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트리니다드의 모든 길은 차메로 아저씨네로 통한다
도착 첫날부터 수동식 엘리베이터로 큰 놀라움을 안겨준 쿠바.
쿠바 여행을 하다 보니 사회주의 국가인 탓에 인프라는 물론이고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구석구석 모든 것이, 그야말로 모든 물자가 부족했다. 먼저 인터넷을 이용하려면 긴 시간 줄을 서서 인터넷 이용 가능한 카드를 구입해 공원이나 마을 광장 등 인터넷이 되는 특정 장소에서 구입한 시간 분량만큼을 이용할 수 있다. 당연히 인터넷 속도가 빠를 리 없다. 거리에는 형형색색 화려한 올드카가 즐비해 우리 같은 관광객들의 눈을 끌지만 에어컨이 없는 차가 부지기수고 50년 이상 된 올드카들의 부품을 고치고 또 고쳐서 사용한다고 했다.
시장에 파는 각종 식자재는 애초에 물량이 많지 않고 그마저도 유통되는 채소나 과일 모두 상태가 좋지 않았다.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주문하면 아무런 향신료 없이 덜렁 날고기를 구워주었다. 비로소 설탕, 소금, 후추 같은 기본 중의 기본적인 향신료의 위력과 고마움을 살다가 처음 느낄 수 있는 그런 맛이었다. 그나마 수도인 아바나의 관광객 거리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평소 먹는 수준의 먹거리를 접할 수 있었지만, 지방 도시 이동 중 들른 휴게소에서 샌드위치를 시켰더니 소스나 향신료는 당연히 없고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빵에 굽지도 삶지도 않은 소시지를 끼운 게 전부인 어떤 것(?)을 건네받았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모로코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쿠바는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나라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불편하고, 맛있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딜 가나 쿠바인들은 밝았고 에너지가 넘쳤다. 아침부터 삼삼오오 모여 길에서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고 있었고 서로 밝게 인사했다. 그들의 밝음은 대체 어디서 생성되는 걸까? 최대치의 부족함에서 최대치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알다가도 모를 매력적인 나라 쿠바.
우리는 수도 아바나에서 시작해 올인클루시브 리조트들이 모여있는 바라데로(Varadero)에서 카리브해(Caribbean Sea)를 흐느적거리며 만끽한 후,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는 지방 소도시 트리니다드(Trinidad)로 이동했다.
그런데 한국인들에게 트리니다드가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보다 더 유명한 것은 바로 트리니다드의 큰 손 '차메로 아저씨'가 운영하는 숙소(Casa)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숙소보다 호스트인 차메로 아저씨가 훨씬 유명하다고 해야 할까. 한국 포털 사이트에서 잠깐만 검색해 봐도 이 숙소에 대한 후기는 몇 페이지에 걸쳐 나올 정도로 한국인들 방문이 많은 숙소이다. 하도 한국인들이 많이 와 최근엔 한국어 구사까지 한다는 차메로 아저씨는 쿠바를 여행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거의 연예인급, 거물급의 호스트이다.
나는 일본에 거주할 때도 그랬고 해외여행을 떠날 때도 그렇고 외국에서 한국인이 모여있는 곳을 일부러 찾아가지는 않는 타입인데, 이례적으로 한국인 후기가 많은 차메로 아저씨의 숙소를 예약한 건 오직 여기서 괜찮은 가격에 맛있는 랑고스타(Langosta, 랍스터) 구이를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졌기 때문이다. 이곳은 앞서 경험했듯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음식들이 대부분인 쿠바가 아닌가.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한다.
