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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정 Cathy K Jul 07. 2021

태국 코사무이 석 달 살기 리뷰

천국처럼 보이는 태국 외딴 섬의 문화충격


태국의 코사무이라는 남쪽 외딴섬에서 살아간 지 3달이 다 되어간다. 


세계 여행을 하며 깨닫는 것은, 사실 여행이라는 것은 지독하게 불편하고도 이질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매일 마주하는 일상의 익숙함. 매일 먹는 음식이 존재하지 않는 낯선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은 우리 뇌에 크나큰 충격을 준다. 익숙하지 않다는 것. 나의 ‘보통’이 더 이상 이곳에서의 ‘보통’이 아니라는 이상한 사실은 누구와 어디를 가든 일상을 불편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우리가 생각하는 코사무이 - 진짜 이렇게 생기기는 했다

코사무이는 태국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이지만 이곳에 살게 된다면 이야기는 급속도로 달라진다. 에어비앤비가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고 했던가. 로맨틱한 해변만을 보고 이곳에 자리를 잡는다면 여러분은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이 작은 섬에서 보내는 매일은 정글 속 시골 마을의 일상에 가깝다. 


정글 마을의 일상이란

차가 아닌 오토바이가 주된 교통수단이 되고, 집안의 가장 큰 자산이 되는 곳. 시집 가면 그냥 소도 아닌 버펄로를 예물로 바치는 곳. 집집마다 닭 몇 마리는 하나씩 키우고, 집에 보안문을 설치하는 대신 이곳에서는 개를 키운다. 사실 개를 데려다 키우는 것도 아니고, 길에 짝짓기 해서 자연발생(?)한 여러 개들 중 우리 집에 자주 붙어있는 개가 우리 집 개가 되는 것에 가깝다. 


사실 한낮 기온 평균 35도에 육박하는 곳에서 길거리를 걷을 일도 잘 없지만, 길을 어쩌다 걷다 보면 수많은 개들을 비롯한 닭들이 주변에 지나다닌다. 버펄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도 마을마다 한 두 명씩은 있다. 알고 보니, 버펄로는 농사용이 아니라 싸움용이라고 현지인 분이 전해주셨다. 고대 로마인들이 스테디움에서 전투를 즐겼던 것처럼, 이 시골 마을에서는 넷플릭스 대신 소싸움을 보기도 한다. 집에 도착하면 집 바로 위에 독수리가 원을 그리며 날아다니고 있다. 우리 집에는 상시 개코 도마뱀을 비롯한 각종 도마뱀이 30마리 정도는 항상 같이 살며 크고 작은 벌레를 퇴치해준다. 


우리 집 앞에 버펄로가 두 마리 산다


이곳에서는 비가 오면 어쩐 일인지 와이파이가 사라진다. 열대 우림 한가운데인 만큼,  전기가 안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정말로 전기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차마 하지 못했다. 한국이 왜 선진국인지 정글 속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비가 오면 와이파이를 포함한 전기와 수도가 때때로 같이 끊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곳에서는 상수도 파이프가 값싼 재료를 쓰다 보니 수압이 낮고, 그래서 전기로 각 집에 물을 공급한다고 한다. 대체 왜 비가 오면 전기가 끊기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리하여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면 변기 물을 내릴 수 없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는 한다. 미팅을 하던 중이라면 미국이나 한국에 있는 비즈니스 파트너 또는 클라이언트에게, “아, 비가 와서 와이파이가 끊길 수 있어요”라는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것은 덤이다. (선진국에 사는 문명인들은 이게 대체 무슨 개소리인가 하는 눈으로 쳐다보고는 한다.)


덧붙이자면 대부분의 헬스장에는 에어컨이 없고, 마트 육류, 해산물 코너에는 냉장고가 없다. 강인하게 크는 섬사람들.. 


