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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의 슬기로운 여행 생활 - 요르단 여행

캐리어 자물쇠가 사라진 이유가 혹시...?

by 리틀풋

세 번의 유방 종양 수술을 거친 나는 이후로 3개월에 한 번씩 추적 검사를 받았다. 첫 번 째 수술 이후 병원에 갈 때마다 새로운 무언가(!)가 생겼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늘 추적 검사 며칠 전부터는 기운이 없고 한껏 쳐져있었다. 또 종양이 생겼으면 어떡하지, 수술을 또 해야 하면 어떡하지 걱정과 불안과 두려움에 병원에만 가면 의사 선생님 눈도 잘 못 마주치고 개미 마냥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곤 했다. 선생님은 여태껏 내가 원래 목소리가 작은 사람인 줄 아실 것이다. 여러 번 아프면 사람이 이렇게나 간이 콩알만 해진다.


아직 '암 환자', '중증질환자'의 신분으로 살고 있긴 했지만 다행히도 세 번째 수술 이후로는 종양 이슈(?)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그 사실 만으로도 조금 숨을 쉴 수 있었다(대신 다른 곳이 고장 났음을 알아차렸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추후 다른 글에서 쓰려고 한다).


몸이 조금이라도 괜찮다면, 또다시 어디론가 떠나야 하지 않겠는가?!


어린 시절,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책으로 접하고 어른이 되면 도장 깨기 하듯 다 가보겠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그리고 당연히 이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막상 어른이 되고 나서는 일본에 오래 살기만 했지 불가사의의 ㅂ까지 가보지도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페트라가 있는 요르단으로 가볼까?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 2019년 3월 말, 나는 요르단으로 향했다.




나는 비행기 값을 좀 줄여보겠다고 인천을 출발해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Abu Dhabi)와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Muscat) 이렇게 두 곳이나 경유해 총 22시간 정도 걸리는 항공편을 덜컥 예약해 버렸다. 내 체력으로 이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나는 사실 모로코와 쿠바 여행 이후로 한 가지 큰 깨달음을 얻고 개선책을 찾았고 이를 요르단 여행 때부터 실행에 옮겼다. 그건 바로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착륙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이 자야 한다는 것. 쿠바 여행 때까지만 해도 기내식도 먹고 잠깐씩 영화도 보고 했는데 나 같은 모태 저질체력인이자 암 판정을 받은 중증질환자에게 장거리 비행은, 그 과정 만으로도 체력적으로 큰 부담이었다. 모로코, 쿠바 여행 후 각각 거의 한 달가량을 감기 몸살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기내에서 최대한 많은 수면 시간을 확보하는 게 살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과정을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겠다. 나는 기내식을 먹고 나면 얼른 양치를 하고 자야 하는데 일단 식사를 마친 트레이 등을 승무원 분들께서 치워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단계가 있다(미리 말하자면 이 모든 과정은 일부러 승무원 호출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붙는다. 내 편의만을 위해 나의 타이밍에 맞춰 승무원 분들을 몇 번이나 호출하는 일은 결코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는 웬만하면 창가 자리를 선호하는데 내가 식사를 마쳤다 하더라도 옆 좌석 분들 다 드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로소 화장실로 향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화장실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고 양치와 화장 지우기 등등을 마치고 돌아와 자리에 앉으면 앞서 먹은 게 있으니 한두 시간 지나면 또 화장실을 가게 된다. 게다가 잠을 청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니, 기내식 두 번에 간식 한 번 정도 나오는 10시간 이상의 비행일 경우, 제공되는 식사를 모두 하고 그때마다 위의 과정들을 반복한다면 결과적로 수면 시간은 다 합쳐 두세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이미 여행에 쓸 체력이 소진된 상태로 목적지에 도착해 여행 중 혹은 여행이 끝나고 컨디션이 안 좋아진다는 사실을 지난 여행을 통해 학습했다.