이렇게 매우 단순한 이유로 예약한 차메로 아저씨네 집. 그런데 며칠 묵으며 관찰하다 보니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이 숙소가 워낙 한국인들에게 유명하다 보니 예약을 미리미리 해두지 않으면 묵을 방이 없는데 워크인으로 찾아와 만실일 경우, 차메로 아저씨가 주변에 있는 본인 지인의 숙소를 소개해주고 당장 방이 필요한 여행객들은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한다. 이것은 바로 말로만 듣던 낙수효과가 아닌가! 차메로 아저씨 지인들의 숙소는 이런 식으로 차메로 아저씨 숙소에 머물지 못한 사람들이 흘러들어 가는 곳이 된다. 실제로 성수기엔 이런 케이스가 꽤 많은데 이 정도면 차메로 아저씨의 지인 호스트들은 소정의 수수료를 아저씨한테 건네지 않을까 하는 추측마저 들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방이 없어 차메로 아저씨 숙소에 묵지 못하더라도 비용을 지불하고 랑고스타 식사를 하는 것은 가능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사회주의 국가 쿠바의 경우 숙박료는 세금으로 떼이는 게 대부분이라 숙박업 자체는 크게 돈이 되지 않지만, 숙박객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벌어들이는 돈은 많은 비중을 챙길 수 있어 숙박업자에겐 괜찮은 수익원이라는 사실. 숙박객들은 물론, 방이 없어 다른 숙소에 묵는 사람들 대부분 일정 중 꼭 한 번은 차메로 아저씨 집에서 식사를 한다는 걸 감안해 볼 때 식사료를 통해 꽤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예상이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쿠바에는 살사 댄스 체험 클래스가 많다고 해서 나와 H도 배워보고자 차메로 아저씨께 문의를 해보았더니 본인의 조카뻘 되는 지인 2명을 소개해주어 우린 숙소 옆에 위치한 건물에서 한 시간 동안 살사를 배웠다. 당연히 인증된 강사일리 없고 이런 야매(?) 강습은 단속의 대상이라 우린 강습 내내 창문에 커튼을 드리운 채 은밀하고도(?) 신나게 살사를 체험했다. 다른 여행자에게 들어보니 실제로 단속이 나오면 실내 전등을 다 끈 채 숨죽이고 단속반이 떠나길 기다렸다가 강습을 재개한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여기서 또 차메로 아저씨와 살사 강사 지인 사이에도 소정의 수수료가 발생할 테지.
여기서 끝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근처 해변에 가기 위해 택시를 예약할 때, 다시 아바나로 돌아가는 택시를 예약할 때도 차메로 아저씨에게 말만 하면 알아서 다른 승객들과 스케줄까지 맞춰서 합승 택시 예약을 해준다. 택시 드라이버들 역시 차메로 아저씨의 지인이다. 수수료가 없을 리 없다.
'차메로의 경제학'.
숙박은 기본이요, 식사, 여가 활동, 교통에 이르기까지 트리니다드에서는 차메로 아저씨를 통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그는 거의 트리니다드의 경제를 견인하고 지역 관광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지역 유지급의 인물이었다.
실제로 인터넷 한 번 하려면 줄 서서 카드 사고 인터넷 되는 곳에 자리 잡고 느린 인터넷으로 검색할 것만 겨우 검색해야 하는 쿠바인데, 차메로 아저씨 숙소에서는 한국과 비등한 속도로 인터넷으로 '무려' 게임을 몇 시간 동안이나 즐기고 있는 아드님을 목격할 수 있다. 차메로 하우스는 쿠바에서 가히 홀로 '배타적 인터넷 자유 구역'과도 같았달까...! 이 사실만으로도 차메로 아저씨의 재력이 상당함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쿠바에서 가장 좋았던 트리니다드.
쿠바 여행, 그중에서도 트리니다드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은 '차메로 아저씨'만 기억한다면 여행에 필요한 웬만한 것들은 불편 없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트리니다드의 모든 길은 차메로 아저씨네로 통한다(참고로 나는 차메로 아저씨로부터 그 어떠한 홍보 요청이나 소정의 수수료를 받지 않았음을 명확히 밝히는 바이다). 트리니나드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차메로 아저씨 위주로 글을 쓰다 보니 트리니다드의 소박하고도 평화로운 풍경을 소개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사진으로 대신하려 한다.
나는 이렇게 수술로 황폐해져 버린 몸과 마음의 안식을 여행에서 되찾았다. 과연 가능할까 싶을 수 있으나 의외로 회색 마음을 흰색의 행복으로 덮을 수 있다. 일 년 반 동안 수술을 세 번 했다고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면 이런 행복을 느끼지 못했겠지. 쿠바로 날아온 나 칭찬해!