정신적으로도 불편하다

제일 불편한 것은 음식이나 전기, 상수도 같은 의식주의 영역이지만, 정신적으로 불편한 것은 따로 있다. 주변 곳곳에 널려있는 성매매촌이 바로 그것이다. 태국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시골 마을을 돌아보다 보면 주로 외국인 관광객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을 기점으로 주변에 성매매 마사지샵들이 아주 즐비해있는데, 따로 ‘red light district’를 지정하여 숨어서 영업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도로변에 대놓고 붉은 등을 켜놓고 야외에 노출 많은 옷을 입은 여자분들이 밤이든 낮이든 한가로이 부채 부치며 앉아있다. 이러한 관경이 곤혹스럽기도 하지만, 여기에 익숙해져서 스스럼없이 ‘happy ending’(마사지 이후에 마사지사가 성적인 서비스를 해주는 것)이니 마사지니 하며 태국의 값싼 관광 루트 정도로 이를 운운하는 여행객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인생이 잘못된 곳으로 가고 있다는 강한 의구심과 거부감에 휩싸이고는 한다. 


아직 리모트 근무를 하는 회사가 많지는 않다 보니 아무래도 디지털노마드를 하는 사람들 중 고소득자는 상대적으로 굉장히 적은 편이고, 노마드 저소득층에서는 유럽의 백패커 문화와 겹치는 면도 여러 모로 많은데, 이게 잘못(?)될 경우, 법도 윤리 의식도 없이 사는 섬 문화에 도취되어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일부 생겨난다. 개인의 선택의 영역이기에 비난할 수는 없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본국의 일상에 다시 적응하지 못하고 저소득층 국가에서 ‘신’과 같이 군림하며 살아가는데 치중하게 된다. 이런 백인들의 경우 상당수는 본국에서는 저소득층이나 사회 부적응자, 또는 반항아(?), 히피족에 가까우나 해외에서는 그런 구분 없이 살 수 있게 되기에 섬에 영구히 정착하게 된다. 섬에서 현지 여자분과 결혼한 후 저소득층 국가의 우월한 ‘백인’ 신분으로 비교적 부유하게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살아간다. 태국의 Koh Phangan 섬이나 발리의 Ubud 지역에는 이 중에서 히피나 요기 출신이 많이 모여있는데, 영적인 커넥션이나 마약, 섹스 파티에 도취되어 영영 현실 아닌 현실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이들 중 대부분은 코로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거리에서 만날 경우 내가 마스크를 쓰는 것에 불편함을 표시하며 코로나가 음모론이라고 훈계하려 들기도 한다. (그동안 세 번 겪었다.) 


한국인으로서의 리뷰

한국에서 자라난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와 같은 씬은 엄청난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카스트 계층 제도에 가까운 현지의 삶이나, 후진적인 여성관, '돈과 피부색'이 더 중요한 법과 제도, 다양한 생활 편리 서비스의 부재는 분명 내가 알고 있는 세상과 이질적이다. 그러나 분명 존재하는 세상의 다양한 면모를 그대로 볼 수 있어 사고가 유연 해지며, 새삼 내 나라에 감사하고, 우러러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세계 여행의 재미있지만 불편한 한 면모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은 사실 불평불만에 가득 차서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라 많은 시설이 닫은 것도 사실이지만, 한국의 맛집 투어가 주된 취미 생활이었던 내게 음식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먹는 것으로 치부하는 태국의 음식 문화는 우울증을 유발할 정도로 심각하다. (시골 마을이라 그럴 수도 있다.) 대형 마트 및 이곳 백화점(?)에 가서 산 값비싼 양고기와 소고기가 매번 상해서 지난주에만 4번을 약한 식중독에 걸리고는 아주 질려버리고 말았다. 세계 여행이라 친구들은 로맨틱하다며 부러워하는 것 같지만 정말인지 사서 고생이라는 말이 딱 여기에 쓰는 말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태국에서의 3달은 조용하지만 평범하지 않게 지나가고 있다. 다음 달에는 다 같이 푸껫으로 건너가기로 했다. 푸껫 편은 다음에 올리도록 하겠다. 

진짜 이렇게 생긴 집에 살고 있기는 하다. 이렇게 생긴 집도 비가 오면 전기가 끊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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