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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정 Mar 19. 2021

두서 없이 쓰는 '왜 나는 글을 쓰는가'에 대한 글

포스트 포스트 모더니즘적 글쓰기

안면식도 없는 수 천명의 사람들에게 솔직해지는 것만큼 무서운 일이 있을까?


나도 나를 모르는데, 그런 나를 꺼내어 소개해보인다는 건 분명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일 것이다.


글쓰기는 오랜 시간 내게 있어 가장 날카로운 무기이자 사람들에게 숨기고 싶은 내 모습을 담아두는 나약함이었다.


내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자신에게 솔직하고자 하기 위함이며,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감으로써 당시의 내 생각을 실존하는 한 조각의 기록으로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이 세계 속에서, 눈 앞에 사각사각 쓰여지는 검은 글씨들만큼 확실한 것이 또 있을까.


비록 모든 걸 담을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그 순간, 그 찰나의 지나가는 생각 한 줄기만큼은 물리적인 형태로 종이 위에 그 모습이 남는다.


수많은 가치관의 충돌과 계속해서 급진적으로 변하는 인생사 속에서 나는 계속해서 휩쓸렸다. 세상의 시선과 내 속의 꿈틀거리는 어떤 욕망, 내재된 다른 누군가의 욕심 같은 것들이 뒤섞여 내가 내 속을 알기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런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요즘에도 이따금씩 어디서 온지도 모를 내 생각들은 마구잡이로 커져, 과연 내 인생이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 자문하게 한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사이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그래서 그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뭇 '쿨' 해보이고 부지런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한없이 게으른 사람이다.

내가 얼마나 게으른 사람인지에 대해 간단히 자랑을 해보자면,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글을 쓰겠다고 해놓고 지금 브런치에 두 달에 한 번씩 업로드를 하고 있다.


주말 오전에 일어나면 주로 글을 쓰는데, 두 달에 한 번 정도 주말에 오전에 일어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아니, 최근에는 오후 시간에 쓰기도 했으니, 어쩌면 나는 영영 오전에 일어나지 못하려나 보다.


아무튼 다시 요점 아닌 요점으로 돌아오자면, 오늘 하루는 전적으로 "일하기 싫은 감정"에 충실하기 위한 고민을 하는데 쓰였다. 일하기 싫었다. 몸이 별로 좋지 않았고, 커피향이 좋았고, 요리가 맛있었고, 날씨가 좋았다.


거꾸로 말하자면 맛있는 끼니가 있고, 향이 좋은 커피가 있으며, 따뜻하고 한적한 날씨가 있는데 더 바랄 것이 있을까?


오 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 같은 나른하고도 게으른 인생은 꿈도 꾸지 않았을텐데, 왜인지 도시 밖으로 나오자 인생은 지극히 단조로워졌고 대신 숨막히게 다채로워졌다.


수신을 멈춘 전화기에는 이제 글과 그림이 담기고, 오후에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미팅을 하기 보다 이제 햇살을 받으러 산책을 나간다. 오전 시간은 직접 현지에서 커피콩을 사서 갈아 물을 데운 후 천천히 수작업으로 커피를 내려 먹는다.


커피 한 잔을 만드는데 드는 시간은 약 45분.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데는 약 2 시간이 걸린다.


하루 종일 딱히 많은 일을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먹고, 마시고, 바다를 본다. 이따금씩 일을 하고, 때로 바닷가를 거닌다.


주제가 딱히 없는, 지나가는 여러 생각들을 조금씩 끄적이는 것이 내게 조금 남은 사유의 흔적이다.


생각 없이 쓰는 글쓰기가 어떤 모습이냐 물으신다면, 지금 읽고 있는 바로 이런 글이라고 답하겠다.


2021년, 내 글쓰기는 지극한 게으름과 자유로움의 절정에 다다랐다. 목차도 목표도 그다지 없는, 적는 행위에 목표를 둔 순수한 행위로서의 글쓰기.


코로나로 인해 우리 삶은 잠시 멈췄고, 우리는 더 이상 목표를 향해 정진하지 않아도 삶은 어쩐지 그럭저럭 살아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아무렇게나 쓰여졌지만 어찌저찌 생겨먹은 이 글처럼, 우리의 인생도 어쩌면 하나의 문장으로 쉽사리 정의되지 않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우린 그저 그 순간에 존재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외에는 아는 게 없다는 것.


이 글은 이 우주를 방황하는 멋진 먼지같은 여러분이 읽어주기 때문에 존재하며, 아마도 읽는 그 순간 두뇌에서 잊혀질 보이지 않는 허상 같은 글쓰기다.


따라서 남는 것은 그저 행위이고, 의미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단지 우리가 '무엇인가를 읽었다'는 일련의 사실 뿐이다.


별 생각도 없이 살다가 멋진 리모트 근무 관련 글쓰기를 하느라 평소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 잠시 1000명 구독자 기념으로 정신없는 글쓰기를 퍼블리싱한다.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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