 잘 때도 있었으니까. 내 별명은 잠만보였다.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틈이 날 때마다 잠을 자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수업 시간에, 쉬는 시간에, 집에 와서도 항상 피곤함에 찌들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숨 막히는 경쟁, 하루 종일 반복되는 공부, 끝없는 수십 가지 스펙 쌓기와 수업, 숙제들.. 숨 가쁘게 바쁜 날들 속 그 어디에도 내 의지는 없었다. 해야 한다고 해서 했던 것들 뿐.


한 층 한 층 위로 올라갈수록 어째서인지 경쟁은 더 심해져, 모두가 1분 1초도 허투루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고등학교 때는 급식실에서 10분 이상 밥을 먹는 아이를 다들 손가락질하고는 했으니까. 대학에 온 후에는 더 심해졌다. 그때부터는 취업을 위한 경쟁, 결혼을 위한 경쟁, 돈을 벌기 위한 경쟁까지 새로운 경쟁들이 속속들이 끼어들었으니까. 극한의 경쟁 속에서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덜 자고 더 공부하는 것이었지만 정작 내가 한 선택은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20살에 찾아온 번아웃


어느 한 방학이었나, 한 달 동안 매일 20시간 정도씩 잔 적이 있다. 눈을 뜨고서는 밥을 먹고, 또다시 잘 수 있는 만큼 자고서는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성적은 물론 건강조차 좋을 리 만무했고 내 대학 성적은 0을 향해 수렴해 갔었다.


당시의 나는 그저 내가 게으른 것이라고, 정신력이 약하고 의지가 부족한 것이라고 내 탓을 했었다. 모두가 그랬으니까. 부모님과 교수님이, 친구들이, 사장님이 내게 이렇게 얘기했으니까.


잘하던 애가 왜 그래. 왜 이렇게 빠졌어?


누구보다 세상 열심히 살던 사람일수록 힘들 때는 더 지치기 마련이다. 그야말로 화장실도 참으며 목숨 걸고 공부했던 지난 십 년. 나는 20살에 엄청난 번아웃을 경험했던 것이다. 번아웃이란 아무리 노력해도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는 그런 상황을 의미한다. 이 시점부터는 더 이상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뇌가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버리고 뻗은 것에 가깝다.


정말 뇌가 하얗게 불타버린 것이다


여기서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분명 남들 하는 거 다 하면서 평범하게 살고 있고 남들은 멀쩡한데) 나는 왜 에너지를 소진하게 되었는가.


간단하다.

에너지를 채우지 않고 쓰고만 있으니까 그렇다.


- 그럼 어떻게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가?

- 다른 사람들은 어디서 에너지를 얻는가?


보통은 맛있는 것 먹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힘이 조금 난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돈을 쓰고 시간을 내어 힐링을 해도 힘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건 본질적인 무언가가 잘못되었을 때다. 만약 아무리 푹 쉬어도 피로가 풀리지 않고, 아무리 성과가 나도 행복하지 않다면. 지금 가고 있는 인생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반증일 수 있다.


특히 나같이 일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자기 발전과 성과로부터 많은 만족감을 얻는 워커홀릭형의 인간은 일로부터 힘을 얻기 때문에, 좋은 일을 해야 힘이 난다. 나에게 맞는 일을 열심히 하면 자동으로 아드레날린이 뇌에서 생성된다. (사실 아드레날린인지 도파민인지 엔도르핀인지 찾아봤지만 정확히는 모르겠다. 문과가 쓰는 글이니 대충 어떤 의미인지 맥락상 알아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꿈, 그 허황된 거?


고로 내가 당시에 들었어야 했던 말은 질타가 아닌 제대로 된 질문이다.

뭐가 하고 싶어?