그래서 요르단으로 향할 때는 일부러 밤 비행기를 예약해서 탑승 전 인천 공항에서 밥을 두둑이 먹어두고 화장도 미리 지우고 탑승을 했다. 그리고 비행기가 이륙하기도 전에 수면 태세에 돌입했다. 밤 시간이라 그랬는지 중간에 화장실 한 두 번 간 것을 제외하고 아무런 기내식과 음료도 먹지 않은 채 열 시간 남짓을 그 좁은 이코노미석에서 잘도 잤다. 보통 체력을 가지거나 건강한 사람들에겐 굉장한 유난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심지어 약 먹기 위해 승무원 분께 물 달라고 요청하고 다 마신 물 컵을 치워달라고 요청하는 그 시간마저 아끼고 싶어서 탑승 전에 미리 물도 사두어 먹고 싶을 때 얼른 꺼내먹고 다시 잠을 청한다. 마치 혹한기에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겨울잠을 자는 곰, 혹은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저전력 모드로 전환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정말 필수적인 행위에 필요한 최소한만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스위치를 내리 듯 내리 잠을 자야 그나마 체력을 아낄 수 있다. 장거리 여행은 떠나고 싶어 죽겠고 그러나 하드웨어는 받쳐주지 않는 중증질환자가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찾아낸 '슬기로운(?)' 여행 기술이었다. (기내식 먹고 싶으면 먹고 영화 보고 싶으면 보는 분들의 체력... 진심으로 부럽다)


그러나 두 번의 경유는 만만치가 않았다. 인천에서 아부다비까지 밥도 안 먹고 죽은 듯이 잠만 잤는데도 너무 힘들어서 아부다비 공항에서 빠르게 아침을 먹고 공항 구경을 짧게 한 뒤 다음 탑승 시간까지 또 잠을 잤다. 혹시 오해할 수 도 있는데 나는 결코 잠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그저 가진 체력이 없어서 체력 충전을 위해 자꾸 자는 것뿐이다.

IMG_6876.JPG 산유국 특유의 부내가 느껴지던 아부다비 공항
IMG_6899.JPG 신밧드의 나라 오만의 무스카트 공항




그렇게 틈만 나면 잠을 자며 두 번의 경유 끝에 요르단의 수도 암만(Amman) 공항에 도착했다. 거의 좀비에 가까운 상태로 도착해 마치 수명을 다하기 직전의 전등처럼 눈을 꿈뻑꿈뻑 거리며 세관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세관 직원이 계속 고개를 갸우뚱하며 여권 사진과 내 얼굴을 대조해 보더니 이거 너 아니라고 본인 맞냐고 묻는 것이다.


...?!!


인천에서부터 열몇 시간을 잠만 자다 나와서 초췌한 얼굴인 데다 화장도 하지 않아 더욱더 그랬는지 계속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여권사진처럼 머리도 묶어 보이고 여권 사진과 비슷한 밝은 표정을 (억지로) 지어 보이며 메이크업을 지워서 달라 보이는 것이라고 짧은 영어로 열심히 설명을 했다. 결국 옆 자리 세관 직원까지 와서 여권 사진과 내 얼굴을 한참 뜯어보며 대화를 하더니 마침내 입국 도장을 쾅 찍어주었다. 사람이 화장 지우면 좀 달라 보일 수도 있지. 억울합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무사 통과했으니 다행이었다.


그런데, 과연 다행이었을까...?


그렇게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겨우 세관을 빠져나와 맡긴 수하물을 찾고 보니 글쎄, 인천공항에서 캐리어에 채워놨던 자물쇠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점입가경.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며 세관 에피소드는 당황할 축에도 들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너무 놀라서 캐리어를 구석으로 끌고 와 지퍼를 열고 없어진 물건이 있는지 허둥대며 찾아보는데 그 와중에 내가 캐리어에 뭘 챙겨 왔는지도 잘 떠오르지가 않는 거다. 스무 시간가량을 자다 깨다 지금 한국 시간으로는 며칠인지, 몇 시인지, '여긴 대체 어디 나는 누구?' 상태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는데 잃어버린 물건이 있는지 조차 도통 가늠할 수가 없었다. 원래 여행 때마다 귀중품은 모조리 핸드캐리 수하물에 넣기 때문에 귀중품이 사라지진 않았을 테지만 내가 무슨 옷을 몇 개 가져왔는지, 어떤 생필품 등을 챙겨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눈으로 쓱 보았을 때 옷가지들이 현저히 줄어들거나 하진 않았었지만 나는 제법 패닉 상태였다. 두 군데나 경유해서 왔으니 자물쇠가 사라진 곳이 아부다비인지, 무스카트인지 아니면 최종목적지인 암만인지 조차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이게 무슨 일이람.