내가 그랬듯, 당신도 이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이 하고 싶은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눈 앞에 산 같이 쌓인 '의무'말고. 엄마 아빠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너를 위해 좋은 일' 그런 거 말고. 정말 남몰래 가슴속에 품고 있는, 생각만 해도 떨리는 '꿈'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꿈이란 게 사실은 별 게 아니라, 그냥 지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면 그게 진짜 꿈이다. 꿈이라는 게 그렇다. 남들이 생각하기에는 별 일 아닐지라도, 내게 큰 의미를 갖는 것. 그러나 갖기에는 조금 어려워 보여서 그리 손을 뻗치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 나 같은 경우에는 바다 옆에 살며 바이크를 몰고 글을 쓰는 게 꿈이었다.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꿈 = 내가 정말 하고 싶지만 어렵게 느껴지는 일


꼭 100% 하고 싶은 일만 하지 않아도, 조금이라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면 그로부터 힘을 얻을 수가 있다. 내가 글을 쓰며 홀로 힘을 받았듯이, 무언가를 하면서 적극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여기서 '에너지 = 아드레날린'이라고 보면 이해가 조금 더 쉬울 것 같다. 아드레날린이야말로 우리의 연료다. 일을 더 많이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아드레날린이 필요하다.


아드레날린 파워


아드레날린이 생성되는 순간 무언가 달라진다. 분명 힘들게 일을 하고 있는데, 지치지 않는다. 아니,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피로가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한 번쯤 이런 명언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공자님과 싸이가 이런 말을 한 데에는 사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이다. 아드레날린이나 엔도르핀은 실제로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비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강력한 행복감과 고통 억제 효과를 준다고 한다.


1시간을 뛰는 것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인데, 장장 42km를 뛰는 마라톤 참가자들이 "러너스 하이"를 겪는 것이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굉장한 신체적, 정신적 노동을 하고 있지만 역으로 뇌에서는 행복함을 느끼게 하는 물질을 뿌려대는 것이다.


일을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수고스러운 행동이지만 만약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때, 우리 뇌는 갖가지 호르몬을 분비하여 고통이 아닌 짜릿함과 환희를 느끼게 해 준다.


고로 내가 편하게 공부하는 것이 아닌 창업을 선택했을 , 편안한 비행기가 아닌 오토바이로 9시간을 이틀 동안 운전해서 제주도로 왔을 , 누군가 요리해주는 안락한 밥이 아닌 직접 문어를 잡아서 요리해 먹었을 , 홈오피스에서 편하게 일하는  아닌 배를 타고 수영을 해서 무인도에 들어가 일을  . 즉, 편안함을 버리고 멍청해 보이는 험하고 불편한 길을 선택했을  - 그때 나는 말로 표현할  없는 짜릿함과 행복감을 느꼈던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이 아드레날린에 도취되어 버리면 다시는 그 전의 편안함과 안락한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 아드레날린이 주는 효과는 강력한 마약과도 같아서, 자꾸만 생각나기 마련이다.



우울할 때는 미친 짓을


만약 당신이 지금 우울하다면 -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 그럴 때일수록 적극적으로 불편함(꿈)을 선택하라고 얘기하고 싶다. 오늘 당장 당신의 "comfort zone"에서 벗어나 보라고 말이다. 무엇이든 좋으니 가슴 떨리는 일을 딱 하나만 해본다면? 큰일이 아니어도 좋으니 평소에 상상만 했던, 조금은 무서운 (개인적으로는 미친 거 아니야?라고 느껴질 만한) 일에 도전하는 순간, 당신의 뇌가 행복 물질을 마구 내뿜어줄 것이다. 목숨을 잃거나 법을 어기지만 않는다면 결과와는 상관없이 잊지 못할 추억과 뿌듯함만이 남을 것이다.


무한 경쟁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어느 때보다도 '꿈'이 필요하다. 오늘 우울하다면, 딱 오늘 하루만 살짝 미쳐볼 것을 권해드린다. 오늘이 오래 생각만 해온 그 꿈을 이루는 날이 될지도 모르니까.

영화 '버킷 리스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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