세관에서 여권 사진으로 실랑이하며 붙잡혀 있느라 다른 탑승객들은 공항을 빠져나간 지 오래였고 도움을 청할 만한 공항 직원, 항공사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암만 공항 내부는 군데군데 전기를 꺼두어 어두웠고, 눈치 없이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 출국장 밖의 하늘은 어느새 다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어차피 귀중품이 내 수중에 있다면, 옷이나 생필품은 어찌어찌 현지에서 조달하면 될 일이 아닌가(내가 원하는 사양은 없겠지만...). 도움을 청할 만한 곳을 찾느니 더 어두워지기 전에 공항을 빠져나가서 암만 시내에 도착하는 편이 차라리 안전하겠다 싶어 막 문을 닫으려고 하는 공항 안에 위치한 잡동사니를 파는 가게에 뛰어들어가서 자물쇠를 찾았다. 가게에 캐리어용 자물쇠는 없었고 조악한 열쇠가 달린 작은 자물쇠(라 칭하기도 뭐 한 무언가)만 구비되어 있었다. 아마도 작은 배낭 지퍼에 다는 것 같았는데 어쨌든 있는 건 그것뿐이라 꿩 대신 닭이라도 사는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일부러 구하려 하려 해도 구하기 힘들 것 같은 그 조악한 자물쇠를 일단 캐리어에 채우고 부랴부랴 암만 시내로 향했다. 시내 호텔에 도착해서 다시 한번 캐리어를 천천히 살펴보았는데 결과적으로 없어진 물건은 없는 것 같았고, 나는 긍정회로를 돌려 어딘가의 공항 직원이 자물쇠를 뜯어 내 캐리어를 열어보았으나 가져갈만한 값나간 물건이 없어서 그냥 닫았겠거니 생각하기로 했고 실제로 별 탈 없이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걸 보면 뭘 가져가려는 목적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진실은 저 너머에.




그런데 요르단 여행 후 5년가량이 지난 최근, 내 캐리어 자물쇠가 사라졌던 이유를 짐작할만한 기사를 인터넷에서 발견했다. 항공사에서 제공되는 기내식은 물론 물 한 모금조차 먹지 않는 사람은 승무원에게 요주의 인물로 찍혀 조용히 신고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왜 그런고 하니, 실제로 체내(직장)에 금을 숨겨 밀수하려던 사람이 승무원의 신고로 발각된 적이 있었다고. 그 사람은 당연히 화장실을 가면 '안 되는' 사람일 테니 음식 일체, 물조차 입에 대지 않고 화장실도 가지 않았으며 승무원은 이를 수상히 여겨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유레카!

(이 대목에서 유레카를 외치는 게 맞는지는 조금 의문이다)


기내식도 한 번을 먹지 않고 물을 준다고 해도 거절하는 (난 그래도 화장실은 갔는데?) 승객이어서 혹시 내 자물쇠가 사라졌었을 수도 있다는 단서를 여행 후 무려 5년이 지난 2024년에 발견하자 왠지 헛웃음이 났다. 난 그저 체력이 없어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자는 걸 택한 환자였을 뿐인데.


이후에도 꾸준히 나는 장거리 여행을 떠났고 그때마다 이른바 '기내 겨울잠 정책'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나. 나는 조금 더 진화하여 10~12시간 내내 화장실을 한 번도 안 가기도 한다.


어쨌든 요르단 여행으로 배운 것.

캐리어에 자물쇠는 두 개 이상 채울 것. 원래도 그랬지만 귀중품은 무조건 핸드캐리 하기. 그리고 개도국 및 제3세계 여행 시에는 비싼 옷은 일체 가져가지 않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세관 통과하기 전에 적어도 여권 사진 정도처럼은 보이도록 화장해 놓기. 이상, 모태저질체력 암 환자이자 화장한 얼굴과 민낯의 간극이 큰 사람의 조언이었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요르단 여행을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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